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 맞추나" 비아냥 들었지만… 승자는 이철성

조선일보
  • 김선엽 기자
    입력 2018.01.15 03:10 | 수정 2018.01.15 09:53

    [현정권서 '코드행보' 논란… 수사권 등 확보하며 실리 챙겨]

    '물대포 적법 사용' 입장 뒤집고 백남기 농민 사망 공식사과
    불법집회 대응 매뉴얼도 완화
    "공권력 위축" 비난 거셌지만 경찰 숙원 해결했다는 평가도

    14일은 '박종철 사건' 31주기였다. 31년 전 영장 없이 학생 박종철을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고간 것도, 물고문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 것도 경찰이다. 바로 이날 경찰은 64년 숙원이던 '경찰 수사권 독립'을 청와대로부터 약속받았다. '공안(公安) 수사'의 핵심인 국정원 대공(對共) 수사권까지 선물로 받았다.

    경찰 안팎에선 이철성 경찰청장을 주목한다. 정권 교체 이후 새 권력의 '검찰 혐오증'을 정확히 파악하고 각종 이벤트를 통해 정권과의 코드 맞추기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는 박근혜 정권이 임명한 청장이다. '문고리 3인방'이 인사에 개입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탁월한 정치 감각과 비판에 구애받지 않는 뚝심으로 조직과 개인의 핸디캡을 모두 극복하고 고지(高地)로 가는 1차 관문을 통과했다.

    작년 6월 16일 이 청장은 기자들 앞에서 90도 허리를 숙였다. 2015년 서울 도심 폭력 시위 중 경찰 살수차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뒤 숨진 백남기 사망 사건을 공식 사죄하는 자리였다. 정권 출범 38일 뒤 "물대포 사용이 적법했다"는 경찰의 기존 입장을 뒤집은 것이다. 박종철, 이한열 등 민주화 희생자와 함께 백남기씨 이름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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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사과, 경찰 지휘부 첫 박종철 열사에게 헌화 - 현 정부에 적극적인 ‘코드 맞추기’ 행보를 보여온 이철성 경찰청장이 지난해 6월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에서 서울 도심 폭력 시위에 참가했다 숨진 고 백남기씨 사망 사건에 대해 허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왼쪽 사진). 박종철 열사 31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3일에는 서울 남영동 옛 치안본부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센터)에 찾아가 박 열사가 숨진 509호 조사실에 헌화했다. /성형주 기자·연합뉴스

    사과 당일 "인권 경찰이 되겠다"며 새 정부와 가까운 사람들로 구성한 경찰개혁위원회도 설치했다. 위원회는 과거 인권 침해 사건의 재조사를 담당할 '진상조사위원회'를 설치하라고 경찰에 권고했다. 이들이 거론한 사건은 백남기씨 사망, 용산 철거민 화재 참사, 쌍용차 노조 파업 진압, 제주 해군기지 반대 시위, 밀양 송전탑 반대 시위 등 경찰이 정당성을 주장해온 사건들이다. 이 청장은 그대로 수용했다.

    위원회는 경찰 수사권 독립의 조건으로 '인권 친화적 경찰'을 내걸었다. 이 청장은 더 열심히 움직였다. "체포·구속을 최소화할 제도를 마련하고 경찰권에 대한 시민 통제 기구를 설치하라"는 위원회의 권고 역시 "모두 수용하겠다"고 했다.

    12월 28일엔 박상기 법무부 장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문무일 검찰총장과 함께 영화 '1987'을 관람했다. 박종철 사건을 다룬 영화다. 이 청장은 눈물까지 보였다. 이한열씨가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쓰러지는 장면에서였다. 관람 후 그는 "잘못된 공권력에 대해 성찰하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앞서 그는 6·10 항쟁 30주년을 맞아 박종철씨가 사망한 남영동 대공분실을 방문했다. 박종철 사건 31주기 하루 전날인 13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머리 숙여 헌화했다.

    청장의 이런 행보에 대해 경찰 내부에선 "정당한 공권력 행사가 위축된다" "경찰 조직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수사 활력만 저해된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이 청장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새 정권에 대한 지나친 '아부'라는 비판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번에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약속받자 경찰 내부에선 "정말 대단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982년 순경 공채로 경찰이 된 그는 지난 2016년 8월 24일 신임 경찰청장으로 임명됐다. 순경부터 시작해 경찰청장까지 경찰 내 모든 계급을 거친 유일한 인물이다. 지난해 5월 새 정부가 들어선 만큼 중도 하차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작년 11월 청와대로부터 임기를 보장받았다. 전 정권에서 임명된 주요 기관장 중 유일하게 살아남아 과거 어떤 권력 실세 경찰청장도 해내지 못한 결실을 얻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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