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아이들 돌보며 백혈병 이겨내요"

조선일보
  • 최원우 기자
    입력 2018.01.13 03:02 | 수정 2018.01.13 14:58

    고아 18명 '아빠'된 심효보 修士
    15년 전 시한부 선고받았지만 기적적으로 호전돼 봉사하며 생활
    "아이들, 사랑받으니 마음 열어"

    "아무리 힘든 일을 겪은 아이도 사랑을 듬뿍 받으니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더군요."

    백혈병 치료를 받으러 지난 4일 서울성모병원을 찾은 심효보(35) 천주교 수사(修士)는 "부모 없는 아이들과 '새 인생'을 살면서 배운 가장 소중한 교훈"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한때 시한부 삶을 살던 심씨는 현재 필리핀 마닐라시 빈민가 보육원에서 5~18세 고아(孤兒) 18명의 '아빠'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심씨는 대학에 갓 입학한 2003년 4월 백혈병 말기 진단을 받았다. "6개월 이상을 장담할 수 없다"는 의사의 통보를 받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공학도로 캠퍼스 생활에 부풀어 있던 스무 살 대학생이 하루아침에 시한부 인생이 된 것이다.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끊은 채 심한 우울증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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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효보 수사가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보육원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한때 시한부 삶을 살았던 그는 이곳에서 고아 18명의 ‘아빠’가 되었다. /심효보씨 제공

    진료를 맡은 김동욱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교수가 그에게 힘을 북돋워 줬다. "약이 좋아지면서 치료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끝까지 희망을 잃지 말라"고 격려한 것이다.


    심씨는 "항암제 부작용에 시달리면서도 김 교수의 말만은 끝까지 붙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1~2년을 버티자 증상이 호전돼 기적적으로 지금은 반년에 한 번꼴로 항암제 치료를 받고 있다. 심씨는 "하늘이 나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했다. 과거와 다른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고 했다.

    그가 택한 '다른 삶'은 남을 위해 사는 것이다. 충북 음성 꽃동네 이야기가 그의 마음을 끌었다.

    그는 2008년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충북 청주 꽃동네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편입했다. 그곳에서 사회복지사 자격을 딴 그는 2010년 천주교에 수도자로 입회했다. "꽃동네에서는 한 사람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서로 사랑하면서 살고 있었어요. 평생 이기적으로 살아온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됐지요."

    2013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음성 꽃동네재단이 운영하는 보육원 '사랑의 집'에서 일할 기회를 얻은 그는 아예 필리핀에 터를 잡았다. 그는 "보육원에는 구걸하던 아이, 성폭행당한 아이, 범죄를 저지른 아이 등이 많았다"며 "아이들이 처음 3~4개월 동안 경계하면서 곁에 오지도 않았는데 사랑으로 계속 보듬으니 마음을 열었다"고 했다.

    "성폭행당한 적이 있던 다섯 살 아이가 영어를 배우다 갑자기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며 울음을 터뜨리더군요. 보통 아이처럼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할 거라는 공포가 있었던 거지요. 그 아이에게 '넌 나중에 학교에 가게 될 거야'라고 말해줬더니 '나도 학생이 될 수 있다고?'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어요."

    처음 만났을 때 울던 그 아이가 지금은 자기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매주 급식 봉사에 참여한다고 한다.

    최근 백혈병 환우회인 '루산우회'는 '사랑의 집'을 돕기 위한 바자회를 열어 수익금 130만원을 심씨에게 후원금으로 전달했다. 필리핀 빈민가에선 도시락 4000인분이다. 심씨는 "아플 때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다. 환우회가 전해준 사랑의 마음에 깊이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아이들을 위해 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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