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집회 후원한 2만명… 경찰이 계좌 뒤져봤다

    입력 : 2018.01.06 03:13

    ["태극기 집회에 3만원 냈다고… 개인정보까지 들춰보나"]

    기부 직장인 "불이익 받을까 걱정"

    불법모금 의혹 수사한다면 탄기국 모금 통장 보면 되는데…
    은행, 조회사실 개인통보해 알려져

    후원자들 "적폐로 찍힐까 두렵다" "촛불 후원자는 걱정 없을텐데…"

    경찰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반대하는 '태극기 집회'에 후원금 낸 시민들을 수사한 것으로 5일 확인됐다. 후원금을 낸 시민 2만명의 금융 계좌를 조회했다. 최근 은행들이 거래 내역 조회 사실을 통보하며 이를 알게 된 사람들이 불안해한다. 태극기 집회를 후원한 사실이 알려질 경우 회사 등에서 불이익을 받는 게 아니냐 우려하는 것이다.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는 2016년 11월부터 '태극기 집회'를 열며 시민들을 대상으로 모금 활동을 했다. 단체가 회원을 대상으로 모금하는 건 문제가 없지만, 일반인으로부터 모금 활동을 하려면 정부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탄기국은 그런 절차를 밟지 않았다. 현행 기부금품법은 1000만원 이상을 모금하려면 사전에 '기부금품 모집 및 사용계획서'를 작성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이나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신고해야 한다. 탄기국 회원이 아닌 일반 시민이 이 단체에 기부를 하면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태극기 집회 기부자 말말말
    지난해 6월 정영모 정의로운시민행동 대표는 "정광용 대변인 등 탄기국 집행부 5명이 2016년 11월부터 2017년 2월까지 태극기 집회 현장 모금과 광고 등을 통해 40억3000여만원을 불법 모금했다"며 이들을 경찰에 고발했다. 정 대변인 등 4명은 지난해 11월 25억5000만원을 불법 모금하고, 이 중 일부를 새누리당 창당 자금 등 불법 정치 자금으로 사용한 혐의 등으로 입건됐다.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문제는 소액 기부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한 시민들까지 수사 대상에 올랐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은행들이 계좌 조회 사실을 당사자들에게 통보하면서 이런 사실이 알려졌다. 수사 기관이 금융 계좌를 조회하면, 금융회사는 나중에 이 사실을 당사자에게 알려야 한다. 정 대변인 등에 대한 수사는 작년 11월에 끝났지만, 기부자 금융 계좌 조회 사실은 최근에 알려진 것이다. 이후 인터넷에는 은행으로부터 받은 통보서를 올리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시민들 글이 올라온다. 기부자가 처벌받는 것은 아니지만 불안해하는 것이다. 10만원씩 두 차례 기부를 했다는 권모씨는 "박 전 대통령 탄핵을 반대한다는 말만 해도 '적폐'로 낙인찍히는 세상인데, 탄기국 기부 명단에 내 이름이 올라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안하다"고 말했다. 5만원의 기부금을 냈다는 김모씨는 "불법 모금을 조사하려면 돈 모은 사람들 통장만 조사하면 되는데 왜 돈을 낸 사람들 정보까지 조회하느냐"며 "3만원, 5만원 기부한 사람들 개인 정보까지 뒤지는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수사를 했던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는 요즘 "내가 왜 수사 대상에 올랐느냐"며 항의하는 시민들 전화가 잇따른다. 지난달 은행에서 거래 내역 조회 통보서를 받은 이모씨는 "전화를 받은 경찰이 '최근 이런 항의가 많이 들어온다'면서 입금자는 수사 대상이 아니니 염려 말라는 식으로 응대를 했다"며 "항의 전화가 많다는 건 그만큼 경찰의 수사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방증 아니겠느냐"고 했다. 경찰은 "후원자들이 탄기국 회원인지 일반 시민인지 확인하기 위해 인적사항을 파악한 것은 맞지만, 단체 회원인지 파악하려는 목적일 뿐 수사 대상으로 시민들을 조사한 것은 아니다"며 "모든 금융 거래 내역을 들여다본 것이 아니라 후원금 송금 부분과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만 확인했다"고 했다. 또 "사건 종결 후 관련 내용은 경찰에 남아있지 않으며, 후원자들 이름이 적힌 '리스트'도 보관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경찰의 해명에도 당사자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공직에 몸담은 사람들의 걱정이 크다. 현 정부에서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 공립 초등학교 교사는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태극기 집회 후원자 명단을 얼마든지 알 수 있지 않겠냐"며 "그런 사실이 알려지면 승진은 불가능한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모금 활동은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촉구했던 '촛불 집회'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를 고발한 사람이 없어, '촛불 집회' 모금 관련 수사는 진행 중인 것이 없다. 태극기 집회에 후원금을 낸 시민들은 경찰이 확보한 명단이 다른 용도로 사용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태극기 집회에 후원금을 낸 한 시민은 "촛불 집회에 돈을 낸 사람들은 그런 사실이 드러나도 불이익 받을지 걱정 안 할 것이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우리는 사정이 다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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