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덩어리 가상화폐" 칼 뺐다가… 7시간 만에 발 뺐다

    입력 : 2018.01.12 03:02

    [가상화폐 롤러코스터]

    '거래소 폐쇄' 부처혼선에 대혼란

    朴법무 "가상화폐는 투기·도박"
    최종구 금융위장도 "조율된 발언"
    정부 강경입장에 항의 쏟아지자… 청와대 "법무부 방안일 뿐" 진화
    법무부 부랴부랴 "협의 뒤 추진"

    가상 화폐 광풍에 대한 정부 당국의 압박이 갈수록 강력해지고 있다. 최근 경찰 수사와 국세청 조사에 이어 11일에는 박상기 법무장관이 '가상 화폐 거래소 폐지'까지 거론했다. 하지만 일부 투자자가 청와대 홈페이지에 달려가 가상 화폐 규제 반대 목소리를 키웠고, 청와대가 "추후 논의와 조율을 거쳐 최종 결정될 것"이라며 투자자를 달래는 일까지 발생했다. 그사이 가상 화폐 가격은 이날 하루 종일 출렁였다.

    ◇법무부 "가상 화폐는 가치 없는 돌덩이"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11일 법조기자단 간담회에서 가상 화폐 논란과 관련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11일 법조기자단 간담회에서 가상 화폐 논란과 관련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법무부가 강공을 펴는 것은 가상 화폐 거래를 사실상의 투기·도박으로 보기 때문이다. 박상기 장관은 이날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가상 화폐를 '아무 가치 없는 돌덩어리'에 비유했다. 가상 화폐 거래를 "돌덩이를 두 사람이 돈을 주고 거래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가상 화폐는 어떤 가치에 기반을 둔 '거래 대상'이 아닌데 (투기) 수요가 몰리며 가상 화폐 거래가 사실상 투기·도박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한국 상황을 더욱 심각하게 평가했다. 외신에 등장하는 '김치 프리미엄'이란 말도 꺼냈다. '김치 프리미엄'이란 가상 화폐가 다른 나라보다 한국에서 특히 높은 가격에 유통되는 현상을 말한다. 한국의 투기 수요가 지나쳐서 발생한다. 박 장관은 "국내 가상 화폐 거래가 비정상적이라는 국제 평가가 내려진 것"이라며 "산업 자본화해야 할 자금이 가상 화폐 거래로 빠져나가고, 거품이 붕괴됐을 때 개인이 입을 손해를 생각하면 정부 개입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박 장관은 가상 화폐 투자가 '블록체인 기술'(가상 화폐 거래 내역을 인터넷에 접속된 수많은 컴퓨터에 동시 저장하는 기술) 발전에 기여한다는 일부 주장도 부정했다. 그는 "가상 화폐 거래를 통해 블록체인이 발전한다는 주장은 이 문제를 호도하는 것"이라며 "다른 방식으로 그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했다.

    ◇하루 종일 요동친 가상 화폐 시장

    대표적인 가상 화폐인 비트코인 시장은 정부의 '입'이 열릴 때마다 크게 요동쳤다. 비트코인은 이날 오전 국내 거래소(코빗 기준)에서 1비트코인당 2100만원 선에서 안정적으로 거래됐다. 하지만 박상기 장관의 '가상 화폐 거래소 폐지' 발언이 알려지면서 '패닉 장세'가 벌어졌다. 오전 11시 2100만원 선에서 움직이던 비트코인은 박 장관 발언으로 오후 1시 45분 1550만원대까지 떨어졌다. 25% 이상 급락한 것이다. 이후 비트코인은 저가 매수를 노리는 투자자 유입에 힘입어 오후 5시 이후 2000만원 선을 회복했으나, 다시 단기 차익을 챙기려는 '팔자' 행렬에 값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날 비트코인 가격을 다시 반등시킨 건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의 발언이었다. 오후 5시 20분쯤 윤 수석이 "가상 화폐 거래소 폐지는 확정된 사안이 아니다"라고 출입기자들에게 밝힌 것이다. 법무부 방침에 제동을 건 것이다. 1920만원까지 떨어졌던 비트코인 시세는 이 발언으로 소폭 상향한 뒤, 박스권 행보를 보였다. 오후 7시 기준 비트코인 시세는 1960만원 선에서 움직였다.

    ◇정부 부처 간 혼선

    박상기 장관은 이날 "현재 법무부가 추진하는 방향으로 (정부 차원에서) 부처 간 이견 없이 특별법 제정 방안이 잡혔고 곧 시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11일 오후 서울 무교동의 가상 화폐 거래소에서 한 시민이 가상 화폐 가격이 적힌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다.
    11일 오후 서울 무교동의 가상 화폐 거래소에서 한 시민이 가상 화폐 가격이 적힌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다. 이날 법무부가 가상 화폐 거래소 폐쇄 등 규제 방안을 발표하자 가상 화폐 가격이 급락했다. 불안한 투자자들은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글을 올리며 불만을 쏟아냈다. /김연정 객원기자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국회 4차산업혁명 특별위원회에 참석, "법무부 장관의 말은 부처 간에 조율된 것이고, 서로 협의하면서 할 일을 하고 있다"며 박 장관 입장에 동조했다. 하지만 곧바로 시행될 것이라는 박 장관과는 달리 장기 과제라고 했다. 최 위원장은 "현행법 아래서 과열 현상을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하고, 장기적으로 이런 거래가 계속된다면 취급 업소(거래소) 폐쇄까지 가능한 입법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정책의 수장 격인 기획재정부는 신중한 입장이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아직 정부 내에 통일된 입장이 있는 것이 아니고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사이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가상 화폐 규제 반대'라는 청원이 몰렸고, 투자자 반발이 극심해지자 정부 기류에 변화가 일어났다. 청와대가 나선 것이다. 윤영찬 수석은 "박 장관의 발언은 법무부가 준비해온 방안 중 하나"라며 법무부의 가상 화폐 거래소 폐지 계획에 힘을 빼 버렸다. 윤 수석의 발언이 알려지자 법무부는 오후 6시 16분쯤, 부랴부랴 자료를 내고 "가상 화폐 거래소 폐쇄를 위한 특별법은 추후 관계 부처와 협의를 통해 추진해 나갈 예정"이라며 수위를 낮췄다. 박 장관은 부처 간 이견 없이 특별법 제정 방안이 잡혔다고 자신 있게 말했으나, 7시간여 만에 '부처 협의 후 추진'으로 꼬리를 내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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