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世說新語] [450]화경포뢰 (華鯨蒲牢)

조선일보
  •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8.01.11 03:14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박은(朴誾)의 '황령사(黃嶺寺)' 시에 "화경(華鯨)이 울부짖자 차 연기 일어나고, 잘새 돌아감 재촉하니 지는 볕이 깔렸네.(華鯨正吼茶煙起, 宿鳥催歸落照低)"라 했다. 화경이 뭘까? 다산은 '병종(病鐘)'에서 "절 다락에 병든 종이 하나 있는데, 본래는 양공(良工)이 주조한 걸세. 꼭지엔 세세하게 비늘 새겼고, 수염도 분명해라 셀 수 있겠네. 포뢰(蒲牢)가 큰 소리로 울어대어서, 큰집에 쓰는 물건 되길 바랐지(寺樓一病鐘, 本亦良工鑄. 螭鈕細刻鱗, 之而粲可數. 庶作蒲牢吼, 仰充宮軒具)." 금이 가 깨진 종에 대한 시인데, 포뢰(蒲牢)가 무언지 또 궁금하다.

    화경(華鯨)은 무늬를 그려 넣은 고래다. 범고(范固)는 '동도부(東都賦)'에 "이에 경어(鯨魚)를 내어 화종(華鍾)을 울리니(於是發鯨魚, 鏗華鍾)"라 했다. 고래가 어찌 종을 칠까? 풀이는 이렇다. "바닷속에 큰 물고기가 있는데 고래라 한다. 바닷가에는 또 포뢰(蒲牢)란 짐승이 있다. 포뢰는 평소에 고래를 무서워해서, 고래가 포뢰를 치면 큰 소리로 운다. 그래서 종소리를 크게 하려는 자는 일부러 그 위에다 포뢰를 만들어 놓고, 이를 치는 공이는 고래로 만든다. 종에는 아로새긴 무늬가 있어서 화(華)라고 한다."

    그러니까 화경에서 화는 종이고 경은 공이를 뜻한다. 포뢰는 종 위의 매다는 장치에 새긴 동물의 이름이다. 고래 모양의 공이가 그 뭉툭한 주둥이로 종을 향해 달려들면 저를 잡아먹으려는 줄 알고 질색한 포뢰가 비명을 질러댄다. 그 비명이 맑고 웅장한 종소리가 되어 울려 퍼진다는 것이니 아주 특별한 상상력이다. 종 위에 얹어 새긴 동물을 흔히 용으로 알지만 사실은 포뢰다.

    포뢰는 용이 낳은 아홉 아들 중 셋째에 해당한다. 이들은 저마다 한 가지씩 특장이 있다. 첫째인 비희(贔屭)는 거북처럼 생겼고 무거운 짐을 잘 지킨다. 오늘날 귀부(龜趺)라 부르는, 비석을 받치고 선 거북이 바로 이 비희다. 셋째 포뢰는 소리가 맑고 크다. 고래와 만나 포뢰가 운다. 일종의 화답이요 상상 속의 조화음이다. 앞서 다산의 병든 종은 공이를 잘못 만나, 부서져 금이 갔다. 금이 간 종에서는 갈라지는 쇳소리만 난다. 올 한 해 나를 우렁우렁 울게 할 고래는 어디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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