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당선작]
등장인물 조용한·김정도·박영삼·이부진·최루나
시간 현재
장소 서울 시내 카페
무대 무대는 여느 카페를 연상할 수 있도록 대·소도구를 사용해 형상화할 수 있다.실내에는 원형 소형 탁자 다섯 개와 그에 딸린 푹신한 의자가 비치돼 있다. 의자 수는 임의로 할 수 있다. 위치 또한 임의로 조정 가능하다.
카페 안. 예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조용한이 앉아서 컴퓨터를 켜놓고 뭔가 몰두하려 하고 있다. 이부진과 최루나도 앉아 있다. 조용한, 컴퓨터로 뭔가 작업을 하려 하나 잘되지 않는다. 고개를 들었다가 먼 곳을 바라보기도 하고 기지개를 켜기도 한다. 이부진과 최루나의 존재에 약간 방해를 받는 듯 고개를 돌리곤 한다. 이부진, 커피를 홀짝이며 핸드폰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누군가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잠시 책을 꺼내 읽다가 이내 핸드폰을 꺼내 든다. 조용한, 그 모습을 바라본다. 최루나, 이어폰을 귀에 꽂고 핸드폰을 보며 머리를 까딱거리고 있다. 최루나 역시 핸드폰에 코를 박고 뭔가 열심히 눌러대고 있다. 간혹 낄낄대기도 한다. 이부진, 전화가 걸려온다.
이부진 여보세요? 어머, 재형 엄마. 일이 있어서 잠깐 나왔어요. 시내 카페. 세월 좋긴요? 남편 출근시키고 애들 학교 보내고 겨우 짬 내서 나온 건데. 아이고 재형 엄마는 애들 다 커서 그렇지. 최루나 핸드폰 울린다.
최루나 (퉁명스레) 왜? 도서관. 아 몰라. 내가 알아서 할게. 엄마가 그걸 알아서 뭐하게?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조용한, 두 사람을 못마땅히 슬금슬금 쳐다본다.
이부진 그러니까 돈이 좀 많이 들어요? 애 아빠요? 애들 학원비로 다 들어가지 뭐. 우리 애들? 큰애만 세 군데 보내요. 둘째는 보습학원만 다니고.
최루나 아 몰라. 끊어. 일일이 그걸 어떻게 다 얘기해? 엄마가 수능 봐? 예체능은 다 그래. 얘기해도 모르잖아. 짜증나게 왜 그래?
이부진 말도 마세요. 그 일도 서로 하려고 줄을 섰더라고. 모니터링으로 지원했다니까. 안 하면 애들 학원비랑 생활비는 뭘로 충당해? 저축요? 남편 외벌이로는 꿈도 못 꿔요. 전세 대출 이자 내기도 빠듯한데.
최루나 말을 해도 못 알아들으니까 그렇지. 연습실은 조금 이따 갈 거야. 알았어. 끊어.
이부진 아무튼 연락 준다고 했으니까 기다려보는 거예요. 차 한잔하고 들어가려구. 안 돼도 어쩔 수 없지 뭐. 예. 들어가요. 이부진과 최루나, 전화 끊자마자 곧바로 핸드폰 들여다본다. 이부진은 검색을 하고 최루나는 누군가와 문자메시지 주고받는 데 열중하고 있다. 조용한, 작업에 열중하려 애쓰나 그들이 신경 쓰인다. 다시 자세를 고쳐 앉고 집중해서 뭔가를 하려 한다. 자판을 몇 번 두드리나 이내 고개를 들고 궁리하듯 천장을 본다. 이내 핸드폰을 꺼내 확인한다. 아무 변화가 없자 심드렁히 컴퓨터를 응시한다. 조용한에게 문자메시지가 온다. 조용한, 신경 안 쓰고 작업에 몰두하려 하나 잘 안 된다. 결국 핸드폰을 확인한다.
조용한 뭐야? 스팸 이거.
조용한,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내던진다. 다시 자세를 고쳐 앉는다. 주위를 한 번 쳐다본다. 이부진과 최루나, 여전히 핸드폰 삼매경에 빠져 있다. 조용한, 컴퓨터 화면을 주시한다. 조용한의 핸드폰이 진동에 부르릉거린다.
