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버그 "한국서 재벌이 10억달러 재산 지키는 방법"

입력 2018.01.11 07:44

블룸버그가 ‘커피 재벌’로 알려진 동서그룹의 사례를 언급하며 최근 문재인 정부의 재벌 개혁 움직임을 조명했다.

◆ 블룸버그, 韓 정부 ‘재벌 개혁’ 주목…“文, 엄중 단속 나섰다”

10일(현지시간) 블룸버그는 “가족경영 중심의 그룹을 글로벌 기업으로 일궈낸 총수 일가, 일명 ‘재벌’은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라며 “최근 이들의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사회적 감시가 심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의 ‘자이바쯔(財閥)’에서 유래된 재벌은 한국 대기업집단을 대표하는 고유명사로, 다른 나라에는 없는 명칭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된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인 57개 기업집단 가운데 자산총액이 100조원이 넘는 상위 5개 집단(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롯데)의 자산총액은 975조7000억원, 매출액은 693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엄정한 법 집행으로 일감 몰아주기를 없애겠다. 총수 일가의 편법적 지배력 확장을 억제하겠다”며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주주의결권을 확대하고,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제공
한국 재벌들은 그간 최대 65%에 달하는 상속세율을 피하기 위해 일감 몰아주기, 뇌물 수수 등 비윤리적 경영을 통해 부를 세습하며 국민들의 분노를 사왔다. 이에 최근 한국 정부는 재벌 개혁의 중요성을 설파하며 주주의결권, 스튜어드십 코드(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가 적극적으로 의결권 행사를 하게 하는 가이드라인) 확대 추진 등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지난해 공정위가 제시한 ‘자발적 개혁’의 마감 시한(지난해 말)이 지나도록 삼성, 현대차 등 대표 재벌 기업들이 ‘답안지’를 제출하지 않으면서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들 기업은 2015년부터 총수일가 지분을 29.9% 수준으로 낮춰 일감 몰아주기 규제 기준을 회피하고 있는 상태다. 공정위는 총수 일가 지분율이 30% 이상인 상장회사 혹은 20% 이상인 비상장회사를 사익편취 규제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한국 정부가 재벌들의 편법적 경영권 승계에 이용되는 규제들의 허점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정부의 잇따른 시도를 “엄중한 단속”이라고 평가했다.

◆ “동서그룹 등 중견기업도 철저히 감시해야”

블룸버그에 따르면 동서그룹 총수 일가의 행보도 여느 재벌들과 다름없다. 동서그룹은 창업주인 김재명 명예회장이 지난 1975년 5월 설립한 ‘아폴로보온병공업’이 전신인 종합가공식품회사다. 국내에서는 ‘맥심’ 커피믹스와 ‘포스트’ 시리얼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재 동서식품·동서유지·동서물산·성제개발·대성기계·동서실업·동서음료 등 7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으며, 지난 2016년 기준 연결자산규모는 2조3000여억원 수준이다.

서울시 마포구 독막로에 위치한 동서식품 본사 사옥. / 동서식품 홈페이지 캡처
동서그룹의 지배구조는 김씨 일가가 지주회사인 동서를 통해 계열사를 지배하는 식이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김 명예회장의 장남 김상헌 동서 고문(18.86%)과 차남 김석수 회장(19.4%), 김 고문의 장남인 김종희 전무(11.22%)가 각각 동서의 지분을 갖고 있으며, 이들을 포함한 특수관계자의 지분은 총 67.19%에 달한다. 동서는 그룹 내 핵심 계열사인 동서식품(50%)과 동서물산(62.5%), 동서유지(48%)의 지분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

동서물산과 동서유지의 경우 동서식품 등 그룹 내 계열사 간 매출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7월 동서가 인수한 성제개발은 한때 동서를 통해 90%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동서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자산규모 5조원)에 미치지 못해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블룸버그는 “공정위가 지난해 6월 부당 내부거래 혐의가 있는 대기업집단에 대해 기업규모와 관계 없는 직권조사를 진행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아직까지 동서그룹에 대한 조치는 취하지 않고 있다”며 “김재명 동서그룹 명예회장은 ‘블룸버그 억만장자 인덱스’ 기준 20억달러(약 2조1300억원) 상당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지나친 규제가 기업 성장 막는다는 지적도

일각에서는 ‘편법 승계’에 대한 경계는 늦추지 않아야 하지만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관련 규제가 대기업보다 유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재벌로 꼽히는 대기업들은 모두 가족경영 특유의 신속한 의사결정을 바탕으로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 총수 일가가 상속 및 증여세를 내기 위해 기업을 판 사례도 있다”며 “세금 부담으로 인해 경영권 상속을 포기하는 중소·중견기업이 늘면 자칫하다 우리나라에 긴 역사와 경쟁력이 있는 기업들의 씨가 마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5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7회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는 모습. 법원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 이 부회장의 뇌물이 경영권 승계와 관련이 있다고 판단, 1심에서 5년형을 선고했다. / 연합뉴스 제공
그러나 블룸버그는 설령 공정위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하더라도 재벌들에게는 여전히 ‘재단’이라는 선택지가 남아있다고 꼬집었다. 공익재단은 공익을 수행한다는 명목으로 상속·증여세 등을 면제받는다. 총수 일가 계열사 주식을 기부 받아 장기 보유하거나 계열사 주식을 매수할 수도 있다. 때문에 재벌들의 공익재단은 그동안 ‘편법’ 상속·증여 통로 역할을 하며 지배구조 강화의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삼성생명공익재단만 해도 지난 2016년 삼성SDI가 매각에 나선 삼성물산 주식 500만주 중 200만주를 사들여 논란이 됐다.

회사를 합병하는 방법도 있다.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한 삼성이 대표적인 예다. 블룸버그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 과정에서 수조원에 달하는 경영권 승계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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