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마크롱… 유럽의 리더 '권력 이동'

    입력 : 2018.01.09 03:16

    [독일 일간지 등 보도… "메르켈 역할, 마크롱이 넘겨받고 있다"]

    메르켈 연정에 발 묶인 사이 프랑스 경제 살린 마크롱은
    강력한 국민 지지 바탕으로 EU 등 경제·외교 분야서 활약
    어제 첫 訪中… 시진핑 국빈 대우

    에마뉘엘 마크롱(왼쪽) 프랑스 대통령이 중국 국빈 방문 첫날인 8일 베이징의 국빈관 댜오위타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왼쪽) 프랑스 대통령이 중국 국빈 방문 첫날인 8일 베이징의 국빈관 댜오위타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7일(현지 시각)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트럼프는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하겠다는 미국의 노력을 중심으로 동북아 정세를 마크롱에게 설명했다. 이란에서 벌어진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트럼프가 국제 정치 현안을 상의하는 유럽의 파트너로 마크롱을 신뢰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독일 일간 디 벨트는 이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오랫동안 흔들림 없는 유럽의 리더였지만 이제는 그 역할을 조금씩 마크롱이 넘겨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한때 메르켈을 "미시즈 유럽(Mrs. Europe)"이라고 불렀지만, 요즘은 마크롱을 "유럽의 차세대 지도자"라고 치켜세운다. 13년째 재임하고 있는 64세의 메르켈이 저물어 가고, 작년 5월 취임한 41세의 마크롱이 떠오르는 양상이다.

    마크롱은 무엇보다 외교 무대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지도자로서 역량을 각인시키고 있다. 지난해 트럼프 미 대통령을 에펠탑으로 초청해 식사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베르사유 궁으로 불러 정상회담을 가졌다. 8일엔 취임 후 중국을 처음으로 방문했다. 중국으로선 작년 19차 공산당대회 이후 처음 맞는 유럽연합(EU) 정상이다. EU와 협력에 프랑스를 중시하겠다는 뜻이다.

    마크롱은 유럽 통합에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주도권을 쥐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는 EU의 경제 정책을 지휘하는 'EU 재무장관'을 신설하고,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9개국) 차원의 예산안을 짜는 방안을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디 벨트는 "마크롱과 프랑스가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내고 국가적인 자부심을 되찾고 있다"고 했다. 여론조사기관 해리스인터랙티브가 매년 1월 초 프랑스 국민을 대상으로 '국가의 미래를 낙관하느냐'며 묻는 조사에서 올해 응답자의 59%가 낙관한다고 응답했다. 2011년 44%에서 15%포인트나 올랐다.

    진시황릉 둘러보는 마크롱 부부 - 8일부터 사흘간 중국을 국빈 방문하는 에마뉘엘 마크롱(오른쪽) 프랑스 대통령과 부인 브리지트(왼쪽) 여사가 첫 방문지인 시안(西安) 진시황릉의 병마용을 둘러보고 있다. 시안은 미테랑, 시라크, 사르코지 등 프랑스의 전임 대통령들도 방중 당시 첫 방문지로 택한 곳이다. 중국 언론들은 “마크롱 대통령이 실크로드의 출발지인 시안을 방문한 것은 일대일로(一帶一路·신실크로드) 구상에 대한 관심 표명”이라고 했다.
    진시황릉 둘러보는 마크롱 부부 - 8일부터 사흘간 중국을 국빈 방문하는 에마뉘엘 마크롱(오른쪽) 프랑스 대통령과 부인 브리지트(왼쪽) 여사가 첫 방문지인 시안(西安) 진시황릉의 병마용을 둘러보고 있다. 시안은 미테랑, 시라크, 사르코지 등 프랑스의 전임 대통령들도 방중 당시 첫 방문지로 택한 곳이다. 중국 언론들은 “마크롱 대통령이 실크로드의 출발지인 시안을 방문한 것은 일대일로(一帶一路·신실크로드) 구상에 대한 관심 표명”이라고 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그가 역동적으로 대외 활동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은 고질적인 저성장·고실업을 해결하면서 국민의 신임을 얻은 데 있다. 그는 노동 개혁을 밀어붙여 '좀 더 일을 많이 하는 프랑스'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감세(減稅) 정책을 가동하고 비대한 공공부문을 줄이고 있다. 결과는 성적표로 나타나고 있다. 2012년 0.2%에 그쳤던 프랑스 경제 성장률은 지난해 1.9%까지 상승했다. 두 자릿수 실업률도 지난해 9.9%로 떨어졌다. 여론조사기관 오독사 조사에서 마크롱 지지율은 44%(10월)→45%(11월)→54%(12월) 순으로 계속 상승 중이다. 일간 르 피가로는 "처음에는 마크롱에 대해 의욕만 앞서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있었지만 노동계 저항에도 굽히지 않고 소신껏 개혁을 추진하는 모습에 신뢰가 쌓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메르켈의 위상은 예전만 못하다. 국내 정치에 발목이 잡혀 대외적으로 목소리를 제대로 못 내고 있다. 지난 9월 총선이 끝나고 넉 달이 되도록 연립 정부 구성도 마무리 짓지 못했다. 재정 위기, 난민 문제 등 유럽의 주요 현안을 앞장서 처리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메르켈이 이끄는 기민당·기사당 연합은 총선에서 전체 709석 중 246석에 그쳐 과반수에 한참 모자란다.

    여론조사기관 유고브 조사에서 다음 총선이 있는 2021년이 되기 전에 메르켈이 총리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의견은 지난 10월에는 36%였지만 12월에는 47%로 뛰었다. 13년간 총리직을 수행 중인 메르켈에게 식상함을 느끼는 국민이 많은 데다, 리더십을 의심받고 있다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물론 메르켈이 연정 협상을 마무리하면 다시 힘이 실릴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유럽에서 가장 경제 규모가 크고 인구도 가장 많은 독일의 저력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크롱도 신년사에서 "강력한 유럽을 만드는 데 독일과 협력하겠다"며 프랑스의 일방적인 행보는 자제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일간 디 벨트는 "두 사람이 경쟁하면서도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