조용한 (황급히 받으며) 어. 김 이사. 바쁜가 봐. 내가 몇 번 전화했는데. 아니 뭐 특별한 건 아니고. 그래. 고마워. 예전 같진 않지? 애 엄마? 잠시 떨어져 있어. 신경 써줘서 고마워. (반색하며) 읽어 봤어? 그게 전부터 내가 구상했던 건데 제작이랑 감독은 모두 괜찮다고…. 응? 그래. 꼭 연락 줘. 기다릴게. 고마워 재선아. 아니 김 이사.
조용한, 낙담한 빛이 선하다. 한숨 한 번 내쉬고 마음을 추스른다. 다시 컴퓨터 화면을 주시하다 자판을 두드린다. 이부진과 최루나, 여전히 핸드폰 화면에 빠져 있다. 갑자기 김정도, 통화하며 들어온다.
김정도 예. 그러니까 오백에 삼십짜리는 요즘엔 없고요. 천에 사십이 가장 싼 거라 보시면 됩니다. 여기 시세가 그래요. 요즘엔 인터넷으로 다 연결돼 있어서. 어디 알아봐도 그게 제일 싼 겁니다. 예. 그러세요.
김정도,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전화받는다.
김정도 아이고. 김 사장. 외근 나왔다가 잠깐 시간이 나서. 서 사장? 사무실에서 보기로 했는데. 아니 그 건은 물건 교환으로 돌렸어. 명도 변경돼서 세입자만 죽게 생긴 거지. 전전세까지는 보장이 안 되잖아. 일단 만나보고 정리하자고 해야지. 우리야 구전만 떼면 된 거 아녀? 문어 숙회? 좋지. 그럽시다. 돈이야 당신이 벌지. (호탕하게 웃으며) 그럼 이따 봅시다. 그래요.
조용한, 시끄러운 김정도의 통화에 불쾌한 심정을 억누른다. 김정도, 앉아서 고스톱 게임을 한다. 게임에서 나오는 소리가 너무 크다. 그러나 아랑곳 않고 게임을 계속 한다. 조용한, 매우 신경 쓰여 김정도를 노려본다. 그러나 김정도, 신경도 쓰지 않는다. 조용한, 신경질적으로 의자를 뒤로 확 밀고 몸을 뒤로 젖힌다. 큰기침도 몇 번 한다. 김정도, 조용한을 힐끔 쳐다본다. 신경도 안 쓰고 고스톱 게임을 계속한다. 조용한, 신경질적으로 의자를 끌어당겨 앉는다. 가래 끓는 소리를 크게 한다. 김정도, 마지못해 게임 볼륨을 작게 줄인다. 조용한, 마음을 추스르고 자판에 집중한다. 박영삼, 들어온다. 자리에 앉자마자 동시에 핸드폰이 전부 울린다. 김정도·박영삼·이부진·최루나 모두 전화를 받는다. 소리가 한데 엉켜서 매우 소란스럽다. 조용한, 매우 심기 불편하다. 짜증이 머리 끝까지 나 있다. 갑자기 조용한에게 전화가 온다.
조용한 (매우 큰소리로) 여보세요! 조용한 내 이름 맞는데. 너희네 생명에서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어? 시간 없어, 이 양반아. 아 지금도 없고 나중에도 없어요. 이런 전화 좀 하지 말아요!
고함치는 조용한 때문에 사람들이 머쓱하게 핸드폰을 들고 쳐다본다. 모두 목소리를 조금 낮춰 통화한다.
박영삼 예. 고객님. 컨버전스 상품은 연금 상품이라 무배당 변액 상품입니다. 생명보험에서 나온 상품 중엔 최근 출시된 고객 맞춤형 상품이라 인기가 많습니다. 고정금리 적용 상품이라 지금 빨리 가입하시는 게 좋습니다. 예. 제가 다 알아서 설계해 드립니다. 예. 여섯시까지 이 전화번호로 연락드리고 찾아뵙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상가 담당한 지 10년 넘어서 다른 고객님들 저 박영삼 하면 다 아실 겁니다. 예. 성실히 모시겠습니다.
박영삼, 전화를 끊고 스케줄 노트를 펴 본다. 핸드폰을 확인하며 바쁘게 업무를 본다. 김정도는 게임에 여전히 열중하고 있다. 이부진은 검색에 최루나는 누군가와 카톡을 주고받으며 키득대고 있다. 조용한, 집중해서 시나리오를 작성하려 컴퓨터 자판에 손을 올려놓는다. 각자 핸드폰에 빠져 있는 동안 조용한, 집중하려 애쓴다.
