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자 연암, 사실은 무정부주의자였다"

입력 2018.01.08 03:04

['연암의 아나키즘' 낸 강명관 교수]

소설 '허생전' 새롭게 재해석
"재산 절반을 바다에 버린 허생… 연암의 무소유·共有 사상 담겨"

"허생(許生)은 일종의 아나키스트, 무정부주의자였습니다. 그가 꿈꾼 건 상업이 발달한 나라가 아니라, 백성이 권력의 억압에서 벗어나는 이상 사회였습니다."

연구실 바닥 카펫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강명관(59)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강 교수는 정민·안대회 교수와 함께 대표적 차세대 한학자로 꼽히는 인물. '조선의 뒷골목 풍경' 같은 저서를 통해 조선 사회를 재해석해온 그는 최근 연구서 '허생의 섬, 연암의 아나키즘'(휴머니스트)을 내고, 소설 허생전에 대한 지금까지의 해석은 통째로 잘못됐다고 단언했다.

연암 박지원(1737~1805)이 쓴 한문 단편소설 '허생전'은 독과점 판매 행위로 거금을 번 허생이 도적들을 섬으로 데려가 살게 한다는 줄거리. 조선왕조의 취약한 경제 실상을 폭로하고 '상업과 무역을 진흥해야 한다'는 북학파 실학의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그간 해석돼 왔다. 하지만 강 교수는 "작품의 전후 맥락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채 '실학이 자본주의적 근대를 지향했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나온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연구실 바닥에 카펫을 깔고 그 위에 조선시대 선비들처럼 낮은 책상을 놓고 앉은 강명관 교수는 “이른바 북학파 실학자가 상업을 중시했다는 믿음이 ‘허생전’을 잘못 읽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했다.
연구실 바닥에 카펫을 깔고 그 위에 조선시대 선비들처럼 낮은 책상을 놓고 앉은 강명관 교수는 “이른바 북학파 실학자가 상업을 중시했다는 믿음이 ‘허생전’을 잘못 읽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했다. /유석재 기자

작품의 맥락이란 '허생전'이 실린 연암의 '열하일기' 중 '옥갑야화' 편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옥갑야화'에는 허생 이야기 앞에 여섯 편의 다른 이야기가 등장한다. 보상을 바라지 않고 조선 역관을 돕는 중국 상인, 돈의 폐해를 우려해 만년에 일부러 재산을 흩어버리는 부자…. "잘 보세요. 모두 돈보다 생명·가족·의(義) 같은, 경제적 이익으로 환원될 수 없는 가치를 앞세우고 있지 않습니까?"

'허생전' 본편도 다르지 않다는 게 강 교수 설명이다. "면밀하게 읽어보면, 무소유, 공유(共有), 국가 없는 사회에 대한 연암의 상상력을 볼 수 있습니다." 허생은 남녀 2000명을 모아 격리된 섬으로 데려간 뒤 자급자족하며 살게 하는 소농(小農) 사회를 만든다. "동양적 아나키즘으로 불리는 '노자'의 소국과민(小國寡民·작은 나라에 적은 백성이 사는 이상 사회)을 실현한 것인 동시에, 국가 권력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는 조선 민중의 염원을 담은 것이죠." 허생은 홍길동처럼 섬에서 왕 노릇을 하는 대신 그곳을 떠난다. 그 이상 사회에선 자기 같은 지식인이 용납되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자, 이제 허생이 무슨 행동을 하는지 보십시오." 놀랍게도 재산의 절반인 50만 냥을 죄다 바닷속에 버리고, 나머지는 빈민 구제에 쓴다. 연암이 정말 상업을 중시한 학자였다면 허생은 그 돈으로 새로운 투자를 했어야 마땅하다. "화폐가 백성을 풍요롭게 하기는커녕 그들을 수탈하고 괴롭게 만든다는 연암의 반성이었던 것입니다. 연암이 '북학파 실학자'였다는 관념도 재고가 필요한데, '실학'은 근대에 만든 개념이고 '북학파'로 알려진 학자들은 그 사상이 꼭 일치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새롭게 해석된 '허생전'은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 걸까. 자급자족하는 소농 사회로 돌아가자는 뜻일까?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제 강의를 듣던 한 주부가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오염되지 않은 식품을 먹으며, 아이들을 마음 놓고 밖에 내놓을 수 있는 세상이라면 GDP가 1만달러로 줄어도 거기서 살겠다'고 하더군요. 국가와 자본의 권력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인간의 삶을 지키는 최소한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데 연암의 무정부의적인 상상력이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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