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 사이…'오락가락' 반복하는 文정부

입력 2018.01.12 16:00 | 수정 2018.01.12 17:43

수능·사드·원전·위안부·가상화폐까지 '뒤집고 또 뒤집고'
"정책 계속 번복되면 정권 신뢰성 하락...이상만 앞세우지 말고 충분한 논의 거쳐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지난 11일 "가상 화폐 거래가 사실상 투기나 도박과 비슷한 양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거래소 폐쇄를 목표로 법안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박 장관의 발언이 전해지자 시장은 패닉에 빠졌다.
시장이 크게 동요하고 일부 투자자가 청와대 홈페이지에 달려가 가상 화폐 규제 반대 목소리를 내자 청와대는 "확정된 사안은 아니며, 추후 논의와 조율을 거쳐 최종 결정될 것"이라고 투자자를 달랬다. 그사이 가상 화폐 가격은 이날 하루 종일 출렁였다.

작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지난 8개월여 임기 동안 명분만 앞세워 정책을 성급하게 추진하다 현실에 막혀 유턴하는 장면을 여러 차례 만들어왔다.
작년 8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개편 1년 유예를 시작으로 9월 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추가 배치, 10월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 결정 등에서 그랬다. 새해 들어서도 위안부 합의 문제의 어정쩡한 봉합, 가상 화폐 폐지 논란 등이 이어졌다.


정부의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 논란이 발생한지 하루가 지난 12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가상화폐 거래소 모습. / 연합뉴스
◇ 혼란 이어지자 수능도 사드도 '입장 뒤집기'

교육부는 작년 8월 31일 수능 개편을 1년 유예한다고 발표했다. 절대평가 확대를 골자로 한 수능 개편안을 폐기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사회적 합의가 충분치 않았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수능 개편을 유예하고, 내년 8월까지 대입제도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김 장관은 "앞으로는 '불통의 교육부'가 아닌 '소통의 교육부'가 되겠다는 말도 했다.

현 정부 들어 당초 원안에서 뒤바뀐 정책 사례.
수능과 관련한 혼란은 교육부의 일방통행에서 비롯됐다. 문재인 대통령 공약인 수능 절대평가를 놓고 갈등과 혼란이 극심했지만 교육부는 ‘절대평가 전환’을 강행했다.
교육부는 수능 개편안 최종 발표를 불과 3주 앞두고 영어와 한국사에 더해 통합사회·통합과학, 제2외국어 등 4개 과목을 절대평가하는 1안, 전 과목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2안을 내놓고 양자택일을 밀어붙였다.

절대평가로 전면 전환하면 수능은 변별력 상실로 무력화할 수밖에 없다. 반면 4개 과목만 전환하면 상대평가인 수학과 국어에 대한 사교육 의존도를 되레 부채질할 수 있다. 이런 지적이 쏟아졌지만 교육부는 묵묵부답이었다.

혼란이 지속되자 결국 교육부는 ‘개편을 유예한다’고 발표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얘기가 나왔지만 교육부는 졸속 수능 개편안 발표로 학교 현장의 혼란과 갈등만 키웠다는 지적을 받았다.

국방부는 작년 9월 6일 경북 성주의 주한미군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지에 잔여 발사대 4기를 추가 반입했다. 이미 배치된 레이더 및 발사대 2기와 함께 6기의 발사대로 이뤄진 사드 1개 포대 배치가 완료됐다.
정부는 당초 일반 환경영향평가 등 투명하고 적법한 절차를 거쳐 사드 배치를 완료하겠다고 했었다. 박근혜 정부의 배치 과정에 대한 진상 규명과 국회 공론화 등도 약속했었다. 사드 배치가 1년여 늦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북한이 잇따라 ICBM급 장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6차 핵실험까지 감행하자 임시배치 형식으로 사드 배치 완료를 앞당겨야했다. 사드배치를 두고 오락가락하면서 미국과 중국 모두로부터 비판 받는 상황에 처했다.

작년 10월에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공사 재개 결정이 나왔다. ‘공론화’라는 전례없는 절차를 거치긴 했지만 문 대통령이 추진해온 탈원전 선거공약 이행에 제동이 걸린 셈이었다.
전문가들은 “이상(탈원전)을 밀어 붙이려다 현실에 가로 막힌 격이 됐다”며 “하지만 그 사이 낭비한 예산과 기회비용은 어떻게 하느냐”고 했다.

◇ '위안부 합의' 엉거주춤 봉합

새해 들어서는 굴욕외교 논란을 빚었던 한·일 위안부 합의 문제가 봉합됐다.
외교부는 지난 9일 위안부 합의에 결정적 문제가 있다면서도 폐기나 재협상은 요구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한·일 위안부 합의 처리 방향을 발표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합의는 진정한 해결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2015년 합의가 양국 간 공식합의였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고 했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이 9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청사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 관련 정부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국 외교적 파장을 고려해 재협상 요구나 파기 선언까지는 하지 않고 협상 내용을 일부 수정해 ‘엉거주춤’ 봉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잘못된 합의를 뜯어 고치겠다는 명분과 한·일 관계를 망칠 수 없다는 현실론이 뒤섞인 결과였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반발했고 일본의 감정도 나빠질 대로 나빠졌다.

전문가들은 “현 정부가 절차적 정당성과 명분에 집착해 기존 정책들을 뒤집고 막상 후폭풍이 몰아닥치면 서둘러 봉합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정부의 의사결정이 자주 번복되면 정부 정책 일관성이 훼손되는 것은 물론 정부의 신뢰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시행착오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국민들이 예민하게 생각하는 이슈는 정부가 선명한 입장을 내는 것만큼 시간이 걸리더라도 관련 의견들을 충분히 수렴해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