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선화공주와 한반도의 꿈

  •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입력 : 2018.01.09 03:10

    2009년 미륵사지 石塔 금판 발견… 무왕의 왕후는 백제 귀족의 딸
    백제의 딸이 新羅 공주로 변한 건 삼국통일 이후 통합 절실했기 때문
    통일을 꿈꾸는 오늘날 한반도에 필요한 신화적 상상력 아닐까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선화공주는 실재 인물이 아니라 한다. 미륵사를 지은 무왕의 왕후는 신라 진평왕의 딸이 아니라 이름도 어려운 백제 좌평 사택적덕의 딸이라고 한다. 2009년에 미륵사지 석탑의 창건 내력을 담은 금판이 발견되었는데, 거기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단다.

    좌평 사택적덕의 딸은 이름이 무엇이었을까? 혹 그녀가 선화였던 것은 아닐까? 사실이 무엇이든 간에 삼국유사에 나오는 무왕과 선화공주의 이야기는 매혹적이다.

    어려서 무왕의 이름은 서동이었다. 서동(薯童), 마를 캐서 파는 아이란 뜻이다. 서동이 귀하디 귀한 왕자님이 아니라 바리데기처럼 막 자란 아이였다는 뜻이겠다. 풀뿌리를 캐서 홀어머니를 봉양하고 살았어도 서동은 기가 꺾이지 않는 똑똑한 아이였나 보다.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 공주님이 아름답다는 소문만 듣고도 그녀를 각시 삼아야겠다고 마음을 냈으니. 바람이 전하는 말에 하늘 같은 공주님을 각시 삼겠다고 의지를 낸 건 용기였을까, 인연이었을까?

    어쨌든 바람이 인연을 만들고, 인연이 용기를 북돋운다. 그는 무작정 신라의 서울로 들어간다. 물론 무작정 선화공주를 찾아가지는 않는다. 우선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니. 그는 동네에서 노는 아이들에게 마를 나눠주며 인심을 얻은 후에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친다. 그 노래가 그 유명한 신라 향가 서동요다. 아이들은 신이 나 뜻도 모르는 노래를 부른다.

    "선화 공주님은 남몰래 얼어두고(현대어로는 '정을 통하고') 서동을 몰래 밤에 안고 간다."

    언제나 소문의 주인공은 소문을 가장 늦게 파악하는 법이다. 밤마다 서동과 선화가 만난다는 소문은 퍼질 대로 퍼져 사실이 되어 선화 공주를 어렵게 한다. 신하들이 선화의 행실을 문제 삼아 질책을 요구한다. 평강 공주처럼 선화 공주도 쫓겨난다. 딸이 유배 길에 오르는 것을 차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왕비는 순금 한 말을 마련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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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원 기자

    궁에서 보호만 받고 자란 공주의 유배 길이 얼마나 외롭고 얼마나 무서웠을까? 쫓겨난 공주 앞에 서동이 나타나 믿음직스럽게 군다. 낯선 사람의 호의에 대해 경계할 법도 한데 공주는 처음부터 누군지도 모르는 서동에게 호감을 갖고 무장해제를 한다. 인연이다. 공주의 호위 무사가 된 서동은 마침내 공주와 정을 통하는 사이가 된다. 지나놓고 보니 아이들이 불렀던 노래가 그들의 매파였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물질이 필요하다. 공주는 왕후가 준 금을 꺼내놓지만 서동은 이게 뭐냐며 웃는다. 어려서부터 마를 캐던 곳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고 하면서. 서동은 금밭에 살면서도 금을 몰랐던 것이다. 선화를 만나 비로소 금의 가치를 알게 된 것이다. 그러고는 금을 모아들여 그 금을 선화 공주의 아버지 진평왕에게 보내 마음을 얻는다. 삼국유사가 말한다. 이로 말미암아 과부의 아들 서동이 인심을 얻어 왕위에 오르게 됐다고.

    금은 보물이다.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야 비로소 자기가 보물이었음을 알게 된다. 여자의 사랑을 모르는 남자는 자기의 힘을 긍정적으로 표현할 줄 모른다.

    사실 금은 백제의 보물은 아니었던 것 같다. 금은 신라의 보물이었다. 백제의 보물은 옥이었다. 서동이 금을 보고도 그 가치를 몰라봤던 이유이기도 하고 백제와 신라가 문화적 기원이 다르다는 증거이기도 하겠다. 금의 가치를 몰랐던 서동이 선화를 만나 비로소 금의 가치를 알게 되고 따라서 백제가 금의 가치를 알게 된 것이다.

    혼인을 한다는 것은 서로 사이가 좋거나 서로를 인정한다는 뜻 아닌가? 실제 무왕은 40년 이상이나 통치한 강력한 왕이었다. 그의 아들이 바로 백제의 마지막 왕 의자왕이다. 당연히 이때는 신라와 백제가 갈등하며 치열하게 싸우던 시기인데 신라의 진평왕이 사랑하는 딸을 적에게 내줬을 리가 없겠다. 더구나 신라의 진평왕은 기록상 두 명의 딸밖에 없다. 한 명은 선덕 여왕 덕만이고, 다른 한 명은 김춘추의 어머니 천명 공주다. 그런데 여기 선화 공주가 끼어든 것이다.

    삼국유사의 선화 공주 이야기와 미륵사지 석탑의 금판 내용을 비교해보면 백제의 사택적덕의 딸이 신라의 공주로 변한 것 같다. 백제의 사택적덕의 딸이 이야기 속에서 신라의 공주로 변화된 것은 삼국통일을 이루고 한반도의 고려를 일궈가면서 통합이 필요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통일은 옛적부터 한반도의 꿈이었다. 통일은 한반도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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