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무줄 GDP’ 또 논란…리커창도 못 믿는 엉터리 통계

입력 2018.01.11 14:46

새해 벽두부터 중국 네이멍구(內蒙古) 지방정부가 2016년 산업생산량과 재정 수입을 실제보다 각각 40%, 26% 많게 부풀린 것으로 드러나면서, 중국에서 또다시 통계 부실 논란이 불거졌다. 네이멍구 지방정부의 자발적인 고백이 아니라 지난해 7월 중국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의 내부 감사에 적발된 데 따른 후속 발표였다.

네이멍구는 통계 조작 규모를 발표한 직후 올해 도로·지하철 건설 등 인프라 관련 예산을 500억위안(약 8조원) 갑작스레 삭감하는 등 정책 기조도 확 바꿔버렸다. 그러나 경제 대공황이 아니라면 상상도 못할 정도로 경기·재정 지표가 악화되는 상황인데도, 정작 경제 성장률이 얼마만큼 부풀려졌는지는 감추고 있어 혼란만 가중되는 양상이다.

중국 내몽고 바오터우시 시내 모습 /블룸버그
중국에서는 이처럼 지방정부가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경제 통계를 고무줄처럼 늘리는 관행이 해마다 되풀이된다. 그 규모도 해마다 급증하는 추세다. 지난해엔 중국 랴오닝(遼寧)성이 지역내총생산을 20% 가까이 부풀렸다가 시진핑 주석의 ‘통계를 조작하지 말라’는 경고 후에야 부랴부랴 통계 조작 사실을 시인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세계 2위 경제대국 중국에선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시시때때로 발생하는 것일까?

◆ 리커창도 못 믿는 중국의 엉터리 통계

“중국의 경제 통계나 지표는 전혀 신뢰할 수 없다.”

중국 공식 통계의 신뢰도를 이렇게 과격하게 비판한 것은 다름 아닌 중국 권력 서열 2위인 리커창 총리였다. 물론, 공식적인 발언은 아니었다. 2007년 9월 다롄(大連)에서 개최된 하계 다보스포럼에서 미국 경제계 대표단과의 회식 자리에서 비보도를 전제로 꺼낸 말이었는데, 중국 주재 미국 대사가 이런 내용을 담은 전문(cable)을 국무부에 보고했다가 2010년 위키리크스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리커창 중국 총리/사진:블룸버그
중국은 1985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각각 별도로 GDP를 집계하고 있으나, 전체 GDP를 집계할 땐 지방정부 통계를 일부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경제 규모가 크지 않을 땐 통계 조작으로 인한 영향이 미미해 보였으나, 2012년 무렵부터는 통계의 신뢰도를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통계 조작이 줄줄이 발각되면서 매년 거시 경제학자들의 항의가 잇따른다. 한국의 통계청에 해당하는 국가통계국조차 지방정부의 통계 조작을 어느 정도 시인한다.

지방단위에서 통계 조작이 만연하게 된 주된 이유는 지역 경제성장률이 지방 관료의 능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실적 수치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실물 경기가 하강 국면에 접어들었는데도 중앙 정부가 제시한 경제 성장 목표치를 달성하려면 무리하게 통계를 조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국 국무원발전연구센터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중국 31개 성시(省市·성 및 직할시)가 각자 내놓은 성장률 목표치 중 중앙 정부의 목표치보다 낮은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2015~2017년에도 헤이룽장성 등 2~4개 지역만이 성장률 목표치를 중앙정부 목표치보다 낮게 잡았다. 상부에 겉모습을 보기 좋게 꾸미는 이러한 관행을 ‘체면(面子)공정’이라고도 부른다.

◆ “실물 경기 고꾸라진 북부 내륙 지방서 조작 만연”

그렇다면 앞서 언급된 네이멍구와 랴오닝 외에 어떤 지역이 성장률을 조작하는 것일까.

중국 경제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방 정부는 보통 성장률을 조작할 때 명목 GDP를 부풀리고 GDP 디플레이터를 낮춰 잡는 방식을 쓴다고 한다. GDP 디플레이터란 명목 GDP를 실질 GDP로 나눈 뒤 100을 곱해 산출한 값으로 물가를 나타내는 지표다. 그런데 두 수치를 조작해버리면, 실질GDP가 명목 GDP보다 높아지는 기(寄)현상이 벌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보통 물가 상승률이 플러스인 상황에서 명목 GDP는 실질 GDP보다 높아야 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기현상이 발견되는 지역일수록 통계 조작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본다. 과거 10년간 각 지방정부의 성장률을 살펴보면 이런 실질 성장률이 명목 성장률보다 높았던 곳은 랴오닝, 톈진, 허베이, 내몽고, 샨시, 헤이롱쟝 등 주로 중국 북부 내륙 지역이다.

이들 지역은 석탄, 철강 등 원자재·중공업 산업에 의존하는 공통점이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 당국이 중후장대 산업을 대상으로 점진적으로 공급 과잉 축소에 나서는 상황이라 실물 경기가 큰 압박을 받고 있어 지방 관료들의 통계 조작 유혹이 커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반면, 광둥성이나 장쑤성 등 중국의 성장을 이끄는 남부 해안 지역은 지표를 조작할 유인이 적은 것으로 보인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 GDP 통계 개편 나선 中…과잉 부채 속 위기감 가중

중국 정부는 통계 조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0여년 전부터 통계 수치를 바꾸거나 조작하는 지방 공무원과 기업인을 엄벌하겠다고 경고했으나 별 소득을 거두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말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GDP 산출 방식을 2019년까지 통일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이와 더불어 시 주석은 관변 언론을 통해 ‘통계 조작’을 멈추라는 메시지를 여러 차례 밝혔다.

문제는 중국의 총부채 수준이 GDP의 300%에 육박할 정도로 부채가 빠르게 늘고 있는 상황에서 GDP 통계의 신뢰도가 떨어져 버려 중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을 가늠하기 갈수록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말 특별 보고서를 내고 중국의 부채가 과도하다는 점을 문제 삼으면서, 시중은행들이 대규모 자본 확충이 필요하다고 권고하기도 했다.

자국 통계조차 믿지 못한 리 총리는 10년 전 미국 경제인들에게 어떤 조언을 남겼을까. 그는 전력소비량, 철도 화물 운송량, 은행 융자액 등 세 가지 지표만 믿을 수 있다고 했다. GDP를 산출하기 위해 쓰이는 일부 세부 지표만 신빙성이 간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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