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陰은 陽으로 변하고, 陽은 다시 陰으로… 주역은 '易地思之' 가르쳐"

    입력 : 2018.01.08 03:04

    [주역 대가 이응문 선생]

    "올해는 바람이 불 지펴 집안을 밝게 정제하는
    '風火家人' 이라는 괘… 내부 화평과 안정 힘써야"

    "작년엔 '雷澤歸妹'라는 괘… 안 따지고 서둘러 시집가는 여자가 어려움 겪는 괘
    박근혜 전 대통령과는…"

    이응문(57) 선생은 나와 동년배인데 전혀 딴 세상 말을 하고 있었다.

    "무술(戊戌)년은 다섯 번째 천간(天干)인 무(戊)와 열한 번째 지지(地支)인 술(戌)을 합친 간지이다. 무(戊)는 상괘로 ‘손풍(巽風ㆍ☴)’인 장녀에 해당한다. 술(戌)은 하괘로 ‘이화(離火ㆍ☲)’인 중녀에 상응한다. 장녀(長女)가 위에 있고 중녀(中女)가 아래에 있다. 상하 위치가 올바르고, 밖으로부터 집에 들어와(☴) 등불을 밝히고(☲) 가족을 만나는 형상이다. 무술년 한 해는 여자가 집안의 살림살이를 주관하는 ‘풍화가인(風火家人)’의 괘로 볼 수 있다."

    그는 한국에서 주역학의 법통을 이은 인물이다. 주역학으로 일가를 이룬 야산 이달(李達)의 친손자이고, '대산주역강의' 등 저서와 강의를 통해 주역을 대중화한 대산 김석진(90) 문하에서 공부했다. 대산은 자신이 맡아온 동방문화진흥회장 자리를 그에게 물려줌으로써 수제자로 인정했다.

    대구 대명동에 있는 대연학당(大衍學堂)에서 그를 만났다. 2002년부터 그가 주역(周易)을 가르쳐온 학당이다. 요즘 세상에 이런 공부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낯설겠지만, 한때 주역은 동양 학문의 제왕(帝王)으로 대접받았다. 이날 우리의 대담은 힘겨웠다. 내가 주역에 대한 지식 부족으로 정확히 질문을 못 했거나 그가 내 질문에 논리적인 답변을 못했거나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가령 올해 주역의 점괘를 얻고 해석하는 과정에 대해 그는 이렇게 답했다. "모든 사물 현상에는 조짐과 기미라는 것이 감춰져 있다. 이를 파악하는 방편 중 하나가 그해의 간지(干支)를 주역으로 풀어보는 것이다. 천간과 지지의 순서대로 상·하 괘(卦)를 정하고, 그 수를 합해 효(爻)를 정한다…" 이런 식의 설명은 아무리 친절해도 독자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과정은 생략하고 결과만 듣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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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응문 선생은 “내년에는 ‘서로 뜻이 어긋나 싸우는 규(睽)’의 괘가 들어 있다”고 말했다. /최보식 기자

    ―올해는 '풍화가인(風火家人)'의 괘라고 했는데, '바람ㆍ불ㆍ집사람'은 무슨 뜻을 담고 있나?

    “‘풍화가인’의 괘는 바람(☴)이 불(☲)을 지피는 것으로 집안을 밝게 정제하는 형상이다. 이 중 '가인(家人)'이란 괘명은 집안 식구를 다스리는 제가(齊家)를 의미한다. 집안에서 불이 나면 바람을 타고 밖으로 번져나간다. 집안에서의 바른 언행, 가정 평화와 안정이야말로 치국의 바탕이 된다. 이 괘를 구성하는 효사(爻辭) 중에는 '부가대길(富家大吉)'이 나온다. 집을 부유하게 해 크게 길하다는 뜻이다."

    ―올해 국운이 좋은 쪽으로 해석된다는 것인가?

