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2층 SOS 들었지만… 불길에 막혀 못들어갔다"

입력 2018.01.08 03:10

[소방당국 기자회견서 "현장 도착 16분 후 비상구로 진입 실패"]

"비상구 위치 미리 알고 있었지만 3층 외벽 구조 요청자가 우선 판단"
유족 "비상구 쪽엔 화염 안보여"
전문가들 "매뉴얼대로 했지만 소극적 대응… 경험부족 드러내"

29명이 숨진 충북 제천 화재 때 현장 소방대의 초기 대응 내용이 소방 당국의 회견에서 밝혀졌다. 화재 초기 소방대가 희생자가 다수 발생한 2층 여자 사우나에 제때 진입하지 못한 것은 불길과 유독가스가 심해 대원을 투입할 수 없다는 현장 책임자의 판단 때문이었다. 아무리 구조가 급박해도 대원을 불길 속에 들여보낼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방대가 마주한 바깥 상황과 달리 내부 상황은 구조가 가능한 이른바 '골든타임'이 이어지고 있었다. 현장 소방대가 조금 더 유능했다면 2층으로 진입해 희생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2층 상황 알았지만 진입 못 해

제천소방서와 합동조사단은 지난 6일 오후 제천의 유가족 대책위원회 사무실에서 브리핑을 열었다. 이상민 제천소방서장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화염이 강했다"고 말했다.

현장지휘팀장은 화재 직후인 오후 4시 4분과 오후 4시 6분 두 차례에 걸쳐 119상황실로부터 "2층에 구조해야 할 사람이 많다"는 내용을 전달받았다. 하지만 지휘팀장은 구조대원을 2층이 아닌 난간에 매달린 사람을 구조하는데 투입했다. 불길을 잡는 진압대원은 LP가스 탱크 진화에 집중하도록 했다. 소방당국은 "불길과 연기 탓에 2층 진입이 불가능해 먼저 불길을 잡아야 했다"며 "그사이 구조 가능한 사람부터 구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무전기 불통이나 정보 부족 탓에 몰라서 못 구한 게 아니라 '구할 수 없어서 못 구했다'는 얘기다.

소방대원이 비상구 계단을 통해 2층 진입을 시도한 것은 난간 생존자를 구조한 직후인 4시 16분쯤이었다. 지금까지 확인된 2층 생존자의 마지막 통화는 4시 16분쯤 희생자 정모(56)씨에게 남편 윤모씨가 건 전화다. 이때 진입에 성공했어도 희생자를 줄였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소방대는 곧 철수했다. 난간을 잡지 못할 정도로 열기가 심해 계단을 올라가다 말았다고 했다. 이상민 제천소방서장은 "많은 분이 2층에 사람이 있다고 알려줬으나 당시 소방력으로는 2층에 진입할 수 없었고 일단 화재를 줄여 내부 통로를 확보하자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결국 2층 진입은 1차 진입 실패 후 16분이 지난 오후 4시 32분에 이뤄졌다. 당국은 "오후 4시 30분쯤 돼서야 화염이 줄어들었다"고 했다.

◇매뉴얼은 따랐으나…

이 같은 판단은 소방청 현장 대응 지침인 '재난현장 표준작전절차(SOP)'에 형식적으론 어긋나지 않는다. SOP 매뉴얼은 '대원의 안전 확보를 최우선으로 하고 인명구조 활동을 전개하라'고 돼 있다. 또 구조의 우선순위로 '드러난 요(要)구조자가 치명적인 위험에 직면하거나 예상되는 지점', '요구조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 등 5가지를 들고 있다. 매뉴얼에 따르면 당시 현장에선 난간 생존자를 우선 구해야 한다. 가스통 불길을 진화해 2층으로 진입하는 길을 뚫어야 하는 것도 매뉴얼에 어긋나지 않는다. 변수남 소방청합동조사단장은 "가스통이 터졌다면 근처 중학교까지 큰 피해를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유족들은 여전히 의문을 제기한다. 화재 진압과 함께 2층 통로도 찾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한 유족은 이날 브리핑에서 화재 직후인 4시 10분에 찍힌 현장 사진을 근거로 "비상구 쪽은 농연(濃煙·짙은 연기)만 있고 화염은 보이지 않는다"며 "진입이 가능한데 판단을 잘못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당시 구조대원 전원은 난간 생존자 구출에만 매달려 있었다. 이에 대해 현장 관계자는 "화염은 없었으나 보이지 않는 열기가 엄청나게 뜨거웠다"고 주장했다. 소방 당국이 앞으로 더 자세히 조사해야 할 부분이다.

유족들은 또 "비상구 진입에 실패했다면 바로 2층 창문을 깨고 진입했어야 했다"고 비판한다. 소방당국은 외벽의 불길과 비상구 열기 등을 근거로 당시 2층 내부에도 불길이 미쳤을 것으로 판단하고 '백 드래프트(창문을 깰 경우 급격한 공기 유입으로 내부 불길이 폭발하는 현상)'을 우려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 내부엔 유독가스만 유입되던 상황이었다. 2층 생존자들에게 내부 정보를 수집했다면 결과적으로 희생을 줄였을지 모른다는 비판만큼은 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변 단장은 본지 통화에서 "결론적으로 백 드래프트 위험은 없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당시 현장의 판단이 매뉴얼에 어긋나진 않았더라도 지극히 소극적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좀 더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는데 이번 참사에서는 경험 부족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했다. 인세진 우송대 소방방재학과장은 "만약 충분한 경험이 있었다면 좀 더 빨리 진입 가능 여부를 판단했을 것"이라며 "화재에 투입된 지휘관과 대원들의 경험치가 많이 부족해 아쉬운 판단을 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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