그러나 금방 자신의 핸드폰에 손이 간다. 아무런 변화가 없자 핸드폰을 내려놓고 컴퓨터 화면을 주시한다. 자판을 두들기기 시작할 무렵 조용한, 뭔가 생각난 듯이 핸드폰을 찾아든다. 전화를 걸려는 순간 핸드폰에서 카톡 알림음이 들린다. 조용한, 핸드폰 확인한다. 핸드폰 화면이 정지돼 있음을 확인하고 당황한다. 핸드폰을 이리저리 확인해보지만 먹통이 된 것을 되돌리지 못한다. 몹시 당황하는 조용한. 주변을 둘러보는 조용한. 모두 자기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다.
조용한 이거 왜 이러지? 당황해서 전화기를 이리저리 둘러보는 조용한. 손으로 두들겨보고 배터리를 뺐다 껴본다. 여전히 먹통.
조용한 전화해야 되는데.
마지못해 김정도에게 다가가는 조용한.
조용한 저, 선생님.
김정도 예?
조용한 죄송한데 전화 한 통 써도 되겠습니까? 제 핸드폰이 갑자기 말을 안 들어서.
김정도 핸드폰이 말을 안 들어요?
조용한 갑자기 먹통이 돼서요.
김정도 그래요?
김정도, 마지못해 핸드폰을 건네준다.
김정도 짧게 쓰쇼.
조용한 예. 간단한 통화입니다. 길게 안 써요.
미심쩍어하며 바라보는 김정도.
조용한 비밀번호가?
김정도, 핸드폰 도로 가져가 비밀번호를 풀고 다시 건넨다. 조용한, 건네받은 핸드폰으로 전화 걸려는 순간 카톡음이 울리면서 먹통이 돼버린다.
조용한 어. 이거 왜 이러지?
조용한, 매우 당황해 전화기를 이리저리 둘러본다. 김정도, 전화기를 채뜨린다.
김정도 이거 왜이래?
조용한 전 아무 짓도 안 했습니다.
김정도 이봐요. 이거 어떻게 된 거예요?
조용한 그러게요. 전화가 또 먹통이 됐네.
김정도 이 양반이.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조용한 … .
조용한, 눈치 살피다가 슬금슬금 자기 자리로 돌아가려 한다.
김정도 이봐요.
조용한 예?
김정도 이거 어떻게 된 거냐고?
조용한 그게… .
김정도 뭐가 그게야. 원래대로 해 놔요.
조용한, 전화기를 받아들고 이리저리 둘러보고 눌러보고 하다 다시 김정도에게 돌려준다.
조용한 아무래도 AS를 받아 보셔야겠는데요.
김정도 뭐요?
조용한 AS….
김정도 무슨 소리야? 좀 전까지 잘 되던 건데.
조용한 갑자기 먹통이 됐으니. 아무튼 미안하게 됐습니다.
김정도 이 사람이. 이게 미안해서 될 일이야?
조용한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김정도 남의 핸드폰 빌려갔으면 책임지고 돌려줘야 할 거 아냐?
조용한 핸드폰은 돌려 드렸는데.
김정도 망가뜨려 돌려주면 어떡해?
조용한 그게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김정도 그게 말이야, 방구야. 이 사람이.
조용한 제가 핸드폰을 어떻게 한 게 아니고 저절로….
김정도 쓸데없는 소리 말고 원상복구 해 놔. 내 참 어이없어서.
조용한, 다시 받아 들고 마지못해 이리저리 보다가 배터리도 다시 넣어본다.
김정도 나 전화 올 데 있어. 빨리 고쳐요.
조용한 하고 있지 않습니까?
김정도 지금 전화 받아야 하는데. 당신 때문에 전화 못 받아 계약 깨지면 책임질 거요? 자그마치 10억짜리 건인데. 구전만 삼백이 넘는구먼.
조용한, 쩔쩔매며 전화기를 이리저리 만진다. 식은땀을 흘린다. 다른 사람들 모두 자기 핸드폰에 열중해 있다.
김정도 뭐해? 빨리 고쳐.
조용한 지금 하고 있잖아요?
김정도 하여간 전화 못 받아 계약 깨지기만 해 봐.
