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전쟁 下] 믿고 싶은 것만 믿는 비트코인 투자자들

입력 2018.01.12 13:52

“사수(회사 상사)가 코인으로 돈 벌고 퇴사했습니다. 가상화폐로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하더군요. 1년 정도 쉬다가 대학원 간다고 합니다. 제가 10억원 정도 벌었냐고 물어보니, ‘그거 가지고 회사 그만둘 수는 없지 않냐’며 웃네요.”

이달 초 서울대인터넷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는 회사 상사가 가상화폐로 돈을 벌고 퇴사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여기에는 “ OO반도체연구소에서 60억원을 벌었다는 사람이 있다”, “유명 로펌 OOO에도 있더라”는 댓글이 붙었다.

◆ 가상화폐로 큰 돈 벌면 ‘퇴사 인증’...“일해봤자 무슨 소용” 허무감 확산

국내 가상화폐 시장의 주요 고객은 20~30대 젊은 층이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가상화폐 성공 신화가 넘쳐난다. 대표적인 것이 ‘퇴사 인증’이다. 누구나 선망하는 직장을 때려치웠다는 ‘인증’도 눈에 띈다. 자신이 보유한 가상화폐 개수를 보여주고 “OO에 다니는데 오늘 부로 사직서를 던졌다”는 식이다.

투자한 코인(가상화폐를 일컫는 말)내역과 총 평가손익을 캡처한 화면까지 첨부해 신빙성을 더한다. 실제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는 유명 게임 개발업체에 다니는 직장인이 “‘알트코인’으로 9억원을 벌어 회사를 그만둘 생각”이라는 글을 올렸다.

퇴사인증에는 “노동소득은 결코 자본소득을 넘어설 수 없다” “모아봤자 소용없다. 인생은 한방이다”는 댓글이 어김없이 따라 온다. “축하한다”는 말보다는 “코인으로 돈 벌기가 더 쉬운데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망연자실한 반응이 더 많다.



조선DB




◆ 가상화폐로 퇴사 인증 꿈꾸는 젊은이들…직장서 행복 찾기 어렵다

가상화폐로 큰돈을 벌거나 퇴사를 결심한 투자자들은 가상화폐계에서 ‘영웅’ 대접을 받는다. 이들은 일을 하지 않고 가상화폐 투자를 업(業)으로 삼을 것을 권한다. 지금처럼 직장 다니기보다 하루에 3시간만 집에서 코인 거래해도 훨씬 행복하다는 주장이다. “삼성맨 때려치우고 전업코인(가상화폐 투자)하니 살맛 나네요. 이게 인생이구나”라는 확인되지 않은 글도 있다.

어쩌다 ‘가상화폐 퇴사 인증자’가 2030세대의 영웅이 됐을까.
전문가들은 “비록 사실이 아닐지라도 ‘퇴사 인증’이 젊은 직장인들에게 일종의 대리만족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는 조직문화에 적응하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꿈을 찾아 떠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이들은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로 인해 비트코인으로 막대한 돈을 벌어 직장에서 벗어나기를 희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도 “퇴사를 갈망하는 젊은 세대에게 ‘퇴사 인증’이 대리만족감을 선사한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가상화폐 투자로 일확천금하는 이들을 자신과 동일하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양윤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도 “퇴사 인증을 보며 ‘목구멍이 포도청인 나는 퇴사를 못하는데 저 사람은 가상화폐 투자로 했구나’하며 대리만족을 하고 또 부러움을 느끼기도 한다”고 말했다.

