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30] 버리면 심플해 진다고?

  • 백영옥 소설가

    입력 : 2018.01.13 03:07

    백영옥 소설가
    백영옥 소설가
    제주는 바람이 강하다. 그럼에도 제주의 돌담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비밀은 돌 사이의 틈이다. 그 숨구멍이 바람이 통하는 길을 내어주기 때문이다. 이사를 하게 되면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짐을 모두 들어낸 공간이 이렇게 넓었었나'는 놀라움이다.

    새해를 맞이해 대청소를 했다. 인연을 다한 휴대폰 전화번호도 정리했다. '제티슨(Jettison)'이란 단어가 있다. 제티슨은 비행기나 선박이 위기에 처했을 때 짐을 바다에 버려 무게를 줄이는 걸 뜻한다. 비상시에는 사람의 생명을 제외한 물건은 버리는 게 원칙이다. 비행기가 항공유를 공중에 쏟아 폭발 가능성을 줄이는 것도 '제티슨'의 일종이다.

    잘 버리는 일의 핵심은 의외로 무엇을 간직할지 정하는 것이다. 도미니크 로로는 자신의 책 '심플하게 산다'에서 정리하지 못하는 건 "과거의 추억에 집착하느라 현재를 소홀히 하고 미래를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라 말한다. 제일 힘든 것은 버리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자신에게 어떤 게 필요하고, 어떤 게 불필요한지 판단하는 일이라고 말이다. 말할 것도 없이 잘 버려야 새로운 공간이 생겨난다. 꽉 막혀 있는 상태에 새로운 숨구멍이 생기는 것이다. 상자 속 사과도 좁은 공간에 너무 붙어 있으면 썩게 마련이다.

    현대인들은 과거 사람들보다 가진 게 많지만 대개 행복하지 못하다. 더 많은 소유가 더 많은 행복을 주지도 못한다. 여행 가방을 싸면서도 자주 느낀다. 실제로 한 번도 쓰지 않을 거면서 가져온 책과 물건이 너무 많다는 것 말이다. 짐이 많을수록 오히려 여행은 무겁고 힘들어진다.

    사고 싶었던 식기세척기와 빨래건조기는 아직 사지 못했다. 가격보다도 공간의 활용 때문이다. 버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너무 많이 소유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법정 스님의 말은 '무소유'다. 하지만 무소유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걸 뜻하는 게 아니다. 필요하지 않는 것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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