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9일 박근혜 정부에서 이뤄진 한·일 위안부 합의에 결함이 있지만 일본에 협상 파기나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잘못된 합의'임을 분명히 밝히면서도. 국가 간 합의였던 만큼 이를 뒤집어 외교 문제로 비화시키지 않는다는 현실적 결론을 택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9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청사에서 발표를 갖고,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는 진정한 문제 해결이 될 수 없다"면서 "하지만 일본에 재협상 요구는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 당시 합의에 따라 일본이 피해자 지원을 위한 화해·치유 재단에 출연한 10억엔은 우리 정부 예산으로 충당키로 했다.
그는 이 조치에 대해 "위안부 피해자와 한·일 관계를 동시에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발표는 지난달 27일 강 장관이 정부의 '적폐 청산' 차원에서 이끌어온 '한·일 위안부 합의 재조사 TF'가 "당시 양국 간 이면 합의가 있었고 절차적 정당성이 부족했다"고 발표한 것에 이은 후속 조치다.
정부가 지난 정부의 합의가 잘못됐다고 연일 강조하면서도 '협상 파기'나 '재협상'이란 결론에 다다르지 못한 것은, 우선 일본이 우리 정부의 재협상 움직임에 강력 항의하면서 미국 등을 상대로 국제 여론전에 나설 태세여서, 국가적으로 득보다 실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북핵 위협 앞에서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이 중요한 시점이고, 곧 있을 평창동계올림픽에 대한 일본의 협조 등 다각적 외교 관계를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도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 "합의는 잘못됐지만, 양국 관계에서 풀어나가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인정했었다.
두 번째로, 현 정부가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기존 협상을 파기하고 재협상에 나서더라도, 위안부 피해자들이 원하는 대로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배상금 지급 등을 얻어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현실론도 컸다. 일본은 국가의 도덕성에 치명상을 안길 수 있는 과거 군 위안부 운영 사실 자체를 인정한 적이 없다. 우리 정부가 '위안부 인정과 사과'만을 목표로 할 경우 양국 외교 관계나 한·미·일 협력은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날 강 장관은 당시 합의로 일본 정부가 피해자 지원 등의 명목으로 출연키로 한 10억엔은 우리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겠다고 밝혔다.
이 10억엔의 성격이 일본의 잘못 인정을 전제로 한 '배상금'이 아니라 '단순 위로금'이라는 이유로 위안부 지원 단체 등은 수령을 반대해왔다. 대신 우리 예산을 털어 위안부 피해자를 위로하겠다는 것이다.
강 장관은 "일본 정부가 출연한 화해·치유 재단 기금 10억엔은 전액 우리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고, 이 기금의 향후 처리 방안에 대해선 일본 정부와 협의하도록 하겠다"며 "해당 부처에서 피해자와 관련 단체, 국민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하겠다"고 했다.
그는 "우리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해 할 일을 해나가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해 나가겠다"면서 "과거사의 지혜로운 해결과 한·일 미래지향적 협력을 위해 노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입력 2018.01.09. 14:07업데이트 2018.01.09.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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