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현장에 '인권 동판' 설치

입력 2018.01.11 11:21

서울시는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열사의 31주기(1월 14일)를 맞아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이 있었던 건물의 출입구 바닥에 국가 폭력에 대한 저항을 상징하는 역삼각형 형태의 동판을 설치했다고 11일 전했다./연합뉴스

1987년 고문치사 사건으로 사망한 박종철 열사의 31주기를 맞아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 터에 당시 사건현장을 알리는 바닥 동판이 설치됐다.

서울시는 남영동 대공분실이 있었던 건물 출입구 바닥에 국가 폭력에 대한 저항을 상징하는 역삼각형 형태(가로·세로 35㎝)의 동판을 설치했다고 11일 밝혔다.

이곳은 박종철 열사와 고(故)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등 수많은 민주화 인사들이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한 곳이다. 박종철 열사는 1987년 1월 14일 대공분실에서 전기고문과 물고문 등 가혹한 고문을 받다 숨졌으나 당시 경찰은 이를 은폐하기 위해 ‘조사 중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황당한 발표를 내놨고, 이와 같은 사실이 밝혀지면서 6월 민주화 항쟁의 기폭제가 됐다.

인권현장 바닥 동판은 ▲10·28 건대항쟁 자리 ▲민주인사 등에게 고문수사를 했던 국군보안사 서빙고분실 터 ▲일제강점기 여성인권을 탄압한 기생조합 한성권번 터 ▲미니스커트·장발 단속 등 국가의 통제와 청년의 자유가 충돌했던 명동파출소 ▲부실공사와 안전관리 소홀로 사상자 49명을 낸 성수대교 등 5곳에도 설치됐다.
사진은 '남영동 대공분실 터(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민주화운동 당시 단일사건 최대인 1천2백88명의 학생이 구속당한 '10.28 건대항쟁 자리', 민주인사 등에게 고문수사를 했던 국군보안사 서빙고분실 '빙고호텔 터', 일제강점기 여성인권을 탄압한 대표적인 기생조합인 '한성권번 터' 미니스커트·장발 단속 등 국가의 통제와 청년들의 자유가 충돌했던 '명동파출소', 부실공사와 안전관리 소홀로 49명의 사상자를 낸 '성수대교' 표지석./연합뉴스
‘10.28 건대항쟁’은 1986년 10월 28일부터 31일까지 건국대에서 전개된 민주화 운동으로, 당시 경찰이 건국대 본관 앞에서 민주화 시위를 하던 전국 27개 대학 2000여 명의 대학생들을 5개 건물 안으로 몰아넣고 헬기를 동원해 시위를 진압했다. 이로 인해 1525명이 연행되고 1288명의 학생이 구속됐다.

국군보안사 서빙고분실은 남영동 대공분실과 함께 악명 높은 고문수사 시설로 꼽히는 곳으로, 1972년 10월 유신 이후 ‘빙고호텔’ 등으로 불리며 공포정치의 대명사로 통했으나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한성권번 터에도 동판이 설치됐다. 권번은 일종의 기생 조합으로, 입회비, 월회비, 수입 일부를 수수료 명목으로 떼어가며 여성 인권을 탄압했다. 이 자리에는 현재 프리미어플레이스 빌딩이 들어서있다.

명동파출소는 1970년대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이 이뤄지던 당시 국가가 청년들의 자유를 통제하던 곳이었으며, 성수대교는 부실공사와 안전관리 소홀로 대형 인명사고가 벌어진 현장이다.

전효관 서울혁신기획관은 “인권현장을 시민들이 쉽고 편리하게 탐방할 수 있도록 도보 탐방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라며 “그간 잘 알지 못했던 인권현장에 얽힌 사연과 아프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어두운 역사에 대해서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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