조용한, 비지땀을 흘린다. 유심칩까지 빼서 닦고 다시 끼워보나 여전히 먹통이다.
조용한 선생님. 이 전화기 어디 겁니까?
김정도 뭐요?
조용한 삼성이에요, LG예요?
김정도 무슨 소리야?
조용한 제조사가 어딘지 알아야 센터에 전화를 해 보죠.
김정도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냥 영업소에서 좋다니까 썼지.
조용한 삼성이네.
김정도 제일 비싼 거요. 최신으루다가.
조용한, 땀 닦으며 박영삼에게 다가간다. 박영삼, 연신 몸을 굽실대며 전화하고 있다.
박영삼 예. 사장님. 자산분석 결과 부동자산에 투자가 치우쳐 있어서 유동자산 비중을 좀 더 높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포트폴리오 작성해서 바로 이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성실히 모시겠습니다.
조용한 저, 선생님.
박영삼, 통화 계속하면서 조용한을 올려다본다.
조용한 선생님 저기.
박영삼 (전화기를 손으로 막으며) 예?
조용한 죄송한데 통화 끝나면 전화 한 통 빌릴 수 있을까요?
박영삼 (다시 통화하며) 예. 사장님.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 당장 아니더라도 저 김영삼, 아니 아니 박영삼 꼭 기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요. 아침·점심·저녁·새벽, 화장실 있을 때 빼 놓고는 언제든 불러주시면 달려갑니다. 성실히 모시겠습니다.
박영삼, 전화기에 대고 꾸벅 절을 한다. 통화를 끝내고 자세를 고쳐 조용한을 미소 지으며 바라본다.
박영삼 무슨 궁금하신 점이 있으세요?
조용한 아니 궁금한 게 아니라
박영삼 걱정 마십시오. 보험. 쉽지 않죠. 도대체 내가 무슨 보험에 들어 있고 무슨 보험을 들어야 하나? 이거 만만한 게 절대 아닙니다.
조용한 그게 아니라… .
박영삼, 주머니에서 자신의 명함을 꺼내 조용한에게 건넨다. 조용한, 얼떨결에 받는다.
박영삼 아침·점심·저녁·새벽, 화장실 있을 때 빼놓고 필요하시면 언제든 달려갑니다. 김영삼, 아니 아니 박영삼. 언제고 전화주세요.
조용한 보험이 아니라 전화 좀… .
박영삼, 전화가 또 온다. 황급히 자세를 바꿔 전화를 받는다.
조용한 저기 전화 좀 빌려주세요.
박영삼, 통화하면서 조용한을 쳐다본다. 조용한, 손으로 전화 거는 흉내를 낸다.
조용한 한 통화만 빌립시다.
박영삼 (손으로 전화기를 가리고) 예?
조용한 (손으로 전화를 가리키며) 한 통화만.
박영삼, 빤히 바라보다 가방을 한 손으로 뒤져 다른 전화기를 꺼내 건넨다. 조용한, 김정도에게 간다.
조용한 삼성이라 했죠?
김정도 제일 비싼 거요. 최신품.
조용한 요즘 핸드폰 얼마 안 해요.
조용한, 박영삼의 핸드폰을 들고 전화를 걸려는 순간 카톡음이 또 울린다. 조용한, 화들짝 놀란다.
김정도 왜 그래?
조용한 이게 또 먹통이.
김정도 뭐요?
조용한 아까도 이러더니.
김정도 어디 봐요.
조용한 난 아무 짓도 안 했어요.
김정도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박영삼, 통화 끝내고 두 사람에게 다가온다.
박영삼 무슨 일 났어요?
김정도 이 사람이 또 전화를 먹통으로 만들었어요.
박영삼 예?
조용한 내가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김정도 아니긴.
조용한 전화는 걸어보지도 못했다고요.
김정도 어쨌든 당신이 만졌잖아. 전화는 먹통이 된 거고.
조용한 그게 아니라니까.
박영삼 어디 봅시다.
박영삼이 이리저리 조사해본다.
박영삼 이건 비업무용이라 사용량도 많지 않은 건데.
김정도 내 핸드폰도 바꾼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새 거요.
박영삼 언제 이렇게 됐어요?
조용한 좀 전에요. 선생님한테 빌려서 전화 통화하려고 한 건데.
박영삼, 핸드폰 껐다 켰다 해보지만 별반 나아지지 않는다.
