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손… 세계 정상 오페라단을 움직이다

조선일보
  • 김경은 기자
    입력 2018.01.02 03:04

    [2018 세계 무대를 누빈다]

    유럽 이어 美 진출, 지휘자 김은선… 취리히·빈 국립오페라 데뷔 앞둬
    "名지휘자 되겠단 욕심보다 '나와 연주하면 즐겁다'는 말 좋아"

    지휘자 김은선
    지난해 10월 20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조지 브라운 컨벤션 센터. 지휘자 김은선(38·작은 사진)이 시즌 첫 공연인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무대에 올랐다. 두 달 전 허리케인 '하비' 피해로 역대 최악의 물난리가 난 휴스턴은 오페라극장과 콘서트홀까지 물에 잠겼다. 끝내 컨벤션 센터로 자리를 옮겨 공연을 연 상황. 전시장을 오페라 무대로 꾸미느라 가변형 객석을 급히 짜 맞춰 오케스트라 공간을 만들 수도, 음향판을 달 수도 없었다. 오케스트라는 무대 뒤 좁은 공간에 겨우 비집고 들어갔고, 김은선은 공연 내내 가수들을 등지고 지휘했다. 그러나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뉴욕타임스는 "이날의 진짜 '스타'는 북미 무대에 처음 선 한국 출신 젊은 지휘자 김은선이었다"며 "섬세하고 유연한 감각으로 '라 트라비아타'를 아주 아름답게 이끌었다"고 호평했다.

    독일과 영국, 이탈리아에 이어 최근 미국 무대까지 섭렵하며 눈부신 활약을 펼쳐온 김은선에게 2018년은 세계를 지휘하기 위한 도약으로 가득 차 있다. 휴스턴 공연 이후 지난 연말까지 독일 드레스덴 젬퍼 오페라에서 '리골레토', 뮌헨 바이에른 국립오페라에서 '헨젤과 그레텔'의 지휘봉을 연달아 잡았고, 오는 12일부턴 베를린 국립오페라에서 '낙소스섬의 아리아드네'를 지휘한다. 베를린에선 오는 10월 '일 트로바토레' 지휘를 다시 요청받았고, 7월엔 '카르멘'으로 취리히 오페라에 데뷔한다. 세계 정상급 오페라단을 운이 좋아 한 번 지휘할 순 있어도 거듭 연주 요청을 받는 건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독일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김은선. 2018년을 목전에 둔 지난 29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그는 “사람들에게 순간의 예술인 음악을 맘껏 즐기게 해주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독일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김은선. 2018년을 목전에 둔 지난 29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그는 “사람들에게 순간의 예술인 음악을 맘껏 즐기게 해주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김은선 홈페이지
    지난 29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김은선은 "휴스턴에선 미국 데뷔인데 공연장이 엉망이니 취소해도 양해해 주겠다고 했지만 내가 가겠다고 했다. 자연재해로 모두가 어려운데, 나 살겠다고 안 할 순 없었다"며 웃었다. 마침 그녀가 마지막 공연을 지휘할 때 '한 시즌 100패'를 밥 먹듯 했던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메이저리그 정상에 올랐다. "집 잃은 시민들이 전시장이라도 빌려서 오페라를 해주는 걸 고마워했어요. 음악이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고, 폐허가 된 도시를 되살려내는 걸 몸소 느꼈죠."

    연세대 작곡과와 같은 대학원 지휘과를 졸업한 김은선은 독일 슈투트가르트 음대에 재학 중이던 2008년 5월 스페인 지휘자 헤수스 로페즈 코보스가 주최하는 오페라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하루 네 시간 자며 영어·독일어·스페인어·이탈리아어·프랑스어를 터득한 독종이다. 지금은 내년 5월 미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에서 지휘할 드보르자크 '루살카'를 대비해 체코어를 익히고 있다. "그 나라 음악을 이해하려면 그 나라 말을 먼저 알아야 해요. 그래야 선율이 몸에 달라붙죠." 아침에 눈뜨면 5개국 신문을 탐독하고, 온종일 라디오를 듣는다. "억양과 말씨까지 원어민처럼 구사해야 마음이 놓여요. 저는 세계 최고 악단을 지휘하고 싶은 욕심도, 카라얀 같은 명(名)지휘자가 되겠다는 목표도 없어요. 같이 연주한 음악가들 사이에서 '은선 킴과 함께하면 즐겁고 신나'란 말을 듣고 싶을 뿐. 하지만 A부터 Z까지 완벽을 기해서 첫 리허설에 임해야 단원들을 납득시킬 수 있어요."

    콧대 높은 남성 단원들을 이끄는 그만의 비결은 '헌신'이다. "막힐 때마다 제가 SOS를 치는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과 키릴 페트렌코의 공통점은 끊임없이 공부한다는 거예요. 뒷모습을 멋지게 꾸며내지도 않죠. 여자인 것도 저는 스트레스인 적이 없어요. 음악만 하기에도 24시간 빠듯하니까. 그래도 어느 순간 슬럼프를 느낄 때면? 다시 또 악보를 펼쳐요. 봤던 걸 또 봐도 안 보였던 게 새로 보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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