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30년 전의 키아누 리브스, 기억하시나요?

  • 김현진·작가

    입력 : 2018.01.13 03:02

    [김현진의 순간 속으로]

    김현진의 순간 속으로
    새해가 되어 어깨가 무거운가? 그렇다면 키아누 리브스를 생각해 보자. 갑자기 웬 키아누 리브스냐고? 당신에게 키아누 리브스는 어떤 이미지인가? 빨간 알약을 먹고 이 세상을 구해 내는 '매트릭스'의 네오? 아내가 남긴 강아지를 잃고 다 박살 내 버리는 '존 윅'의 존 윅? 새해에는 네오처럼, 존 윅처럼 간지가 철철 넘치는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이 강한 당신이라면 꼭 키아누 리브스의 80~90년대 작품을 권하고 싶다. 지금이야 세상도 구하고 도시 하나를 박살 내는 데다 외모도 늙지 않는 신비의 사나이지만,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의 그는 정말이지 연기를… 너무나 못했다! 영어를 모르는 초등학생이 그렇게 느낄 정도였다면 얼마나 국어책, 아니 영어책을 읽었는지 아마 아실 것이다.

    출세작인 '빌과 테드의 엑설런트 어드벤처'에서 키아누 리브스는 절친인 빌과 '와일드 스탈린즈'라는 로큰롤 그룹을 하고 있는, 공부와는 담을 쌓은 '찐따' 고교생 테드로 나온다. 마음이 맞는 순간이면 늘 기타 치는 흉내, '에어 기타'를 치는 이 유쾌한 녀석들은 하도 공부를 못해 만약 시험에서 낙제할 경우 테드 홀로 군사학교에 보내질 지경이 된다. 마지막 기회로 역사 구술시험 기회가 주어지지만 이 녀석들은 도무지 머리에 든 게 없다. 그런데 이게 웬일? 미래로부터 자신이 700세 먹었다고 주장하는 노인이 나타나서 편의점 앞의 공중전화 박스를 타임머신이라며 과거로 가라고 명한다. 아예 역사를 직접 체험하게 해 시험에 대비하게 하려는 것인데, 녀석들이 헤어지지 않고 미래에 훌륭한 음악가가 되어야 이들의 음악으로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되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만 정말로 빌과 테드는 소크라테스, 칭기즈칸, 잔다르크, 나폴레옹, 베토벤 등 역사 속 인물들을 전부 다 만나고 아예 현대로 데려오는데, 문명의 신기함에 푹 빠진 이들은 쇼핑몰에서 각종 소동을 일으킨다. 이때는 그다지 스타가 될 싹수가 없어 보였던 키아누 리브스의 바보같이 '헤~' 하고 웃는 얼굴이 일품이다. 이 남자가 나중에 세상을 구해 낼 거라고는 차마 상상할 수가 없다! 이때도 톰 크루즈 같은 배우는 '어 퓨 굿 맨' 같은 영화를 한창 찍고 있었다. 키아누 리브스는 할리우드에서 열과 성을 다해 바보 부문을 담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 미워할 수 없는 도다리 같은 녀석들이 나름대로 인기를 끌었는지, '엑설런트 어드벤처'는 3년 후 속편까지 나온다. 서기 2691년, 악당 노몰로스는 장차 인류의 음악으로 미래를 구하게 될 빌과 테드를 처치하기 위해 가짜 빌과 테드 로봇을 만들어 1991년으로 보낸다. 그때 진짜 빌과 테드는 상금 2000달러가 걸린 밴드 콘테스트에 참가할 준비가 한창이었다. 물론 무슨 용기로 콘테스트에 나갈 생각인지 연주는 무진장 못한다. 그런데 가짜 빌과 테드 로봇은 이들의 생활을 모두 망쳐놓는 것은 물론, 아예 죽게 만들어버려 빌과 테드는 저승으로 가버린다! 결국 저승사자까지 자기네 밴드에 참가시키고 악의 로봇들을 처치한 빌과 테드는 시간을 뛰어넘는 능력을 사용해 악기 실력까지 무진장 늘게 만든 후 밴드 콘테스트에서 이겨버린다는 말도 안 되는 결말이다. 보고 있는 '아이고 내 시간' 싶을 만큼 바보 같다. 그런데 보고 있으면 키아누 리브스의 헤~ 하는 얼굴이 정말 뭐라 말할 수 없이 귀엽다. 바보! 바보! 진짜 바보 같아! 근데 너무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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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매트릭스’ ‘콘스탄틴’에서 키아누 리브스는 세계를 위기에서 구하는 가장 강인한 남자다. 스크린 밖의 그는 백혈병으로 동생을 잃었고 처음 가졌던 아이는 세상에 나오기 전 엄마 배 속에서 떠나보내야만 했다. 사이가 나빠져 이혼한 아내도 교통사고로 잃었다. 좌절 속에서 다시 뛰어오를 용기를 그는 어디서 얻었을까./픽사베이
    이 사람이 불과 몇 년 후 '스피드'에서 터프한 헤어스타일을 한 채 목숨 걸고 버스 아래쪽에 붙어 폭탄을 제거하는 액션 스타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할 모습이다. 그 1년 전 작품인 '폭풍 속으로'에서 약간 싹수가 보인 것도 같다. 개인적으로 몇 년 전 고인이 된 패트릭 스웨이지가 그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멋진 모습을 보여준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그는 서핑을 즐기는 서퍼들로만 구성된 강도단의 보스다. 하지만 이 강도단은 언제나 장난스러운 모습으로 전직 대통령 가면을 쓰고 신속 정확하게 은행을 털어 경찰도 꼼짝할 수가 없다. 키아누 리브스는 신참 FBI 수사관으로 이 사건에 배속된다. 뻣뻣하고 국어책 읽듯 하는 연기는 여전하지만 남성으로 성숙미에 더해 아름다움이 절정에 달하던 시절에 연기력까지 받쳐주었던 패트릭 스웨이지가 모든 사람을 자신에게로 끌어들이는 폭발적인 매력으로 키아누 리브스를 커버해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오히려 당시까지만 해도 약간 어버버버버, 하는 식으로 연기하던 키아누 리브스의 연기력이 극단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패트릭 스웨이지에게 매혹되는 캐릭터로서 잘 어울렸다.