박영삼 뭐 이상한 점 없었나요?
조용한 없었어요. 전화하려 할 때 카톡이 들어오긴 했지만.
박영삼 예?
조용한 가만? 카톡. 맞다.
박영삼 카톡이요?
조용한 예. 전화 쓰기 전에 카톡이 왔어요.
김정도 카톡 한두 번 받나?
조용한 전부 다 카톡이 왔어요. 선생님 거, 선생님 거, 제 거 다.
박영삼 전부 다 카톡이 왔다고요?
김정도 카톡이야 엄청 오지 않나? 나도 매일 수십 통 오는데.
조용한 그래도 이상하잖습니까?
김정도 그게 뭐가 이상해? 당신 손이 이상한 거지.
조용한 예?
김정도 손에 귀신이 붙었나? 재수 옴 붙은 것도 아니고.
조용한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김정도 내 말이 틀렸소? 당신이 만지기만 했다 하면 전화가 먹통이 됐잖아.
조용한 그거야 그렇지만, 제 손에 귀신이 붙었다뇨?
김정도 어쨌든.
조용한 취소하세요. 그 말.
김정도 못 하겠다면?
조용한 취소하세요.
김정도 못 해. 이 양반아.
조용한 (악을 쓰며) 취소해요!
김정도 이런 니x. 못 해. 니xx.
조용한 뭐요?
김정도 그래. 씨xx. 핸드폰이나 고쳐내. 경찰서에 콱 처넣기 전에.
조용한 뭐라고? 이 양반이 보자 보자 하니까.
김정도 뭐? 이 양반? 야 이 씨xx놈아. 한 주먹 감도 안 되는 호x새끼가. 두 사람, 뒤엉키기 일보 직전이다.
박영삼 잠깐만요. 어른들끼리 왜 이러세요?
김정도 저 하룻강아지가 먼저 덤비잖소? 나이도 한참 어린 놈의 새끼가.
조용한 이런 옘병, 나이가 벼슬인가?
김정도 그래 벼슬이다. 똥으로 시루 쪄 먹을 놈아.
박영삼 자자, 그만들 하시고.
박영삼이 말리고 두 사람 엉기는 걸 보고 있는 다른 사람들. 이부진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실황중계하는 듯하다. 최루나는 사진을 찍기도 한다. 갑자기 모두의 핸드폰에 카톡 알림음이 울린다. 일순 긴장감이 감돈다. 각자의 핸드폰을 확인하는 박영삼·이부진·최루나. 세 사람 서로 얼굴을 번갈아 본다. 모두 조용한에게 시선이 집중된다. 최루나, 이어폰을 빼고 핸드폰을 확인하려 하는 순간.
박영삼 안 돼!
최루나, 화들짝 놀란다.
박영삼 잠깐. 잠깐만요.
모두 박영삼을 주시한다.
박영삼 학생, 그 핸드폰 이리 줘 봐요.
최루나 예?
박영삼 이상 없죠?
최루나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박영삼 지금 좀 이상한 일이 있어서 그래요. 학생.
최루나 (시비조로) 누가 이상해요?
박영삼 학생이 이상하다는 게 아니라.
최루나 이상한 아저씨야.
최루나, 핸드폰을 확인하려 한다.
박영삼 (다급하게) 잠깐. 학생. 잠깐.
최루나 깜짝이야.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요?
박영삼 미안해요 학생. 학생도 지금 다 봤잖아요.
최루나 보긴 뭘 봐요?
박영삼 (조용한을 가리키며) 여기 이 아저씨.
최루나, 조용한을 쳐다본다.
김정도 이 사람 손에 귀신 붙었어.
최루나 예?
조용한 아니라니까.
박영삼 저분이 만지면 핸드폰이 고장이 난다고 이분이 말씀하시거든.
최루나 (미심쩍게 바라보며)… .
박영삼 그러니까 학생 핸드폰 좀.
최루나, 핸드폰을 홱 옆으로 감춘다.
박영삼 아니 뭐 확인만 잠시 해보는 거야.
최루나 싫어요.
박영삼 저분이 카톡이 온 전화를 만지면.
최루나 아저씨도 카톡 왔잖아요. 저 언니도. 이부진, 화들짝 놀란다.
이부진 안 돼. 내 건.
최루나 왜 안 돼요? 아저씨, 아줌마, 나 전부 다 카톡 받았잖아요?
