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만족시키려다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한 '위안부 합의 정부 입장'

입력 2018.01.09 22:07 | 수정 2018.01.10 07:51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9일 오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 처리 방향에 대한 정부 입장을 발표한 뒤 회견장을 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정부가 9일 발표한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정부 입장’에 대해 외교가에서는 ‘모두를 만족시키려다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날 서울 도렴동 외교부청사에서 위안부 합의 관련 정부 입장을 발표했다. 정부 입장은 “12·28 위안부 합의는 진정한 문제 해결이 될 수 없다”와 “합의는 파기하지 않는다. 일본 정부에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겠다”로 요약된다.

정부는 양국간 합의에 따라 일본이 10억엔을 출연해 만들어진 화해·치유 재단도 해산하지 않기로 했다. 일본이 출연한 10억엔을 반환하는 문제도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강 장관은 “일본 정부가 출연한 기금 10억엔은 우리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고, 이 기금의 향후 처리 방안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와 협의하겠다”며 “화해·치유재단의 향후 운영과 관련해서는 해당 부처에서 피해자, 관련단체, 국민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해 후속조치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정부 입장은 ‘합의 저평가’로 위안부 문제가 미결됐다는 점을 강조함과 동시에, ‘합의 파기’에 대한 책임은 면해 국제사회에서의 신뢰를 유지하겠다는 고민의 산물로 보인다.

문제는 고민한 결과가 기대에 못미친다는 것이다. 정대협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문제 관련 시민단체들은 이날 발표된 정부 입장에 대해 “문재인정부는 화해치유재단의 즉각적인 해산과 일본정부를 향한 범죄사실 인정, 공식사죄와 배상을 통한 법적책임 이행 요구’로 응답해야 한다”며 합의 파기를 요구했다. 안산권 나눔의 집 소장은 “피해자 중심이 아니어서 내용과 절차가 다 잘못됐다고 하면서도 이를 바로잡지 않겠다는 건 기만 행위”라고 지적했다.

9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집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옥선(동명이인) 할머니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발표한 한일 위안부 합의 처리 방향 내용을 시청하며 지친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정부의 반발도 만만치않다. 고노 다로(河野太郎) 일본 외무상은 이날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 측이 일본에 후속조치를 요구한 것에 대해 전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며 “한국 정부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합의를 착실히 시행할 것을 계속해서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가 밝힌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는 이유도 부실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강 장관은 “2015년 합의가 양국 간 공식 합의였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이를 감안해 우리 정부는 동 합의와 관련해 일본 정부에 재협상은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이기범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일 위안부 합의는 법적 구속력 있는 의무를 부과한 것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자제한다’ 또는 ‘노력한다’ 등과 같은 용어를 쓰고 있다”며 “이 합의는 (법적 성격을 띄는) 조약이 아닌 정치적 합의다. 우리 정부가 위안부 합의 파기를 선언하더라도 이에 대한 위험 부담은 일본에게 있을 뿐”이라고 했다.

한 전직 외교관은 “자유무역협정(FTA)도 필요하다면 재협상을 요청할 수 있지 않느냐”면서 “공식 합의이기 때문에 재협상을 요구할 수 없다는 논리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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