    어렸을 적 보았던 때는 그저 재미있는 액션 영화려니 하고 봤던 이 영화는 커서 보니 절대로 자라지 않고 소년으로 남아 있으려는 남자들의 분투를 그린 영화였다. 소년이 신중하게 어른이 되는 것은 너무나 어려워, 그 과정에 십중팔구 죽어 버리기 십상이다. 그런 선례를 너무나 많이 보았기 때문에 절대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남자들은 자신만은 영원히 파도 속에서 군림할 수 있다고 굳게 믿으며 거대한 파도 위에 세상의 왕이라도 된 듯 교만하게 서고, 아름다운 연인을 옆에 끼고 모닥불을 피운 채 자신들이 규칙을 만든 풋볼을 하면서 훔친 돈으로 영원히 그 바다에 남고 싶어한다. 그러나 세상은 피터팬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게다가 범죄를 저지른 피터팬이라면 더욱더. 영원히 장난스러운 소년으로 남기 위해 모조리 웃는 얼굴의 가면을 쓰고 장난 같은 강도질을 계속하던 보디(패트릭 스웨이지)는 마침내 동료가 총에 맞는 순간 그 피에 손을 적시고 소년의 세계에서 영원히 추방된다. 이제 다시는 소년이 될 수 없다. 이제 더 이상 그들의 강도질은 경쾌한 '장난'이 될 수 없게 된 것이다. 더는 돌아갈 곳이 없게 되었다. 연인의 만류까지 강고히 뿌리치고 사라진 그의 흔적을 집요하게 뒤쫓는 키아누 리브스의 끈덕진 추적은 어찌 보면 보디에게 매혹된 것처럼 보이는데, 그것은 보디에게 사로잡힌 자신의 소년 시대를 끝내고자 하는 발버둥처럼 보였다. 끝내 보디는 말 그대로 '폭풍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데 결국 영원한 소년으로 남기 위해서는 죽음, 그리고 사라짐과 입 맞추는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헤~ 하고 웃는 테드를 거쳐 뻣뻣한 수사관 조니 유타를(그사이에 〈코드명 J〉와 〈체인 리액션〉 같은 한심한 영화들이 있다) 건너와서야 키아누 리브스는 네오와 존 윅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나를 비롯해 새해에는 좀 근사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아 초조감이 드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네오'가 한때 누구였는지 생각해 볼 것. 그리고 나서 허공을 향해 에어 기타라도 한 방 먹이고 몇 번이라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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