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에 3남매 남겨두고 혼자 빠져나온 엄마

입력 2018.01.02 03:04 | 수정 2018.01.02 07:33

연기 휩싸이자 베란다로 피신… 3남매 보낼 보육원 알아보기도
엄마 "이불에 담배 비벼 꺼"

만취 귀가 - 지난달 31일 광주 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3남매의 목숨을 앗아간 화재가 나기 전 엄마 정모(22)씨가 술을 마시고 귀가하고 있다.
만취 귀가 - 지난달 31일 광주 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3남매의 목숨을 앗아간 화재가 나기 전 엄마 정모(22)씨가 술을 마시고 귀가하고 있다. /광주지방경찰청
지난달 31일 오전 2시 26분쯤 광주광역시 두암동의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나 4세, 2세, 15개월인 3남매가 한꺼번에 숨졌다. 3남매의 엄마 정모(22)씨는 베란다에 피신했다가 구조됐다. 정씨는 손과 발에 2도 화상을 입었다. 불은 아파트 작은 방 전체와 부엌·거실 일부를 태우고 출동한 소방대에 의해 25분 만에 진화됐다. 3남매는 작은 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화재 당시 엄마 정씨는 술에 취해 있었다. 아빠 이모(21)씨는 PC방에 있었다. 이들 부부는 최근 생활고에 따른 자녀 양육 문제와 성격 차이 등으로 자주 다투다 지난달 27일 이혼 판결을 받았다. 세 아이는 정씨가 키우고, 이씨가 매월 양육비 90만원을 주기로 했다. 정씨는 3남매를 혼자 키우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최근 아이들을 보낼 보육원을 알아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혼 판결 4일 만에 만취한 엄마가 일으킨 불에 3남매가 희생됐다.

두 사람은 2010년 정씨가 중학교 3학년, 이씨가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만났다. 정씨가 고2, 이씨가 고1이 되자 동거를 시작했다. 정씨는 직후 첫아이를 가져 학교를 중퇴하고 방송통신고를 마쳤다. 고3이 될 나이에 첫아이를 낳았다. 2015년 결혼해 둘째를 낳았고, 이듬해 막내를 낳았다.

어린 부부가 3남매를 키우기에는 어려움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씨 부모가 주거비와 생활비 일부를 지원했고, 이씨는 PC방 아르바이트 등 일용직 일자리를 전전했다. 지난해 초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신 2~7월 긴급생활자금(월 130여만원) 지원을 받았다.

정씨는 사고 전날 오후 7시쯤 이씨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외출해 친구와 술을 마셨다. 이씨는 정씨가 외출하고 2시간 40여분이 지난 9시 40분쯤 친구와 PC방에서 게임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다음 날 오전 1시 50분쯤 엄마가 귀가하기까지 4시간 넘도록 어린 3남매는 방치돼 있었다. 정씨는 친구와 소주 9잔을 마시고 동전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른 뒤 귀가했다. 아파트 방범카메라 영상에 따르면 정씨는 만취한 듯 비틀거리고 있었다.

집에 돌아온 정씨는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웠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씨는 "베란다에 있으니 추워서 거실로 들어와 아이들이 잠든 작은 방 앞에 앉아 담배를 피웠고, 그때 방 안에서 막내가 칭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정씨는 "덮고 있던 이불에 담뱃불을 비벼 끄고 방으로 들어가 아이를 안고 잠든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얼마 후 아파트 내부는 불길과 연기에 휩싸였다. 작은 방에 있던 정씨는 밖에 불길이 붙은 사실을 알고 이씨와 119에 전화를 걸어 화재 사실을 알렸다. 정씨는 신고를 하고 아이들을 이불로 덮어준 뒤 혼자 베란다로 피신했다. 불길 발견에서 신고까지 약 10분이 걸렸다. 정씨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더라면 어린 생명이 한꺼번에 숨지는 참사를 막을 수도 있었다는 지적이다. 정씨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불길이 번져 들어갈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술에 취했다고는 하지만 정씨의 행동은 부모로서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며 "당황한 나머지 판단에 착오를 일으킨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규명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현장을 다녀온 경찰관은 "아이를 셋이나 낳았지만,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부모로서 능력과 책임감이 부족한 부부가 빚어낸 비극으로 보여 씁쓸하다"고 말했다. 경찰은 중실화와 중과실치사 혐의로 정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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