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 칼럼] 文 대통령은 탯줄 잘라준 할머니에게 과일 바구니 보냈는데…

    입력 : 2018.01.05 03:17

    "청와대에서 제공한 과일 바구니 옆에 두고
    청와대 선임행정관이 탯줄 할머니 앞에서 무릎 꿇고 있는 사진… 대통령 위한 홍보였지만"

    최보식 선임기자
    최보식 선임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훈훈한 미담(美談)이 또 보도됐다. 새해 첫 현장 방문 일정으로 거제 대우조선해양의 쇄빙선 건조 현장을 찾은 문 대통령이 본인의 탯줄을 잘라준 할머니한테 과일 바구니를 보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탯줄을 누가 잘랐는지 모른다. 문 대통령은 그런 범주와 달랐던 모양이다. 대통령의 바쁜 일정 속에서도 그 할머니를 잊지 않고 챙겼다는 게 놀랍다. '우리 이니(대통령 지지 세력이 쓰는 애칭)는 참 따뜻한 대통령이구나' 느껴질 만하다.

    그런데 과일 바구니를 들고 탯줄 할머니 집으로 찾아간 이는 청와대 자치분권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었다. 과일 바구니를 옆에 두고 할머니 앞에 무릎 꿇은 사진이 있다. 청와대에서 제공한 사진이다. 대통령의 인간적 모습을 보여주려는 홍보였다. 하지만 필자 눈에는 다른 것이 더 크게 보인다. 청와대 자치분권 선임행정관은 대통령의 그런 사적 관계를 대신 해주기 위해 마련된 자리인가. 그걸 공무(公務)로 거제까지 대통령을 수행했나. 관사에서 부하 장병을 사적으로 부리다가 군복을 벗은 4성(星) 장군 부부와 무엇이 다른가. 관용차를 근무시간 외에 사용해도 문제가 되는 세상이다.

    요즘 갈수록 문 대통령 개인을 향한 청와대의 연출과 홍보가 도(度)를 넘고 있다. 탄핵당한 박근혜 대통령은 그 불통(不通)으로 국민 속을 터지게 했다. 문 대통령은 '쇼통'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소통 홍보가 넘쳐서 질리게 한다. 물론 대통령의 이미지 연출은 중요하다. 문제는 균형 감각이다. 필자의 직업으로 말하면 글에서 내용이 빈약하면 수사(修辭)가 요란하고 현학적이다. 국정이 굴러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위태위태한데도, 국민에게 대통령이 어떻게 잘 비치느냐에만 정력을 쏟아붓고 있다. 흡사 정권의 정당성을 그런 이미지에서 찾는 것 같다.

    지난달 낚싯배 충돌 사고가 났을 때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께서는…"을 반복하며 "구조 작전에 만전을 다하라, 안전 대책을 강구하라, 추측성 보도로 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대통령이 엄청난 일을 한 것처럼 들린다. 역대 정권마다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대통령 쇼'를 해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음 날 문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 주재에 앞서 '묵념'을 올린 것은 정말 예상을 뛰어넘는 쇼였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고 때는 청와대 대변인이 이렇게 페이스북에 썼다. "유가족의 욕이라도 들어드리는 게 대통령이 지금 해야 할 일이라며 돌아오는 차 안에서 또 울먹이신다"고. 뉴스로 보도되는 걸 전제로 홍보 자료를 뿌린 것이다. 청와대 참모는 국민의 감성을 툭 건드리는 '대통령 상품'을 팔면 모두 해결된다고 보는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진이 2017년 12월 4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를 진행하기 앞서 인천 영흥도 낚싯배 전복 사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대통령 홍보의 압권(壓卷)은 청와대가 TV 예능 프로그램을 본떠 만들어 페이스북으로 퍼뜨리는 '청쓸신잡' 프로에서였다. 중국 국빈 방문 참사가 있은 뒤였다.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어야 하는 시점이었다. 하지만 청와대 참모는 예능인처럼 입담을 과시했다.

    그 프로에서 홍보수석은 APEC 정상회의 후일담을 전하며 "대통령께서 숙소에 도착했을 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데 김정숙 여사가 마중을 나와 '아이고 여보 고생했어요' 하며 등을 두드렸다. 그 순간 10초 사이에 문 대통령 부부의 애정 표현에 감동했다"고 말했다. 이에 뒤질세라 한 비서관은 "저 연배의 부부간에 시선에서 어떻게 저렇게 '꿀'이 떨어질 수 있을까!"라고 했다. 청와대 대변인은 "유럽 정상들은 문 대통령을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존경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고, 프로 진행자는 "문 대통령으로 스며들었다는 뜻의 '문며들었다'는 표현이 있는데, 문 대통령과 함께 사진에 찍힌 외국 정상들의 표정이 '문며들었다'고 할 정도로 순해진다"고 말했다. 지금 청와대 참모는 대통령을 향한 이런 아부 잡담으로 봉급을 받는가.

    지난 정권에서 직언(直言)하지 않는 청와대 참모를 '환관(宦官)'이라고 비판했다. 대통령 앞에서 말하는 게 쉽지는 않다. 하지만 참모는 듣기 싫은 말을 해야 할 책임이 주어져 있다. 참모 중에 한 명이라도 '우리 사회가 깊이 분열돼 있다. 반대 진영 사람들과 어떤 식으로든 더 자주 만나야 한다. 현 상황에 대한 보수의 걱정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지금 청와대는 운동권 출신끼리 뭉쳐 있다'고 직언할 수 있어야 한다. 당선 직후 문 대통령은 "나와 반대되는 의견을 내는 것이 참모들의 의무"라고 당부했으나, 지금 보니 참모들은 '누가 누가 잘하나' 아부 경쟁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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