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스케이팅 아이스댄스의 민유라(23)-알렉산더 겜린(25)은 하루 네 시간 넘게 얼음판에 꼭 붙어 있다. 아이스댄스 종목 규정상 파트너와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지면 안된다. 일주일에 두 번, 댄스와 발레까지 하는 날엔 '한 몸'이 되는 시간이 더 길어진다. 꿈의 무대인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위해서다.

민-겜린 조는 5일부터 열리는 평창올림픽 국가대표 최종 3차 선발전(서울 목동)에 나선다. 1·2차 선발전까지 아이스댄스 종목의 유일한 출전팀으로 경기를 치른 이들은 사실상 평창행을 확정한 상태다. 둘은 지난해 9월 네벨혼 트로피(독일)에서 2002 솔트레이크 올림픽 이후 한국 대표로는 16년 만에 올림픽 아이스댄스 자력 출전권을 확보했다. 2015년 여름부터 호흡을 맞춘 지 2년여 만에 거둔 쾌거였다.

지난달 1일 국가대표 2차 선발전(쇼트 댄스)에서 연기를 펼치는 민유라-알렉산더 겜린 조. 이들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대비한 프리댄스 프로그램으로는 ‘아리랑’을 선보인다. 의상도 곡의 분위기에 맞게 한복으로 맞췄다.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각오다.

"아리랑을 세계에 알리고 싶어요." 올림픽을 앞두고 미국 미시간주 노바이에서 막바지 훈련 중인 민유라, 겜린은 최근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이 같은 각오를 밝혔다. 둘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프리 댄스 음악을 가수 소향의 '아리랑'으로 정했다. 한국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가장 한국적인 색깔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치를 비롯해 주변의 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곡이 아니어서 경쟁력이 약하다는 거죠. 그런데 결국 저희 고집이 이겼어요."(민유라)

두 사람은 이번 시즌 대회를 거듭하며 아리랑을 완성하고 있다. 1차 선발전(총점 137.24)보다 2차 선발전 성적(총점 150.45)이 좋았다. 겜린은 지난해 7월 특별 귀화를 통해 한국 국적을 얻었다. 뿌리까지 미국인이었던 그는 아리랑을 어떻게 이해할까. "수 없이 가사를 들었습니다. 슬픔과 고통, 희망이 모두 담긴 복잡한 감정인데…. 앞으로 아리랑을 더 잘 이해하면 진짜 한국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새해를 맞아 미국 미시간주의 아이스링크에서 포즈를 취한 민유라와 겜린. 평창올림픽 마스코트 수호랑을 함께 들었다.

겜린은 틈틈이 한국어 공부를 한다. K팝이나 '너의 목소리가 보여' 같은 예능 프로그램도 교재로 삼는다. 그가 가장 자신있게 부르는 우리말 노래는 애국가다. "애국가를 4절까지 달달 외웠는데, 특별 귀화 심사 땐 정작 한 소절만 부르고 끝났어요. 어찌나 아쉽던지요." 민유라는 "겜린이 귀화심사를 준비하던 무렵엔 빙판에 오를 때마다 애국가를 불러서 나도 따라 부른 적이 많았다"고 했다.

매운 음식을 못 먹었던 겜린은 이제 김치를 먹는다. "한국에 오면 불고기나 삼겹살을 맘껏 먹을 수 있어 행복하다"고 할 만큼 한국인 입맛을 갖게 됐다. 여전히 도전하기 어려운 음식이 있다면 산 낙지 정도라고 한다.

사실상 한국의 유일한 아이스댄스팀인 두 사람에게 '외롭지 않느냐'고 물었다. "외로운 1등이죠. 다른 선수들과 경쟁하면 더 빨리 성장할 것 같은데…. 그래도 우리가 한국 대표라는 자부심이 있습니다."(민유라) 재미교포인 민유라와 미국인으로 20여년을 산 겜린은 생애를 통틀어 한국 땅에서 머물었던 시간이 1년이 안 된다. 그래도 두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가슴에 달린 태극기가 자랑스럽습니다. 평창에서 아리랑을 모두 함께 불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