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美·中 모두에 존중받지 못하는 한국 외교

조선일보
  • 김창준 前 미 연방하원의원
    입력 2018.01.02 03:14

    美는 한국을 배신한 적 없어 광우병 괴담… 反美 시위에도힘으로 억누르려 하지 않아
    반면 中은 근육 흔들며 위협, 사드 보복에 한국기자 폭행… 우리에게 미국만 한 동맹 없다

    김창준 前 미 연방하원의원
    김창준 前 미 연방하원의원
    6·25전쟁 때 미군 3만6000명이 이 땅에서 전사했다. 나는 내 눈으로 6·25의 비극을 똑똑히 본 세대이고, 그 후 반세기를 미국에서 살았다. 그동안 미국은 동양의 가난한 나라에서 온 유학생, 이민 1세인 나를 믿고 자기들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 뽑아준 포용의 나라였고, 국가적으로는 전후 70년간 대한민국과 피로 맺은 동맹의 약속을 충실히 지킨 신의의 나라였다.

    미국은 지금껏 단 한 번도 한국과의 동맹을 깨거나 배신한 적이 없다. 미국에 있지도 않은 광우병 괴담을 퍼뜨리며 온 나라가 반미 시위로 들끓을 때도 미국은 동맹의 국민이 냉정을 되찾을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때 '30개월 지난 쇠고기는 수입할 수 없다'는 항목에도 미국은 동의했다. 근육병으로 쩔뚝거리는 소들을 한국 기자들이 몰려와 사진을 찍고 이들을 광우병 소라고 보도하는 바람에 그 여파로 내 지역구(캘리포니아 치노힐스)에 있던 목장은 망했다. 목장 주인이 반미 시위대가 명백한 허위사실을 퍼뜨렸는데도 한국 정부는 아무 처벌도 하지 않는다고 원망의 소리를 퍼부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속으로 미안해했다. 미국 정부도 자국민의 원망을 들었지만 이를 빌미 삼아 한국 정부를 힘으로 억누르려 하지 않았다.

    중국은 어떤가. 한반도의 역대 왕조는 과거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세자 책봉까지 중국 황제의 윤허를 받아야 했다. 중국의 신하인 양 눈치 보며 살았고, 그런 국가관계가 몸에 배어 중국을 무서워하고 숨죽이며 지냈다. 지도를 펴놓고 보면 중국 땅이 축구장만 하다면 남한은 그 축구장 구석에 놓인 침대 하나 크기만 하다. 지금도 중국 인구는 우리의 30배이고, 중국인 상위 3%는 엄청난 부자라는데 이는 한국 전체 인구와 같다. 중국은 자기들이 필요할 때마다 커다란 덩치를 드러내고 우리에게 근육을 흔들어 보이며 위협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사드를 배치하지 말라는 요구를 듣지 않는다고 중국이 행한 부당한 보복 조치를 보라. 미국이 그랬다면 당장 광화문광장이 반미 시위대로 뒤덮였을 것이다. 미국은 태평양 건너 멀리 있고, 중국은 바로 옆에 있어서 이러는 건가.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 중에 대한민국 기자들이 무참할 정도로 폭력을 당한 모습을 보고 나는 너무도 분하고 마음이 아팠다. 외신 기자에게 폭력을 가한다는 것은 국제 예의상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만일 이들이 미국의 CNN 기자였더라도 이처럼 심하게 구타했을지 의문스럽다. 이 추태를 그냥 덮어서는 안 된다. 국제사회에 호소하고 UN 또는 IFJ (국제기자연맹) 등을 통해 정식 항의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드 관련 경제보복을 완화하겠다는 중국의 태도 변화는 중국 정부의 시혜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 정부가 사드 배치를 단행했던 결단력과 의지를 보였기 때문에 우리를 대하는 중국의 태도가 바뀌었다고 봐야 한다. 중국은 미국의 더 강력해지는 압박과 유엔 제재 등 중국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이 따가운 시점에서 문 대통령과 회담을 하게 된 것이었다. 때문에 문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다. 우리는 북핵 문제에 대해서 미국도 중국도 북한도 아닌 우리에게 그 헤게모니가 쥐어진 것이라 여기고, 시진핑 주석에게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에 초점을 맞추어 중국이 북한의 핵 포기를 위해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설득시켰어야 했다. 앞으로도 우리는 중국이 북한의 핵 포기를 위해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강력히 설득하고 우리도 합심하여 미국을 설득하면서 총 한 번 쏘지 않는 평화적 방법으로 핵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국제 사회 속에 하나의 국가로 존재하는 한 안보는 홀로 구축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개인 간에도 동지가 있고 친구가 있으며, 동지를 위해 함께 고난을 겪고 같이 죽기도 한다. 이것이 의리다. 국가 간에도 당연히 의리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국가 간의 그런 의리 관계를 '동맹'이라고 부른다. 일본은 원자폭탄으로 수십만명이 죽었는데도 과거의 상처를 묻고 지금은 미국의 강력한 '안보 파트너'가 되었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우리에게도 미국만 한 동맹은 없다.

    지금 우리 현실에서 중국은 우리의 가장 큰 경제 파트너이고 미국은 국방동맹을 맺은 안보동맹이다. 중국과 미국 둘 다 우리 국가 이익에 핵심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나라들이다. 그렇다고 미·중 두 나라 사이에서 균형을 맞춘다고 어정쩡한 자세를 취해서는 어느 한쪽으로부터도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우리에게는 중국과의 경제협력도 중요하지만 미국은 우리와 피를 나눈 동맹이란 사실을 잊지 말고, 안보와 경제 그 무엇이 우선인지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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