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량하다'는 오만이 타인을 혐오케 한다

입력 2018.01.05 03:03

日 철학자 요시미치 "차별, 치유하기 어려운 사회적 질병"
"나도 마녀로 몰린다"는 두려움 때문에 집단적 단죄 행위 참여
'차별 않겠다'는 말보다 내 안의 차별 욕망부터 솔직히 인정해야

차별 감정의 철학

차별 감정의 철학

나카지마 요시미치 지음
김희은 옮김|바다출판사208쪽|1만2000원

"나는 사람을 차별한다"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도 세상엔 온갖 종류의 차별이 넘쳐난다. 우리는 인종·민족·학력·지역·이념·능력·성별에 따라 타인을 차별한다. 특정 국가 출신 외국인을 차별하고 비(非)명문대 졸업자를 깔보며, 약한 자를 찍어서 집단적으로 '왕따' 놓기도 한다.

일본에서 칸트 철학을 바탕으로 다양한 인간 감정을 설명하는 작업을 해온 저자는 이 책에서 차별을 '치유하기 어려운 사회적 질병'이라고 진단한다. 차별하는 이유가 여럿 거론되지만, 그가 강조하는 것은 차별이 지극히 인간적인 현상이란 점이다. 게다가 차별의 가해자들은 스스로를 선량하고 정의로운 평범한 시민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어 치유가 쉽지 않다. 그들은 남이 죽을 만큼 차별해놓고도 "차별이 아닌 구별"이라느니 "네가 잘못해 그런 대접 받는 것"이란 반응을 내놓곤 한다.

'A가 B보다 우월하다거나 능력 있어야만' 차별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차별의 한 방식인 '타인에 대한 혐오'를 거론하며 '나는 도덕적으로 정의롭고 선량하다'는 자각만 있으면 타인을 혐오할 자격을 갖게 된다고 말한다. 차별해 마땅한 객관적 근거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다. 저자는 일본의 대표적 집단 차별 사례인 하층 '부락민(部落民)'을 예로 든다. 부락민에게 향하는 일반 대중의 혐오 감정은 '아무런 경험적 근거가 없는 편견'일 뿐이다. 부락민을 차별해선 안 되는 사실적 근거들을 제시해도 그들은 그릇된 인식을 쉽사리 바꾸지 않는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 횡행하는 온갖 종류의 '덮어놓고 낙인찍기' 현상도 혐오에서 비롯되는 차별의 범주에 속한다. "아이 혼자 내렸으니 차를 세워달라"는 엄마 승객의 말을 거부하고(실은 버스가 정류장을 떠난 지 한참 뒤에 알아채고) 계속 달렸다는 이유로 버스기사의 인격을 매도한 '네티즌'들은 자신이 나쁜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자각이 전혀 없었다.

17세기 유럽의 마녀재판을 묘사한 그림.
17세기 유럽의 마녀재판을 묘사한 그림. 저자는 집단 단죄 행위에 참여함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인간의 심리를 짚어낸다. / Getty Images Bank

경멸과 공포가 짝을 이뤄 차별로 나타나기도 한다. 나치 독일의 유대인 인종청소가 여기 해당한다. 당시 독일인들은 유대인을 '물질적으로 강력하지만 도덕적으로 열악하다'고 경멸하면서 '그들이 세계 지배의 야욕을 품고 있다'고 의심하며 공포를 느꼈다. 이런 인식은 합리적 사고와 윤리의식을 마비시켜 아무 가책 없이 극단적 폭력을 휘두르게 했다는 것이다. 600만명을 가스실에서 죽인 인류 최악의 범죄는 아이러니하게도 독일인들이 스스로 선량하고 신심 깊고 정의롭다고 믿었기에 가능했다.

차별은 비겁한 인간성을 지닌 이들끼리 음습한 동맹을 맺게도 한다. 중세 마녀재판에서 저자는 두 가지 특징을 주목한다. 당시 사람들은 희생자를 비난하고 재판하면서 도덕적 우월감을 한껏 즐겼다. 그뿐 아니라, 마녀로 지목된 이에게 마녀라고 욕하고 침 뱉지 않았다간 자신도 마녀로 몰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집단적 단죄 행위에 참여하는 것은 자신을 지키는 안전조치가 된다. 저자는 차별하는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 인간의 비겁한 본성이 도사리고 있으며, 이에 대한 사려 깊은 인식이 없는 한 마녀사냥식 여론재판은 현대 문명사회에서도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남을 차별할 자격이 있다는 생각은 자신을 심판자의 위치에 두는 데서 비롯된다. 인간은 오류의 가능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자각만이 이런 오만을 스스로 경계하게 한다. 차별하지 않겠다는 겸허한 마음을 갖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기 안에서 꿈틀대는 남을 차별하고자 하는 욕구, 자부심, 교만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왕따하면 안 돼"라고 입바른 소리를 하기보다 "우리 안에 왕따를 할 성향이 농후하다는 자기인식이 중요"하며 "우리 마음에 악의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이 폭주하지 않도록 단단히 제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곳곳에 밑줄을 칠 수밖에 없는 책이다. 책에서 폭로하는 차별 행위의 양상이 우리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정의의 칼을 든 이가 그 어느 때보다 많고 그런 세력을 향한 박수 소리도 드높다. 그런 이들에게 저자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어떤 논의가 마구잡이로 칼자루를 휘두르거나 베어버리는 방식이거나,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식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희망적이고 논리적으로 옳아 보여도 채택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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