    "국내외 상황에 비춰볼 때 그나마 다행스럽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주역 괘의 순서로 '가인'은 37번째다. 바로 앞에는 '밝음이 상한다'는 명이(明夷)가 있다. 바로 뒤에는 '서로 뜻이 어긋나 싸운다는' 규(睽)가 있다. '명이'는 땅속에 해가 들어가 밝음이 상한다는 뜻이다. '규'는 불이 연못 위에 있어서 물은 불을 끄려 하고, 불은 물을 말리려 하는 물불 안 가리는 반목과 질시를 의미하기도 한다. 명이와 규, 그 어디에도 기울지 않게 가인의 도를 잘 행해야 한다."

    ―'가인(家人)'의 도를 잘 행해야 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

    "올해는 특히 내부의 화평과 안정, 내치(內治)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언행을 함부로 하지 말고 내부 민심이 동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일반 국민은 수신에 바탕을 두고 제 직분에 충실해야 한다."

    ―올해 남북문제는 어떻게 나오는가?

    "'가인'에는 '불은 불대로 물은 물대로 상하가 나뉜 화수미제(火水未濟)'란 괘가 들어 있다. 괘의 해석만으로는 올해에는 남북 관계가 크게 진전이 없을 것 같다. 남북한 관계를 전체적으로 풀어보면 '뇌산소과(雷山小過)'라는 괘다. 이는 물이 땅 밑으로 흘러가듯 조금씩 점차적으로 진행된다는 뜻이다."

    ―작년(2017년)의 경우에는 어떤 괘가 나왔나?

    "정유년은 '뇌택귀매(雷澤歸妹)'라는 괘였다. 안 따져보고 서둘러 시집을 가는 괘인데, 주로 여자가 어려움을 겪는 괘였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관계있었는지… 이런 얘기는 그만 하자."

    ―그러면 내년(2019년)은 어떤가?

    "앞서 말한 '서로 뜻이 어긋나 싸우는 규(睽)'의 괘가 들어 있다. 조심해야 될 것 같다. 하지만 어려움에는 어려운 대로 길이 있는 것이다. 혼란한 시기를 통과하는 해결책으로 주역에서는 마른 버들에서 싹이 나오는 '고양생제(枯楊生稊)'를 제시하고 있다. 어려운 때일수록 근본으로 돌아가는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

    ―주역은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 중국 주나라(B.C. 1046∼B.C. 771) 시기에 완성됐다. 주역으로 치는 이런 점이 지금의 세상에서 얼마나 들어맞을 것으로 보는가?

    "한번 생각해볼 만하다는 것이고 참고 자료일 뿐이다. 반드시 꼭 그렇다는 게 아니다. 물론 객관적인 조짐을 보여주는 면은 있다고 본다. 이율곡 선생이 '10만 양병설'을 내놓을 때도 주역의 괘를 얻었고, 이순신 장군이 해전에 나설 시기를 정할 때마다 주역 이치로 점을 쳤다고 나온다. 하지만 어떠한 점괘가 나와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노력에 의해서 흉을 피할 수도 있고 보완을 할 수 있다. 주역은 결코 결정론의 세계가 아니다."

    ―점괘를 뽑는 방식은 댓가지 50개나 혹은 8개를 이용하거나 글자 획수 등에서 숫자를 얻어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선생은 점을 얼마나 자주 치나?

    "나는 세상 일을 점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고 지금도 그렇다. 나 자신을 닦기 위한 '위기지학(爲己之學)'으로서 주역을 공부해왔다. 주역은 자연 이치와 인간 존재의 관계를 탐구하는 심오한 학문의 세계다. 이번에 인터뷰를 제의받고 주역을 단지 점치는 걸로 받아들일까 봐 망설였다."

    이응문 선생과 최보식 선임기자
    ―세간에는 주역 공부를 점치는 공부로 여기고, 실제 주역으로 점을 치고 있지 않은가?

