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의 박정희… 93세에 총리 탈환하나

조선일보
  • 정지섭 기자
    입력 2018.01.10 03:04 | 수정 2018.01.10 07:57

    [23년간 집권했던 마하티르 前총리, 자신의 후계자에 맞서 야권연합 총리 후보 출마]

    강력한 국가주도 경제개발 주도… 말레이시아 비약적 성장 이끌어

    후계자 나집, 부패 스캔들에 퇴진 요구하며 야권연합 합류
    동성애 혐의 씌워 감옥 보낸 '앙숙' 野지도자와 손잡아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전 총리가 93세에 총리직에 재도전한다. 말레이시아 야당 연합인 희망연대(Pakatan Harapan·PH)는 지난 6일 올 상반기 예정된 총선을 이끌 총리 후보로 마하티르 전 총리를 확정했다.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하면 마하티르는 15년 만에 권좌에 복귀하는 기록을 세운다.

    1981년부터 23년간 장기 집권한 마하티르는 2003년 압둘라 바다위 부총리에게 총리직을 넘겨주고 스스로 물러났다. 산부인과 의사 출신인 마하티르는 주의회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상원 의원과 교육·통상·국방장관, 부총리를 거쳤다. 1981년 후세인 온 당시 총리가 건강상 사유로 사임하면서 총리직을 물려받았다. 강력한 리더십과 고도성장으로 높은 지지를 얻으며 2003년 10월 물러날 때까지 5차례 연임했다.

    마하티르 전 총리가 작년 8월 말레이시아 샤알람에서 열린 한 포럼에 참석해 연설하는 모습.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전 총리가 93세에 야당연합인 희망연대(Pakatan Harapan·PH)의 총리 후보로 확정됐다. 2003년 총리직에서 물러난 지 15년 만의 재도전이다. 그는 1981년 총리가 된 이후 23년간 장기 집권하면서 말레이시아의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말레이시아의 박정희’로 비유되기도 한다. 사진은 마하티르 전 총리가 작년 8월 말레이시아 샤알람에서 열린 한 포럼에 참석해 연설하는 모습. /AP 연합뉴스
    그는 '말레이시아의 박정희' 같은 인물이다. 집권 당시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계획을 입안하고 강력하게 추진했다. 박정희와 싱가포르의 리콴유, 중국의 덩샤오핑과 함께 아시아의 초고속 성장을 이끈 주역으로 꼽힌다. 특히 1997~1998년 아시아 금융 위기 때는 한국과 달리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조조정·시장개방 권고를 거부하고 해외 투기 자본 배척 및 강력한 자본 통제 같은 '경제 쇄국 정책'을 주도했다. 한국과 정반대 정책을 펼치고도 성공적으로 금융 위기를 극복한 사례로 평가받았다. 그는 재임 기간 경제적으로는 한국과 일본의 정책을 적극 벤치마킹하는 '동방 정책'을 실시하는 한편, 정치·외교적으로는 비동맹 노선을 고수하며 미국과 거리를 두었다.

    그는 총리 사임 후 집권여당인 통일말레이국민기구(UMNO)의 원로로 당적은 보유했지만 현실 정치를 떠나 주로 국내외 강연과 회고 활동에 주력했다. 그러다 2016년 3월, 현 총리인 나집 라작 총리 퇴진을 기치로 다시 정치 활동을 재개했다. 야권을 향해 '반(反)나집 연대'를 제안한 뒤, 그해 9월 말레이시아원주민연합당(PPBM)을 창당해 야권 연대에 합류했다.

    나집은 마하티르가 키워낸 인물이다. 나집이 재무장관·부총리를 거치며 승승장구해 2009년 총리에 오를 수 있도록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나집 정권의 잇따른 경제 실정과 부패 스캔들로 민심이 나빠지자 마하티르는 정권 퇴진 운동에 앞장섰다. 두 사람 관계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 것은 반정부 집회에 참석한 마하티르를 경찰이 '총리 명예훼손 혐의'로 조사했기 때문이다.

    마하티르가 새로 손을 잡은 PH는 과거 총리와 야당으로 대립했던 정적(政敵) 관계였다. PH의 실질적 지도자 역할을 해온 안와르 이브라힘(71) 전 부총리는 마하티르가 감옥에 집어넣었던 사람이다. 안와르는 한때 마하티르의 유력 후계자로도 거론됐지만, 금융 위기 해법에 대한 시각차로 마하티르와 멀어지면서 1998년에 해임됐고, 직권남용과 동성애 등의 혐의로 처벌되는 등 정치적 수난을 겪었다.

    그는 2014년에도 동성애 혐의로 추가 기소돼 5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PH는 마하티르의 총리 후보 내정을 발표하면서 "안와르를 조기 사면해 마하티르 후임으로 삼는다"는 '차기 구상'까지 밝혔다. 마하티르가 재집권을 위해 정치적 후계자(나집 라직)와는 척을 지고, 원수(안와르 이브라힘)와 손을 잡은 것이다.

    케방산 말레이시아 대학의 샴술 암리 바하루딘 교수는 "마하티르는 이번 총선에서 야권의 취약점으로 꼽히던 농촌 지역 표심을 얻어오는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경제 개발을 이끌었던 마하티르에 대한 향수가 표심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지 언론인 '프리 말레이시아 투데이'는 "야당이 인구의 다수(67%)를 점하는 말레이계 국민 표를 확실히 얻기 위해 마하티르를 선택했다"고 전했다.

    마하티르 영입은 기존 야권 지지층인 젊은 층과 중국계 등의 표심 이탈로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고령인 그가 총리직에 복귀한다고 해도 건강이 문제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그는 평소 고령에도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로 금주·금연과 절제된 식사를 꼽았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일간 뉴 스트레이츠 타임스는 "그가 지난달 독감과 고열 증상으로 일부 당무 일정을 소화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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