◆ 非투자자도 흔들…“성실, 노력이 밥 먹여주냐”

넘쳐나는 퇴사 인증에 가상화폐에 아직 손을 대지 않았거나, 투자를 했더라도 수익을 거두지 못한 2030 직장인들은 허무함을 느끼고 있다. 그래픽 디자이너 김모(35)씨는 “한 달 300만원 정도 버는데, 퇴사인증을 볼 때마다 솔직히 힘이 빠진다”면서 “월급에서 뭐 빼고 뭐 뺀 뒤 남은 돈으로 모아봤자 무슨 의미인가 싶다”고 했다. 자산운용 업계에 종사하는 전모(32)씨도 “워낙 가상화폐로 벌었다는 이야기가 많으니까 투자하지 않는 내 자신이 바보가 된 기분”이라고 했다.

허무함이 “노동소득이 다 무슨 소용이냐”는 자괴감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고도성장 시대에서나 가능했던 샐러리맨 신화가 불가능해진 현실 △저금리 기조 △높은 계층 간 울타리에 절망감을 느끼는 것이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유모(27)씨는 “학생 친구가 가상화폐에 5000만원을 넣고 2억5000만원으로 만든 뒤 ‘너도 일하지 말고 코인질(가상화폐 투자를 빗댄 말)이나 하라’는 말에 어깨에 힘이 빠졌다”면서 “개인적으로는 가상화폐가 노동 가치를 퇴색시키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직장인 양모(38)씨 얘기다. “최저임금 기준으로 하루 8시간 꼬박 일하고 한 푼도 안쓴다는 가정을 한다면 5000만원을 모으는데 3년 2개월이 모인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5000만원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내 주위에 순수자산 5억원을 가진 성실한 중년 직장인이 있다. 아무도 그를 ‘부자’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 지금 전세에 산다.”

◆확인되지 않은 성공담 맹신은 금물

2030세대 모두가 가상화폐에 열광하는 것은 아니다. 급등락이 심한 가상화폐 특성으로 한번에 거액을 잃은 투자자도 나오기 때문이다.

지난 11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 발언에 비트코인은 2400만원대에서 1700만원까지 미끄러졌다. 시가총액 2위 가상화폐인 이더리움도 230만원대에서 160만원까지 내렸다. 같은 날 청와대가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는 확정된 사안이 아니다”라며 법무부 장관의 말을 뒤집자 다시 비트코인은 1980만원, 이더리움은 180만원대를 회복했다. 모두 하루도 안 돼 일어난 일이다. 급락할때 ‘패닉셀(Panic Sell·투매)’한 사람들은 적게는 수십만원, 많게는 수억원까지 손해를 입었다.


11일 비트코인거래소가 폐쇄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가상화폐 가격이 일시에 폭락했다. 투자자들은 큰 손해를 입었다며 혼란에 빠졌다./ 비트코인 갤러리 캡처

실제 올해 5000만원을 가상화폐에 투자한 김중민(49)씨는 처음에 10%쯤 가격이 오르자 대박의 꿈을 꿨다가, 정부 규제가 가시화되자 손해를 본 경우다. 김씨는 “뉴스를 봐도,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가상화폐 투자로 돈을 벌었다는 얘기만 하길래 나도 할 수 있다는 마음에 뒤늦게 투자했다”며 “하지만 돈을 벌었다는 동료는 결국 손실을 봤고, 내 돈도 잃었다”고 말했다.

가상화폐 커뮤니티 ‘코인판’에는 수익인증 게시판과 함께, 손실인증 게시판도 함께 있다. 여기에는 4억6000만원을 투자해 1억7000만원 가량 손해 본 ‘손실 인증’ 사진이 올라오기도 했다. 글쓴이는 “며칠 전까지는 집 한 채 샀다고 생각했는데 현금화하기 전까지는 내 돈이 아니라는 말을 절실히 느꼈다”고 썼다.

그러나 손실인증은 퇴사인증보다 주목도가 낮고, “존버(끝까지 버틴다는 뜻)해야 한다”는 격려 댓글만 달리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전문가는 “수많은 투자자들이 이윤이 생길 것이라는 데에만 초점을 맞춰서 누가 얼마나 잃었는지는 알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라면서 “정부규제 등으로 가상화폐 생태계에 거품이 빠지면서 투자의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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