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인에게 천주교 책을 줬더니…

입력 2018.01.11 03:04

골롬반 선교사 보고서 '극동' 출간… 교육열 등 80년前 우리 모습 그려

"교황청은 우리 선교사들을 '동방의 은자의 왕국'으로 알려져 온 이곳으로 호출했다. 부디 천주님께서 그들(의 길)을 밝혀주시고 그들로 하여금 앞서 그곳을 갔던 선교사들과 동렬(同列)에 오를 공덕을 쌓도록 도와주소서."

1933년 11월 아일랜드에 본부를 둔 천주교 성(聖)골롬반외방선교회 회지(會誌) '극동(The Far East)'은 조선 선교를 시작하는 각오를 담은 사설을 실었다. 이해에 골롬반회는 프랑스의 파리외방전교회, 독일 베네딕도회, 미국 메리놀회에 이어 조선 선교를 맡게 됐다. 목포에 본부를 두고 광주·전남과 강원 일대에서 포교했다. 1930~1950년대 선교사들이 쓴 보고서는 '극동'지에 실렸고, 낯선 나라 조선의 이모저모를 유럽에 알리는 데 이바지했다. 이 기사들을 번역한 '극동'(살림출판사)이 최근 출간됐다. 한국문학번역원 '그들이 본 우리' 총서의 하나로, 박경일 경희대 명예교수와 안세진 서울 동북고 교사가 함께 번역했다.

아일랜드 선교사가 촬영한 조선의 짐꾼. 몸집의 몇 배나 되는 짐을 짊어진 모습이 경이롭다.
아일랜드 선교사가 촬영한 조선의 짐꾼. 몸집의 몇 배나 되는 짐을 짊어진 모습이 경이롭다. /살림출판사

선교사들은 1934년 7월호부터 이듬해까지 8회에 걸쳐 '천주교 신앙은 어떻게 조선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는가' 특집을 연재했다. 가옥 구조, 구들장, 지게, 베개, 이불과 요, 김칫독 그리고 강강술래 풍습까지 상세히 보고하면서 조선에 관해 하나라도 더 알리려 애쓴다. 향학열에 대해선 "조선에서 배움에 대한 경외심은 아주 오래된 시절부터 그 자체로 거의 하나의 신앙에 가까웠다"고 썼다. 학교를 개설하고 신입생을 모집했는데 100명 정원이 다 차자 부모들이 '농성'을 벌이고, '내 자식이 쓸 책상을 직접 사 오겠다'는 대목이 흥미진진하다.

감동 사연도 있다. 하루는 성당 앞마당에 난데없이 '움막'이 등장했다. '문둥이(한센인)'가 무단 침입한 것. 37년간 아내와 자녀와 단란하게 살던 가장(家長)이 7년 전 한센병에 걸려 유랑 걸식하다 성당 앞마당에 깃든 것이다. 어려서 글도 배웠다는 그는 선교사들에게 '읽을거리'를 부탁했다. 천주교 관련 서적을 잔뜩 안겼더니 혼자서 교리서와 기도문을 읽고 외워 세례성사를 받았다. 초기 천주교 신자들이 사제 없이 책으로 신앙을 받아들인 과정을 떠올리게 하는 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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