베트남이 지금 축구로 후끈 달아올랐다. 지난 14일 베트남 축구 대표팀은 2018 AFC(아시아축구연맹) U―23(23세 이하) 챔피언십(중국 쿤산) D조 2차전에서 아시아 강호 호주를 1대0으로 물리치는 파란을 일으켰다. "베트남 축구사를 새로 쓴 승리" "(아시아는 아니지만) 동남아시아 축구 수준에서 벗어났다"며 팬들은 열광했다. 베트남 국영방송 VTV는 호주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린 응우옌 쾅 하이(21)의 집에서 부모를 만나 쾅 하이의 축구 인생을 조명하는 특집을 마련했다. 한국에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나 월드컵 본선 결승골의 주인공과 같은 대접을 받은 것이다.
그 열풍의 중심에 선 인물이 박항서(59) 감독이다. 국내 팬들은 아직도 '박항서'란 이름을 들으면 2002 한·일월드컵 당시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반바지를 입고 선수들과 함께 뒹굴던 '머리숱 적은' 코치를 떠올린다. 거스 히딩크 감독을 보좌하며 4강 신화에 힘을 보탠 그가 이젠 '베트남의 히딩크'가 됐다.
박항서 감독은 작년 10월 베트남 성인 대표팀과 U―23 대표팀 사령탑을 동시에 맡았다. 베트남 축구협회는 박 감독 선임 배경에 대해 "히딩크의 철학을 공유하는 지도자"라고 밝혔다. 그때만 하더라도 자존심 강한 베트남 축구 팬들은 "유럽 감독을 데려오라"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박항서 감독이 상무 사령탑 시절 벤치에서 조는 듯한 모습이 베트남 인터넷에서 놀림거리가 되기도 했다.
박 감독에 대한 여론이 바뀐 것은 지난달 친선 국제 대회인 M150컵 3~4위전에서 태국을 2대1로 물리치고 난 후다. 당시 박 감독은 베트남의 골이 터지자 히딩크처럼 어퍼컷을 날렸다. 10년 만에 숙적 태국을 꺾은 뒤 베트남이 난리 났다. 박항서호(號)는 그 상승세를 이번 U―23 챔피언십에서도 이어가는 중이다. 한국과는 접전(1대2패)을 벌였고, 베트남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호주를 꺾는 이변을 일으켰다.
베트남 언론은 앞다퉈 '박항서 리더십'을 조명하고 있다. 베트남 인터넷 매체 '소하'는 "수시로 터치라인까지 나와 선수들을 독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라며 "골 세리머니도 격정적이다. 역대 베트남 축구 감독 중 이렇게 열정적인 사람은 없었다"고 평했다. 박 감독이 베트남 문화를 존중하는 모습도 현지 팬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고 한다. 박 감독은 킥오프를 앞둔 국가 제창 때 진지한 표정으로 가슴에 새겨진 베트남 국기에 손을 얹는다. 호주전 승리 이후엔 선수들이 '호 아저씨와 함께 위대한 승리의 날을'이란 노래를 부를 때 동참했다. '호 아저씨'는 베트남의 국부(國父)인 호찌민을 일컫는 말이다.
박항서 감독은 경기 후 소감을 묻자 눈물을 머금고 말했다. "베트남 국민에게 기적을 선사할 수 있어 기쁘다. 다음 경기에서 두 번째 기적을 만들고 싶다." D조 2위인 베트남은 17일 오후 8시 30분 시리아와 3차전을 치러 조 1~2위까지 주어지는 8강 티켓을 노린다. 한국이 D조 1위(1승1무)다.
박 감독은 지금의 성과에 취하지 않고 베트남 축구의 미래를 그리려 한다. 2020 도쿄올림픽 출전은 꼭 이루고 싶은 목표다. 그는 본지 통화에서 "이번 대회에서 한국과 호주를 상대로 밀리지 않으며 선수들이 큰 자신감을 얻었다"며 "선수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만큼 열심히 가르쳐 일을 한번 내보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