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시장' 쪼그라들고… 국가주도 '사회적 경제' 새로 넣고

조선일보
  • 엄보운 기자
    입력 2018.01.02 03:04 | 수정 2018.01.02 07:29

    [개헌 자문위 보고서]
    헌법 초안… 경제전문가 "사실상 체제 전환으로 오해할 소지도"

    '국가는 경제를 규제·조정해야' '토지에 필요한 제한·의무 과해야'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명문화
    "과도한 국가 개입 정당화하고 시장경제 근간 흔들 수도" 지적
    野 "초안 통해 與 속내 드러나"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회의 헌법 초안은 현행 헌법에서 '자유'와 '시장'을 약화시키는 대신 '민주'와 '사회'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졌다. 전문에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란 문구가 빠지고, 경제 조항에 '사회적 경제' 개념이 신설됐다.

    전문가들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가 빠진 것이 자칫 우리의 '국체'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시장경제에 기반한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사회민주주의 등으로 오인될 소지도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통일 조항(제4조)에서도 '자유'를 뺀 것은 북한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자유민주적 시장경제 질서에 입각한 통일이 아닌 다른 형태의 통일도 용인할 수 있다는 말로 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1990년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 질서를 포함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새 헌법 초안에는 전문과 통일 조항 외에 경제 분야에서도 사유재산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강화하고 시장에 대한 각종 규제를 담은 내용이 상당수 포함됐다. 경제 전문가들은 "일부 조문은 시장경제의 보완 개념이란 점을 명확히 하지 않을 경우 사실상 체제 전환으로 오해할 소지도 있다"고 했다.

    개헌특위 헌법 초안 125조는 '국가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보호·육성하고, 사회적 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노력한다'고 규정했다. '사회적 경제'는 주로 좌파 진영에서 주장해 온 것으로 "개념 자체가 모호하고 시장경제와 충돌된다"는 반론이 있었다. 시민단체들은 협동조합·마을기업과 같이 시민 연대와 참여를 바탕으로 사회 공익적 가치를 창출하는 경제 활동을 일컬어 '사회적 경제'라고 해왔다.

    하지만 보수 진영에선 사회적 기업 상당수가 현 여권 세력과 가깝다는 점에서 이들을 지원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해왔다. 민주당 윤호중 의원 등이 발의한 '사회경제적기본법안'이 아직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야권 관계자는 "헌법 초안을 통해 여권의 속내가 드러난 것"이라고 했다.

    신평 경북대 법학과 교수는 "헌법학계에선 '사회적 경제'라는 용어가 쓰인 적이 없다"며 "이런 개념이 초안에 포함된 것 자체가 의아하다"고 했다. 자문위 내에서도 소수지만 이의가 제기됐다. 장용근 자문위원은 자문위 논의 과정에서 "개념과 그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법률 제정조차 이뤄지지 못한 '사회적 경제' 용어를 상위법인 헌법에 규정하려 할 경우 보수와 진보 간 진영 논리나 이념 대립으로 인한 불필요한 갈등이 심화할 수 있다"고 했다.

    자문위 초안 119조3항의 '국가는 피해자들에게 징벌적, 집단적 사법 피해 구제 수단을 보장한다'는 조항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기업이 만든 제품에 문제가 드러나면 손해를 끼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을 소비자에게 배상토록 하는 제도다. 자문위는 "경제력의 집중과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불공정 거래와 '갑질'이 만연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개헌특위 위원인 이상돈 국민의당 의원은 "헌법에 이렇게 구체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규정하는 전례가 없다"며 "헌법이 구체성을 갖게 되면 법원 판결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므로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자문위안은 경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도 지금보다 대폭 강화했다. '국가는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하여야 한다'(119조2항), '국가는 토지 투기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한다'(120조), '자연자원은 모든 국민의 공동 자산'(121조2항) '국가는 주거 및 영업 활동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공정한 임대차가 이루어지도록 노력하여야 한다.'(122조) 등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 조항들은 자본주의 경제 질서의 근간인 사유재산제와 충돌 가능성을 자세히 살펴야 한다"며 "특히 토지공개념(120조)은 정치적 목적으로 남용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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