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명이 희생된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는 현장 지휘관의 대응 부실로 피해가 커졌다는 소방 당국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소방합동조사단은 11일 제천체육관에서 최종 브리핑을 열고 "현장 지휘관들이 2층에 요(要)구조자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도 특별한 지휘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지휘관으로서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소방청은 전문가 24명으로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17일간 현장을 감식했다.
소방청은 사고 당일 현장을 지휘한 이상민 제천소방서장과 김종희 제천소방서 지휘조사팀장에 대해 중·징계를 요구하고, 총책임자인 이일 충북소방본부장의 직위를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현장 지휘관, 지휘 역량 부족"
조사 결과에 따르면 화재는 1층 천장 보온등이 과열되며 발생했다. 불붙은 단열재가 주차 차량 16대로 옮아붙으며 확대됐다. 특히 방화문이 없는 필로티 건물의 취약한 구조 탓에 화재가 실내로 급속하게 확산된 것으로 밝혀졌다.
20명이 숨진 2층 여성 사우나 진입이 늦어진 것은 지휘부의 역량 부족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지휘팀장과 소방서장 등은 2층 구조자에 대한 정보를 상황실에서 전해 듣고도 대원들에게 전달하지 않았다. 합동조사단은 "지휘팀장이 눈앞에 노출된 위험과 구조 상황에만 집중해 건물 후면의 비상구 존재와 상태를 알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당시 지휘팀장은 1층 주차장 화재 진압과 LPG 탱크 폭발 방지를 지시한 뒤 3층 난간에 매달린 시민을 구하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오후 4시 12분 현장에 도착해 지휘권을 넘겨받은 제천소방서장도 2층 상황을 전달받았으나 진입 지시를 하지 않았다. 서장은 오후 4시 33분이 돼서야 2층 유리창을 파괴하고 내부로 진입하라고 지시했다. 합동조사단은 이에 대해 "화세(火勢)가 누그러든 2층 일부 유리창은 구조대원이 도착한 오후 4시 6분 이후 진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며 "지휘관으로서 전체 상황 장악에 소홀했다"고 했다. 또 "가장 일반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비상구를 통한 진입이나 유리창 파괴를 통한 내부 진입을 지시하지 않은 것은 지휘 역량이 부족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구조대가 오후 4시 6분 도착 즉시 3층 요구조자를 먼저 구하고 지하층 수색에 들어간 것은 "부적절하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지휘관으로부터 별도 지시를 받은 것이 없고 2층 상황을 전달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판단이다. 구조대원들은 오후 4시 16분 비상구를 통해 2층 진입을 처음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구조대는 "난간을 잡지 못할 정도로 농연(濃煙)과 열기가 거셌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조사단은 "구조 활동에 보다 적극적이지 못했던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했다.
◇휴대폰으로 연락해 정보 공유 안 돼
119상황실은 2층 상황에 대한 정보를 무전기가 아니라 휴대폰으로 지휘팀장과 화재조사관에게만 전달했다. 조사단은 "상황실에서 정보 전달에 무전보다 휴대폰을 더 많이 사용한 것은 재난 현장 표준작전 절차를 위반한 것"이라고 밝혔다. 소방 당국은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김익수 충북소방본부 소방종합상황실장에 대해서도 중징계를 요구했다.
다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소방대원들이 LPG 탱크 주변 진화 작업을 우선한 것에 대해서는 "필요한 조치"라고 봤다. "당시 화재 발생 현장에서 1m 떨어진 2t 용량 LPG 탱크가 폭발할 경우, 최소 대피 거리인 559m 범위 내에 대형마트와 아파트, 중학교 등이 위치해 있어 많은 인명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고 분석했다.
이날 소방 당국은 제천 참사와 같은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한 대책도 발표했다. 먼저 중앙119구조본부에서 현장 지원 요청 전 대형 헬기로 다수의 구조대원을 우선 출동시키는 등 화재 발생 시 출동 시스템을 개선해 골든타임을 사수하겠다고 했다. 화재 초기 불법 주·정차 차량 때문에 굴절사다리차 등이 바로 배치되지 않았던 문제와 관련해 좁은 골목을 지나갈 수 있는 소형 복합사다리차 같은 특수소방차를 개발해 2021년까지 전 소방서에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현장 지휘관 역량 부족 문제에 대해선 소방학교 교육훈련을 현행 이수제에서 능력평가 자격 인증 방식으로 전면 개편하겠다고 했다. 일정 시간 참여만 하면 교육 이수를 인정하는 현행 소방학교 교육 프로그램을 미국처럼 실제 훈련 중심의 능력 평가 방식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소방 당국은 이를 승진 필수 요건으로 규정하겠다고 했다.
이 밖에 사전 예고 없이 불시 소방특별조사를 확대 실시해 소방시설 단속의 실효성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비상구 폐쇄 등 중대 위반 사항에 대해 영업정지 등 가장 강력한 행정처분을 하고, 이로 인한 인명사고가 발생한 경우 최고 10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벌칙을 강화한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