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욕 안 먹기'가 최고 덕목 된 공직 사회

입력 2018.01.09 03:15

現정부 들어 토론만 강조하니 減稅·구조조정 같은 현안에도
공직자들 모른 척하고 딴소리만…
누구도 총대 안 메고 뒷짐 지면 소통 아니라 無能한 것 아닌가

조형래 산업2부장
조형래 산업2부장

충북 제천 화재 때 소방차들이 왜 영국이나 캐나다처럼 불법 주차 차량을 밀어버리고 진입하지 못했을까. 한 현직 소방관에게 물어봤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출동하다가 주차돼 있던 승용차 옆부분을 살짝 긁었는데, 차주(車主)가 CCTV를 보고 찾아와 손해배상을 요구했어요. 결국 직원들이 갹출해 물어줬습니다."

불을 끄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민·형사상 책임을 면해주는 면책 규정이 제정되면 달라질 것 아니냐고 했더니, 그는 "면책 규정이 있더라도 상황이 크게 바뀔 것 같지 않다"고 했다. "화재가 나면 항상 소방관 출동이 늦었다고 시비가 붙습니다. 그러면서도 소방센터가 자기 집 주변에 들어오는 것은 기겁을 합니다. 면책 규정이 생긴다고 이런 이중(二重)적인 태도가 바뀔까요?" 그는 또 "큰 화재 때 사다리차를 타는 직원이 1명이라면 무전기를 들고 지시하는 사람은 5~6명"이라며 "사다리차보다는 무전기를 들려는 풍토가 바뀌지 않는 한 소방공무원을 아무리 늘려도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이 소방관의 말처럼 우리나라 공직 사회는 언젠가부터 '더 잘하기'보다는 '덜 욕먹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생존 법칙이 됐다.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하는 것은 좀 모자란 사람이 하는 짓이 되어 버렸고, 성장이나 효율 등 우리 사회의 발전을 이끌었던 가치는 어느덧 입 밖에 꺼내지도 못하는 금지어가 됐다.

예컨대 우리나라에서라면 기업의 법인세를 35%에서 21%로 낮추는 파격적인 감세안이 통과됐을까? 1980년대 레이건 정부 이후 최대 폭의 법인세 인하를 단행한 미국의 이번 감세안은 사실 구글이나 애플 같은 미국 대표 기업들이 해외 조세회피처에 쌓아둔 천문학적인 현금을 자국(自國) 내로 반입하려는 목적도 있다. 억만장자인 트럼프 대통령 본인도 연간 120억원의 세금을 덜 내게 됐다. 우리 같으면 '대기업 특혜, 셀프 감세'라는 말 한마디에 국회 통과는커녕 대통령을 탄핵하자고 달려들었을 것이다.

2017년 9월20일 경남 거제도 협력업체 조선소들이 일감이 줄어들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종호 기자
답이 뻔한데도 모른 척하고 서로 딴소리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조선산업 구조조정이 대표적이다. 이미 20조원의 혈세(血稅)를 쏟아부은 조선 산업은 수주 물량에서 중국에 따라잡혀 현재 규모를 유지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정치인이나 공직자들 가운데 그 누구도 구조조정에 앞장서는 사람은 없고 힘센 노조에 듣기 좋은 소리 하기 바쁘다. 텅 빈 독이 즐비한 조선소 부지를 해외에서 국내로 유턴 가능한 기업들을 위한 생산 기지로 탈바꿈시킬 수 있지만 아무도 시도조차 않는다. 2008년 미국 금융 위기 때 티머시 가이트너 신임 재무장관이 총대를 메고 미국 최대 자동차 회사인 GM을 파산시키고 혹독한 구조조정을 단행한 것과는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

현 정부 들어 장관이나 정부 고위직에 앉은 분들이 취임 일성(一聲)으로 강조하는 게 소통과 토론이다. 좋은 이야기다. 하지만 간혹 자신의 무능과 무소신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기껏해야 임기 1~2년짜리 장관을 하면서 6개월간 실·국별로 돌아가며 토론을 하겠다면 실행은 언제 하겠다는 뜻인가? 한 퇴직 고위 공직자에게 들은 얘기다. 공무원들은 장관들이 토론하자고 하면 내심 크게 반긴다고 한다. 토론을 하면서 전임, 전전임 장관 때 퇴짜 맞은 해묵은 보고서를 툭 던져보고 장관의 내공(內功)이 어느 정도인지 간을 본다는 것이다. 여기서 장관이 얕보이면 장관 임기 내내 토론만 하게 될 게 뻔하다. 장관은 소통을 잘했다고 하겠지만 사실은 무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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