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바쁜데 생리휴가 내고..." vs. "생리휴가주는 로펌도 있나?"

입력 2018.01.12 16:25 | 수정 2018.01.12 17:38

변호사 커뮤니티서 때아닌 ‘생리휴가’ 전쟁
남녀차별, 지역갈등 부추기는 글 수두룩
“일자리 줄고 경쟁 치열하니 갈수록 막장”


“풉… 남들 다 바쁜데 항상 금요일에 생리휴가 내기, 남변(남자 변호사)들은 고생하는데 무시하고 칼퇴(정시퇴근)하기, 선배한테 예의없고 후배 무시하기, 뒤통수 치기…. 나열하자면 입 아프죠. 난 절대 여자 안 씀”


한 법조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여성 비하’ 댓글/제보자 제공

지난 6일 변호사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생리휴가’를 놓고 설전이 벌어졌다. 이 커뮤니티는 변호사만 5700여명이 가입돼있고, 로스쿨생을 포함하면 회원수만 총 1만2700여명 규모다.

복수의 커뮤니티 회원에 따르면, ‘생리 휴가’ 논란의 발단은 “송무(소송업무)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지원을 하고 있는데 쉽지 않다. 우연찮게 지원자의 인적사항을 봤는데 대부분이 여자 변호사님뿐”이라는 글이 올라오면서다. 글쓴이는 “남자 변호사들은 송무를 지원 안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다 채용이 끝났다는 걸까요”라며 “(채용이 안 돼) 우울한 아침”이라고 썼다. 한 여성 변호사가 남자만 채용되고 여자는 채용되지 않는 현실을 두고 차별받는다는 생각에 쓴 글로 해석된다. 이 글에 달린 댓글은 거의 ‘여혐(여성 혐오)’ 수준으로 흘러갔다고 한다.

여성을 비하하는 댓글에 대한 반박 댓글도 이어졌다. ‘여자 변호사들이 생리휴가를 쓸 수 있는 회사(법률사무소)가 국내에 있기는 하느냐’, ‘도대체 어느 로펌에서 생리휴가를 받느냐’, ‘‘(생리휴가를 주는 곳을) 알고 있으면 나도 좀 알려달라’ 등이었다. 이 게시글은 12일 오후 2시 30분 현재 조회수 2412에 댓글 수 59개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 커뮤니티에서는 보통 조회수가 1000~3000회 정도면 인기글 순위에 올라간다고 가입자들은 전했다.


익명 뒤에 숨은 변호사들 민낯
접견가는 여성 변호사는 ‘접견녀’
“여자의 적은 여자, 상사도 여자는 NO”
“판사, 검사도 못생기면 끝이야”


이 커뮤니티에서는 의뢰인을 접견하러 가는 여자 변호사들을 ‘접견녀’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기업 총수 등 이른바 ‘범털’들이 수감돼 있을 때 변호사 접견 명목으로 하루종일 휴식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일이다. 그렇지만 같은 변호사들끼리 ‘접견녀’라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쓰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부 회원들은 “‘접견녀’라고 칭하는 것 자체가 비하 의도가 있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변호사 업계에서도 남녀 갈등이 나타나고 있는 걸까. 법호사 업계 관계자는 “익명성이 보장된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나 일어나는 현상일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국민의 권리와 인권 보호에 앞장서야할 변호사들이 차별적 사고가 깔려있다는 것은 큰 문제”라고 했다.

지난 3일 이 커뮤니티에서는 ‘직속 상사, 선배 변호사의 성별’을 놓고도 한바탕 논쟁이 벌어졌다고 한다. 한 회원이 ‘여성도 여성 상사를 힘들어한다’는 내용의 뉴스를 링크해 올렸고, 다른 이용자가 ‘남자 근로자도 여성 직속상사는 힘들다’는 글을 올리면서 불이 붙었다. 또 다른 회원은 “원래 여자 밑에서 일하는 것은 힘들다”며 “여자라는 동물은 감정적이면서 약았다. 괜히 직장에서 여자를 안 뽑으려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한 변호사는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과 비속어도 난무한다”며 “변호사, 법조인이 되려는 학생들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고 했다. ‘(여자는) 일단 외모다 외모! 검사, 변호사, 의사, 사무관 백날 해봐라. 못 생기면 끝이다’, ‘여자는 외모가 첫 번째, 그 다음이 직업, 집안이다. (외모가 제일 중요한 건) 어쩔 수가 없다’ 등 여성들의 외모와 관련된 글도 수두룩하다고 이 변호사는 전했다.

