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대출 끼고 산 아파트 꾸며보려 하지만…

  • 박해천 동양대 디자인학부 교수

    입력 : 2018.01.13 03:02

    [디자인 연구자 박해천의 호모 아파트쿠스]

    김애란 소설 '입동'
    서민도 아니고 중산층도 아닌 그 사이
    유행 가구 알아보지만 대출금 무게에 짓눌려 인터넷서 저가 소파 장만
    낡은 가구들 리폼… 소품엔 'LOVE' 새겨

    일러스트

    박해천의 '호모 아파트쿠스'를 시작한다. 카이스트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동양대 교수로 있는 그는, 디자인의 역사가 중산층의 역사이며 한국 중산층의 역사는 아파트의 역사라고 생각하는 학자. '아파트 게임' '콘크리트 유토피아' 등을 썼다.

    2013년 봄, 그러니까 '하우스푸어'라는 표현이 아직 힘을 잃지 않고 있던 무렵 김애란 작가의 단편소설 '입동' 속 두 주인공, K씨 부부는 "분양 면적 이십사 평, 실면적 십칠 평"의 아파트로 이사한다. 집 대신 방을 찾아 떠돌던 세입자의 삶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경매로 싸게 나온 물건"을 "집값의 반 이상을 대출로 끼고서" 구입한 것이다. 이사를 마친 직후 K씨의 아내는 자기 집을 소유한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동력으로 삼아 집안을 근사하게 꾸미겠다고 나선다. 서민도 아니고, 중산층도 아닌, 그 사이에 애매하게 낀 상태이긴 했지만, 그들이 보기에 이제 더 이상 선망은 자신의 몫이 아니었다. 드디어 정착했다는 안도감을 만끽할 수 있는 집안의 풍경이 필요했다.

    도시화의 시간이 '내 집 장만'에 뒤따르는 집치장의 풍속을 만들어낸다면, 집치장의 풍속은 유행의 흐름을 면면히 이어가며 나름의 계통도를 그려나간다. 주거 유형과 집 크기, 거주자의 취향과 소득 수준 등을 주요 변수로 삼아 끊임없이 갈라지는 유행의 계통도, 시간을 거슬러 그 계통도를 되감아 들여다볼 수 있다면, 벽난로, 그린 인테리어, 홈패션, 시스템키친, 꽃무늬 냉장고 등이 연도별로 유물처럼 기록된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K씨의 아내는 그 계통도의 끝자락에 자리를 잡고선 '북유럽 스타일 가구'나 '스칸디나비아 패브릭'에 눈길을 준다.

    집치장에 참고할 본보기를 찾기 위해 인터넷 카페나 인테리어 전문 블로그를 들여다보다가 스웨덴 가구업체 이케아가 만들어낸 최신 유행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간 결과였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상품으로 교환되지 못한다. 매달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보험회사 직원과 공무원 입시학원 사무원의 맞벌이 봉급으로 감당하기 역부족이다. 인터넷 쇼핑으로 저가의 2인용 패브릭 소파를 장만하는 데 만족한다.

    김애란 단편 ‘입동’이 실린 소설집 ‘바깥은 여름’.
    김애란 단편 ‘입동’이 실린 소설집 ‘바깥은 여름’.

    결국 그녀는 돈 대신 공을 들이기로 작정한다. 10년 동안 다섯 번의 이사에서도 살아남은 낡은 가구와 소품을 끌어모아 '리폼'에 나서는 것이다. 쓸모와 필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함께 생활했던 "못생긴" 세간들이지만, 페인트칠로 새로이 단장해 거실과 부엌 곳곳에 다시 들여놓는다. 자신의 안목을 100퍼센트 신뢰하지 못한 탓에 홀로 방백 하는 사물을 배치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LOVE' 'HAPPINESS' 같은 영어 단어가 적힌 '파스텔톤 깡통'이 거실의 나무 선반 위에서 이 가족의 '사랑'과 '행복'을 증언한다.

    작가 김애란이 보기에 아마 여기까지가 2010년대 초반, 30대 중반의 평범한 지방 출신 부부가 부모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당도할 수 있는 최선의 실내 풍경이 아니었을까? 한 움큼의 사치도 허용되지 않지만 일상의 사소한 흔적들이 기적처럼 '스위트홈'의 미장센으로 전환될 수 있는 실내 풍경, 그 안에서라면 네 살배기 아이가 엄마가 애써 가꿔놓은 세간에 침을 묻히거나 낙서를 한다고 해도 상관없을 것이다. 그마저도 사랑과 행복의 징표로 간주될 테니 말이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