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우의 팝 컬처] 영화 '1987' 감상법

입력 2018.01.04 03:12

등장인물 모두에 연민이 있고 저마다 자책과 상처가 번진다
광장에서 민주주의 얻었지만 선동으로 광장이 들끓기도 해
너는 어느 쪽이냐 묻지 않는 날 1987년은 결국 끝날 것이다

한현우 문화2부장
한현우 문화2부장

영화 '1987'을 보고 나오던 밤, 가족으로 보이는 세 명과 함께 극장 엘리베이터를 탔다. 롱패딩을 입은 10대 딸이 말했다. "내일은 '신과 함께' 보여줘."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휴, 영화 보니까 괜히 심란하다."

30년 전 부모는 영화 속 대학생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 시절 엄마 아빠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딸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아빠는 영화 끝나고도 비장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고 엄마는 '심란하다'고 말함으로써 답답증을 풀어보려 했다. 딸아이는 야속하게 내일 볼 영화 생각을 하고 있었다.

1987년을 겪은 이들에게 영화 '1987'은 후련함과 통쾌함을 선사하지 않는다. 30년 전 서울시청 광장과 똑같은 풍경이 작년에도 벌어지지 않았는가. 1987년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에 가슴이 무겁고 답답하다. 광장의 함성으로 대통령이 감옥에 가고 정권이 바뀌었으니 불행한 시대는 종지부를 찍을 것인가. 권력의 속성을 아는 이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1987'은 교훈이나 쾌감을 주려는 영화가 아니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잊지 말라고 환기시키는 영화다.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던 딸이 극장 나서자마자 다른 영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엄마가 심란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고문받던 대학생이 갑자기 죽었다는 보고를 받은 경찰 간부는 한 손에 호두알 두 개를 굴리며 "보따리 하나 터진 것 갖고 왜 호들갑이냐"며 "시신을 화장해 증거를 없애라"고 지시한다. 놀라울 만큼 무표정한 그 연기도 소름 끼치지만, 까라락 까라락 호두알 부대끼는 소리가 더 끔찍하게 들린다. 길 가다가 경찰이 가방 열라고 하면 열어서 보여줘야 했고, 등교할 때 경찰에게 학번과 이름을 대야 했던 그 시절 우리 처지가 바로 그 손아귀 속 호두알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 중 몇 명은 연단 위에 올라가 구호를 외치거나 화염병을 들고 경찰과 마주 섰다. 또 일부는 구호를 따라 외치거나 군중 뒤편에서 보도블록을 깬 돌멩이를 앞쪽으로 날랐다. 그리고 우리 중 많은 사람은 영화 여주인공처럼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느냐"고 묻다가 세상이 실제 바뀌는 것을 깨닫고 뒤늦게 동참했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영화는 그런 우리가 모두 1987년의 주역이었다고 말한다. 스물두 살에 고문당해 죽은 박종철을 열사(烈士)로 모시느라 골몰하지 않고, 맨 앞에 섰다가 숨진 이한열을 영웅으로 추어올리지도 않는다. 어쩌면 이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고층 건물에서 창문을 열고 시위대에게 박수를 치는 회사원들과 경적 울려 시위에 동참하는 택시 기사들, 달아나는 대학생을 숨겨준 뒤 셔터 내리고 "장사 끝났다"고 대꾸하는 가게 주인 모습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이 영화가 가장 영웅처럼 묘사하는 장면은 영화 내내 삼성 마이마이로 김승진 노래 들으며 딴 세상 살던 여대생이 마지막에 주먹을 뻗어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다.

영화에서 검사가 상부 지시를 어기고 시신 부검을 강행한 것은 진실을 은폐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부천서 성고문 사건 때처럼 똥바가지 쓸 수 없어서"였다. 대학생을 고문하다가 죽인 경찰은 감옥에 갈 처지가 되자 "딸린 식구가 다섯이어서" 죄를 혼자 뒤집어쓸 수 없다고 말한다. 심지어 악의 정점으로 묘사되는 경찰 간부조차 6·25 전쟁 이전 겪은 트라우마가 있다. 영화는 모든 등장인물에게 일말의 연민을 비친다. 1987년의 우리를 과연 누가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눌 수 있을 것인가. 우리 모두 그 시대에 조금씩 해를 가했고 또 해를 입었다. 영화가 끝나면 그 자책감과 생채기가, 시신 덮은 천 위로 물드는 피처럼 붉게 번진다.

영화에서 진실을 폭로하겠다는 부하 경찰에게 상관은 "가족들을 임진강에 수장(水葬)시키고 월북하다가 빠져 죽었다고 하겠다"고 협박한다. 그리고 묻는다. "너는 애국자야, 월북자야?" 이 질문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다만 그 말이 촛불과 태극기, 좌파와 우파, 보수와 진보로 바뀌었을 뿐이다.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이 사라지는 날, 1987년도 결국 끝날 것이다.

광장(廣場)은 절대선(絶對善)일 수 없다. 우리는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쟁취했지만, 무책임한 선동으로도 얼마든지 광장이 들끓을 수 있음을 목격했다. 광장에서 권력에 맞섰던 사람이 권력을 얻으면 어떻게 되는지도 알고 있다.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 경찰청장이 이 영화를 보고 눈물 흘렸다고 한다. 그들이 1987년 어디서 뭘 했는지 모르겠으나 뒤늦게 호들갑 떠는 것이 온당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1987년은 그들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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