    "내 스승인 대산(大山) 선생님은 매일 점괘를 뽑았다. 그날의 괘를 보고 스스로를 경계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경지에 훨씬 못 미친다. 사실 주역에는 '점(占)'이라는 글자가 딱 한 번 나올 뿐이다. '혁(革)'괘에서 '대인은 점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언급해놓았다."

    ―주역에 나오는 '혁'은 과녁을 뜻하는데?

    "그렇다. '혁'괘는 활로 정확히 과녁을 맞히듯이 알맞은 시기에 제도나 법령을 고쳐 바꾼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 안에 '대인호변 미점유부(大人虎變 未占有孚)'라며 점이라는 글자가 나온다."

    ―'대인은 호랑이처럼 변모해 점을 안 쳐도 신망이 있다'라고 해석하면 되나?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 털갈이하는 범의 위용은 빛난다. 대인이 때맞춰 공정한 개혁을 단행하면, 국민은 그 위엄을 진심으로 믿고 따르니 굳이 길흉을 점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주역에서 점치는 목적은 자신을 혁신하고 세상을 바르게 개혁하는 데 있었다."

    ―세상이 어지럽거나 자기 결정을 스스로 못 하는 사람일수록 점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다. 선생은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점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지 부정하지는 않는다. 점(占)을 문자 구조로 보면 천지 이치를 관통해(丨) 사람이 나갈 바를 점찍어(丶) 가르쳐준다는(口) 뜻이다. 사물을 관찰·궁리하는 격물치지(格物致知)가 점이고, 사물을 바라보는 초점·관점·시점이라는 게 다 점인 것이다. 나아갈 때인지 물러날 때인지, 그렇게 해서 흉함을 피하고 길한 데로 나아가는 것이다. 점은 때를 알아 변통할 줄 아는 '지시식변(知時識變)'인 셈이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점과는 해석이 다른 것 같다. 그렇지만 점은 결국 과학적 근거를 댈 수가 없지 않은가?

    "나는 점을 '문답(問答)'이라고 생각한다. 하늘에 묻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 묻는 것이다. 우리 성품 안에도 천명(天命)이 있으니까. 결국 자신을 바르게 한 뒤 스스로에게 묻고 답을 얻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과 문답한다. 그렇다면 세상에 점치지 않는 사람은 없는 셈이다."

    그의 집안은 주역 가문이다. 조부는 주역학의 일가를 이룬 야산 이달 선생이고, 그의 부모도 주역을 공부했다. 그가 두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떴다. 그는 모친과 함께 서울 인왕산 밑에 있는 암자에서 생활했다. 그는 법조인의 꿈을 갖고 경희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그러던 중 '과연 법이란 무엇인가? 내가 대체 뭘 배우고 있나?' 하는 근본적 물음에 직면했다고 한다. 대학을 중퇴하고 1985년 대산(大山) 선생의 문하로 들어가 주역 공부의 길을 걸었다. 그의 아내도 대산 선생 문하에서 주역을 공부했다.

    ―선생을 보면 인간에게는 주어진 운명(運命)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운명이 정해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운명이란 예를 들어 운전을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자동차를 몰고 가지만 1차선으로 가느냐, 2차선으로 가느냐 하는 문제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문제다."

    ―선생이 공부해온 주역의 핵심 이치는 무엇인가?

    "세상은 음양(陰陽)으로 이뤄져 있다. 음양이 서로 배타적이고 대립 관계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림자의 반대편에는 빛이 있고, 빛에는 그림자가 따른다. 다시 말해 음에는 양이 들어 있고, 양에는 음이 이미 들어 있다. 음양은 상호 의존적 관계라는 뜻이다. 해가 어디를 비추느냐에 따라 음은 양으로 변하고, 양은 다시 음으로 바뀐다. 그래서 주역에선 '역지사지(易地思之)'를 강조하고, 선악(善惡)을 구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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