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경찰 재조사 대상 5대 사건 발표... "재판중인데 또 조사하라고?"

입력 2018.01.14 18:49

밀양 송전탑,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시위 등
경찰 곧 재조사 착수… 검찰도 대상 선정 중
작년 말 ‘특사’때도 논란되자 대상에서 제외돼


청와대는 14일 ‘권력기관 개혁 방안’을 발표하면서 과거의 적폐에 대한 철저한 단절과 청산을 강조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정원의 적폐 사건은 대부분 마무리됐고, 검찰의 과거사 진상조사는 대상 사건을 선정 중이다”며 “경찰은 민간조사단 구성이 완료되는대로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등 5개 사건에 대해 진상조사를 곧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는 이날 경찰이 우선 조사대상으로 선정한 5개 사건을 공개했다.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과 밀양 송전탑 반대 시위,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시위, 평택 쌍용자동차 농성, 용산 화재참사 등이다. 이 사건들은 모두 대규모 시위 관련 사건으로, 밀양 송전탑 반대 시위과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시위 등은 재판 중이어서 작년 말 특별사면 대상에 올랐다가 제외되기도 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14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현 정부의 국정원, 검찰, 경찰 등 권력기관 개혁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재판이 진행중인 사건에 대해 재수사를 하는 것이 적절한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재판 중인 사건을 재수사하면 현재 재판에 영향을 줄 수도 있고, 넓은 뜻에서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의 시각에 따라 사건의 수사 및 재판 결과가 바뀐다면 이는 사법체계를 뒤흔드는 일”이라고 했다.

일사부재리원칙은 사법처리가 완료된 사건을 다시 기소해 재판받지 않게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헌법에도 동일한 범죄에 대해 거듭 처벌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다. 재판에 넘겨지지 않았더라도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이 각하하거나 무혐의 처리한 사건은 일사부재리원칙을 적용해 특별한 추가 혐의가 드러나지 않는 이상 재수사하지 않는 것이 관행이었다.


“권력 바뀔때마다 입맛대로 과거사 정리해서야”
대부분 대법원서 유죄 확정됐거나 재판 진행 중
경찰 일부 “자아비판, 반성 말고 무슨 효과있나”


①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은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대회'에 참가한 백남기씨가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의식을 잃은 뒤 치료를 받던 중 2016년 9월 25일 사망한 사건이다. 경찰의 물대포 사용이 적법했는지에 대해 논란이 일었고 경찰은 문재인 정부 출범 5개월 만인 작년 10월 사과 입장을 밝혔다. 백씨가 숨진지 약 1년만이었다.

검찰도 경찰의 과잉 진압에 대한 수사를 벌여 작년 10월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과 현장 책임자, 살수요원 등 총 4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당시 강신명 전 경찰청장에 대한 책임론도 제기됐지만 검찰은 “강 전 청장은 살수차 운용에 직접 지휘하거나 감독 책임이 없다”며 ‘혐의없음’ 결론을 내렸다.

구 전 청장 등에 대한 재판은 2월 말부터 본격화된다. 서울중앙지법은 이달 5일 공판준비기일에서 2월 27일 사고 당시 현장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을 검증하자고 했다. 법원이 증거 조사도 시작하기 전에 경찰 민간조사단이 이 사건을 다시 조사하는 셈이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검찰은 혐의가 있다고 재판에 넘겼고, 법원은 이에 대한 증거조사를 계획하고 있다”며 “법원의 판단도 나오기 전에 경찰이 다시 진상조사를 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오히려 재판에 혼란만 가중시키지 않겠느냐”고 했다.

②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시위
경남 밀양시에 송전탑을 건설하려는 한국전력공사와 이를 반대하는 주민들 사이에서 벌어진 폭력사태 과정에서 주민 15명이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한전은 신고리 원전에서 생산한 전력을 다른 지역으로 송전하기 위해 2008년 8월부터 경남 밀양에 송전탑 공사를 추진했다. 하지만 밀양 시민들과 환경단체들은 고압 송전탑이 인체에 유해하다며 격렬히 저항했다. 수년째 반대 농성을 벌인 주민들이 재판에 넘겨진 것이다.

현재 항소심까지 마친 상태다. 창원지법은 작년 2월 주민 윤모씨 등 9명에 대해 항소를 기각하고, 징역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백씨 등 나머지 6명에게도 1심과 같이 벌금 200만원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 주민들은 항소심 결과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③제주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시위
2007년 해군이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주민들과 부딪혔다. 경찰이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던 주민들을 해산하는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빚어졌다. 이들의 불법 시위는 10년 동안 계속됐다.

이 시위로 주민과 시민단체 회원 등 611명이 기소됐고, 463명은 유죄, 15명은 무죄가 확정됐다. 나머지 22명은 선고유예, 공소기각 등으로 재판이 종결됐고, 111명은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밀양 송전탑 사건과 함께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시위는 작년말 문재인 정부의 첫 특별사면 때 사면 대상으로 거론됐지만 재판 중인 사안이어서 제외됐다.

정부는 같은 시기 불법 시위로 14개월 동안 해군기지 건설이 지연돼 275억원을 추가로 부담했으니 물어내라며 주민과 시민단체 회원 등을 상대로 제기한 ‘구상권(求償權) 소송’을 사실상 포기했다.

④평택 쌍용 자동차 농성
평택 쌍용자동차 농성 사건도 경찰의 과잉진압이 논란이 됐다. 쌍용차 노조원들은 2009년 5~8월 약 76일 동안 사측의 구조조정에 반발해 평택 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다. 이를 해산하려는 경찰과 물리적 충돌을 빚어 1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경찰의 최루액 사용과 테이저건 사용 등이 논란이 됐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때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으로 있으면서 노조원 21명과 함께 기소돼 징역 3년형을 확정됐다. 노조원 21명도 징역3년~1년6월에 집행유예 4년~2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특히 쌍용차의 근로자 정리해고가 부당하다고 노조원들이 제기한 소송은 2016년 6월 파기환송심에서 정당하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한편, 노조원 체포를 막아선 변호사를 체포한 혐의로 경찰관도 기소돼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⑤용산 화재참사
2009년 1월 20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에 있는 한 건물 옥상에 설치한 망루에서 철거민들이 점거농성을 벌이다가 경찰과 충돌하면서 불이 나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숨진 사건이 ‘용산 화재참사 사건’이다. 경찰의 과잉 진압이 대형 참사를 낳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용산 화재 참사는 26명 중 1명을 제외하고 형이 확정됐다. 2010년 11월 대법원은 용산 참사 진압 과정에서 화재로 사망한 경찰관의 죽음에 책임을 물어 용산철거대책위원회 위원장 이모씨 등 7명에게 징역 4~5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작년 12월 특사 때 형이 확정된 철거민 25명에 대해 사면 및 복권을 결정했다.

집회 관련 사건에서 사면을 받은 것은 용산 참사 사건 뿐이었다. 법무부는 특사 이유에 대해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고, 통합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경찰은 지난해 8월 민간 중심으로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를 발족했다. 조사위는 인권침해가 의심되는 사건을 선정해 재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경찰 안팎에서는 불만의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경찰 한 관계자는 “경찰 수사의 문제점이 발견된다면 기존 피의자들의 공소를 취소하거나 경찰관이 기소되는 상황이 올 수 있겠지만 이는 검찰이 해야할 일 아니냐”며 “경찰보고 재조사를 하라는 것은 자아비판이나 반성 외에 무슨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청와대가 재판 중인 사건을 다시 조사하라고 하는 것은 삼권 분립을 부정하는 것 아니냐”며 “정치 권력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지나간 사건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재정립하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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