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 체 하지 마라, 당신도 시간을 넘을 수 없다

조선일보
  • 정상혁 기자
    입력 2018.01.12 03:02

    모래시계는 우리 모두 한 줌 먼지가 될 것을 함의한다
    시간은 끝, 죽음으로 귀결된다

    시성(詩聖) 괴테는 “내가 유일하게 숭배하는 여신은 시간”이라고 말했다지만, 시간은 가차 없고, 모든 건 한 줌 모래가 될 것이다.
    시성(詩聖) 괴테는 “내가 유일하게 숭배하는 여신은 시간”이라고 말했다지만, 시간은 가차 없고, 모든 건 한 줌 모래가 될 것이다. 그러니 솔로몬 왕은 가차없이 흘러내리는 시간을 소중히 사용하라고 충고한 것이다. / Getty Images Bank

    시간의 탄생

    알렉산더 데만트 지음|이덕임 옮김|북라이프|728쪽|3만2000원

    시간 때문에 인간은 죽을 것이나 시간 속에서 인간은 살아갈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은 무엇인가?

    이 책은 독일의 저명한 고대 사학자인 저자가 시간을 연구하기 위해 30년의 시간과 맞바꾼 '시간의 백과사전'이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시간의 개념과 관점이 어떻게 변했고, 인간이 어떻게 시간을 소유했으며, 어떻게 시간이 일상을 지배해왔는지를 언어학·신화학·문학을 동원해 추적한다. 그리스부터 시작된 서구 문명의 도저한 문화사(史)이면서, 과학과 신화, 종교와 언어학·철학에서 빌려온 수많은 예시와 비유 덕에 일종의 잠언이나 문학서로도 읽힌다.

    시간은 시간을 초월한 주제이고, 시간을 정의할 때조차 시간을 필요로 한다. 시간은 향(香)처럼 불확실하면서 확실하고, 그 때문에 피타고라스가 "시간은 하늘의 영혼"이라고 에두르거나 쇼펜하우어가 "뇌의 발명품"이라며 평가절하할 때조차 시간의 정의는 시(詩)처럼 느껴진다. 순환적 시간을 클래식 음악의 론도(rondo), 선형적 시간을 푸가(fuga)에 빗대는 멋스러움도 14개 장(章)과 364개의 소주제를 시의 제목처럼 보이게 한다.

    "시간 자체는 역사가 없으며 변화도 없지만 그것이 지닌 규칙성을 통해 우리는 변화의 표상을 감지한다." 언어학은 시간의 과거를 추적하는 실마리가 된다. 인간이 시간을 구역별로 잘라 측정하듯, 영어·프랑스어·라틴어로서의 시간은 모두 '자르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템노(temno)에 뿌리를 둔다. 시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으나 존재의 양식은 달랐다. 로마인들이 날(日)을 기준으로 시간을 헤아렸다면 게르만인들에겐 밤이 기준이었다. 현재 어디서나 신년으로 간주되는 1월 1일은 기원전 154년 로마 원로회 칙령에 바탕을 둔 것이나, 1월 1일이 존재하지 않는 시기도 있었고, 마인츠(크리스마스), 쾰른(부활절)처럼 기독교 기념일을 신년의 처음으로 삼는 곳도 있었다.

    시간을 손에 쥐기 위해 인간은 시계를 만들었다. 고대부터 해와 물을 이용했고, 15세기에 태엽이 나왔다. 그러나 시계가 달라도 시간은 같다. 고대부터 변하지 않은 것은 하루 12시간 개념이었다. 1793년 프랑스에서 시간에 십진법이 도입돼 하루를 10시간, 1시간을 100분으로 나눈 적 있으나, 세상은 여전히 12진법을 원했고 제도는 2년 만에 폐지됐다. 항해술의 발달로 시계는 더 정교해지면서 시계는 인간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시간 엄수가 사회의 주요 원칙이 됐다. 저자에 따르면 "시간은 돈"이라는 신조는 1748년 미국 사업가 벤저민 프랭클린이 고안한 것이고, 이는 삐딱한 공식이다. 인간은 시간을 소비하면서 돈을 늘릴 수 있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아침 식사를 하면서 그날 하루를 어떻게 사용할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다면 시간에 관해서는 파산자라고 볼 수 있다는 지적. "부자가 자신의 곳간을 채우고 휴식을 기다릴 때 그의 시간은 끝이 난다."(루카복음 12장 16절)

    그리스어 아이온(Aion)이 세상사를 관통하는 가장 긴 시간이라면, 카이로스(Kairos)는 가장 짧은 시간, 즉 기회를 의미한다. 카이로스의 형상은 앞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발꿈치에 날개를 단 발가벗은 소년이다. 달아나지 못하도록 머리카락을 잡으려 하지만, 로마의 작가 파이드루스는 "최고신 주피터조차 달아나는 그 소년을 잡아올 수 없다"고 기록했다. 독일 문학의 거장 에른스트 윙거에게 모래시계는 '시간의 상형문자'였다. 그는 모래시계의 모양이 고대 게르만족 상형문자 속 '삶'과 '죽음'과 유사하다고 봤다. 1773년 리히텐베르크가 표현했듯 모래시계는 "우리 모두 한 줌 먼지가 될 것"을 함의한다.

    시간의 탄생

    시간은 끝, 죽음으로 귀결된다. 키케로는 죽기 1년 전 이런 글을 썼다. "종말을 항상 염두에 두되 두려워하거나 슬퍼하지는 말아야 한다." 저자는 사후 세계에 대한 모종의 믿음을 배척하는 대신 불안한 삶 이후에 찾아오는 영원한 휴식이야말로 자연의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라고 위로한다. 그렇다면 영원은 무엇인가. 세네카는 "인간은 시간의 흐름 속에 사라지지 않을 어떤 것을 바란다"고 썼다. 영원성에 대한 희구는 예술과 기록을 낳았다. 고로 모든 곳에 시간이 있다.

    새해 맞이하는 독서의 시간, 시간을 아우르느라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으나 그 시간은 값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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