‘1주간 공감댓글’란에 있는 상위 10개 댓글 중 7개가 남녀 혐오 관련 댓글이다. / 제보자 제공

변호사들, 예비 법조인들 사이에서도 가장 핫한 주제는 ‘성(姓)’ 관련 얘기다. 변호사 업계 얘기는 큰 화제를 끌지 못한다. 12일 기준으로 커뮤니티의 ‘1주간 공감댓글’을 보면 상위 10개 가운데 7개가 남녀 혐오 관련 댓글이다. 로스쿨 출신인 김모(30·여) 변호사는 “남자, 여자 얘기가 나왔다 하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든다”며 “성 관련 이야기만 나오면 수십, 수백개의 댓글이 달리고 역겨운 싸움터가 된다”고 말했다. 중소 로펌에 근무하는 최모(31) 변호사는 “유독 온라인 상에서는 과감해지고,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며 “겉으로는 점잖은 변호사들이 이러고 있는 모습을 일반인들이 볼까봐 두렵다”고 했다.

남녀 갈등만이 아니다. 지역 차별적 표현도 서슴없이 등장한다. ‘지방대 로스쿨에 다니는 여학생이 서울로 ‘원정’와 남자들에게 구애를 하고 다닌다’는 글도, ‘존잘남(잘생긴 남자)이 서른살 넘은 지잡로녀(지방대 로스쿨 여학생)를 거들떠나 보겠느냐’는 글도 올라왔다고 한다. ‘법조인 가족이 지방대 로스쿨을 다니면 가문의 걱정거리’라고 비하하는 글도 있었다.


“여자들에게 자리 뺏길까 우려해서 충돌”
최근 변호사 시험 합격자 여성이 40% 넘어
법조계 “보이는 모습도 공정해야 하는데...”


이 같은 현상에 대해 한 중견 변호사는 “법조인들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서로를 비하하거나 비난하는 일들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남녀 갈등이 부각되는 것은 남초(男超)사회였던 법조계의 성비가 변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법무부 등에 따르면 1991년(33회)~2000년(42회) 사법시험 합격자 중 여성은 11.7%에 불과했다. 1990년대 초반에는 5~6% 수준을 기록하다 1999년과 2000년 17~18% 수준으로 뛰어오르며 10% 선을 넘겼다. 여성 합격자 비율은 2002년 처음으로 20%를 돌파했고, 2004년부터 작년까지 여성 합격자 비율은 35.7%에 이른다.

변호사 시험은 여성 합격자 비율이 사법시험보다 훨씬 높다. 2012년 시행된 제 1회 변호사 시험은 합격자 중 남성이 59%, 여성이 41%였다. 6회째를 맞은 작년 시험에선 합격자의 45%가 여성이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남녀 갈등의 배경 중 하나가 여성의 사회 진출이다”며 “여성으로부터 자신의 자리를 뺏기지 않을까 하는 불안과 자신이 여성보다 더 우월하다는 생각이 서로 충돌하면서 위협감을 표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곽 교수는 또 “새로 유입되는 인력의 절반을 여성들이 차지하고 있으니 충돌이 커질 수 있다”며 “더군다나 인터넷이라는 익명성 뒤에 숨어서 이뤄지는 비난은 극단적으로 증폭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변호사나 로스쿨생들은 대부분 20~40대의 젊은 법조인, 혹은 예비 법조인들이다. 앞으로 판사나 검사가 될 수도 있고,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일반 시민들의 변호를 맡을 수도 있다.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와 다음 아고라, MLB PARK 등 참여자가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는 곳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이 법조인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법조인은 공정한 수사와 재판, 변호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법조인으로서 공정하게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며 “서로 비난하고 헐뜯는 글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국민들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판사, 검사의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구정우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법조인들은 사회 주도층인데다 법과 양심에 따라 국민 인권 보장에 앞장서야 하는 사람들”이라며 “차별을 막아야 할 사람들이 더 차별적인 사고를 하고 익명 논쟁이나 벌이고 있다니 참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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