이부진 그래도 내 건 안 돼.
최루나 왜 안돼?
이부진 그건… 학생이 먼저 카톡 확인하려 했잖아.
최루나 누가 뭘 확인해?
이부진 좀 전 카톡 온 거 제일 먼저 확인하려 했잖아.
최루나 무슨 소리예요? 나 그냥 음악 듣기 싫어서.
이부진 아무튼 내 건 안 돼.
최루나 나도 안 돼. 절대 안 돼.
두 사람, 박영삼을 노려본다.
박영삼 이거?
모두 박영삼이 들고 있는 핸드폰에 시선을 집중한다.
박영삼 안돼. 이거. 이게 얼마나 중요한 핸드폰인데.
이부진 내 핸드폰에도 중요한 거 다 저장돼 있어요.
최루나 내 건 여태 내가 모았던 음악·게임 다 들어 있단 말예요. RPG 게임이 얼마나 비싼데.
박영삼 내 건 고객 정보만 천 건이 넘어요. 인터넷 뱅킹에 모든 공유 업무가 다 이걸로 이뤄지는데.
최루나 아저씨만 중요하고 우린 안 중요해요?
이부진 맞아. 핸드폰 안 중요한 사람이 어딨어?
김정도 짱께미뽀 해.
이부진 예?
최루나 뭐래?
김정도 짱께미뽀 몰라?
이부진 그게 뭐예요?
최루나 알고 싶지도 않아. x라 구려.
김정도 뭐야? 쪼매난 기집애가.
최루나 언제 봤다고 기집애예요? 아저씨 나 알아요?
김정도 뭐야? 어린 것이 어른한테 꼬박꼬박 말대답하고.
최루나 뭐야. x라 재수 없어.
김정도 이런 호랑 말코 같은 것이 말끝마다. x라가 뭐야? 이눔의 기집애야.
최루나 씨x 짜증 나.
김정도 그러니까 니 거 내 거 하지 말고 가르란 말야. 공평하게 갈라서 하나 정해.
이부진 가위바위보를 하라고요?
김정도 그래. 공평하잖아.
이부진 뭐가 공평해요?
김정도 왜 안 공평해?
이부진 그럼 아저씨 걸로 확인하면 되잖아요?
김정도 내 건 이미 먹통이 됐잖아.
조용한 뭘 그렇게까지 확인합니까?
김정도 당신은 가만있어. 누구 때문에 이 사달이 났는데.
조용한 괜히 생사람 잡지 맙시다.
김정도 누가 생사람을 잡아? 당신이 망가뜨렸잖아. 핸드폰. 이거랑 저거.
조용한 제 거도 망가졌다고요.
최루나 지 거 지가 망가뜨린 걸 누가 뭐래?
조용한 학생 그게 아니라….
최루나 아 몰라. 무조건 안 돼.
이부진 절대 안 돼 나도.
김정도 갈라. 가르라고. 짱께미뽀 해.
세 사람, 급기야 서로 삿대질하며 뭐라 소리 지르고 다툰다. 박영삼,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 사람들, 멈칫한다.
박영삼 아저씨 뭐 하는 사람이에요?
조용한 저요?
박영삼 예. 모든 발단이 아저씨 때문 아닙니까?
김정도 그렇지.
이부진 맞아요.
최루나 맞다.
박영삼 원인은 아저씨한테 있을 거 아녜요?
조용한 저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김정도 당신 뭐 하는 인간이야?
이부진 아까부터 컴퓨터로 뭘 하고 있었어요.
최루나 나 들어오기 전부터 있었어.
조용한 난 작가예요.
김정도 작가? 무슨 작가?
조용한 시나리오 작가요. 전 평범한 사람입니다.
김정도 작가같이 안 생겼는데.
조용한 작가 맞아요. 믿어 주세요.
박영삼 무슨 작품 썼어요?
이부진 시나리오면 영화잖아?
최루나 드라마도 요.
김정도 무슨 작품을 썼어?
조용한 저, 많아요. 그러니까.
박영삼 말해 봐요. 우리가 알만 한 게 있어?
조용한 그러니까 독립영화랑 연극 대본이 많은데, 그게….
김정도 빨리 말해.
조용한 단편영화로 상도 받았는데 신춘문예도 당선됐고….
최루나 그러니까 뭐냐고? 아우 짜증나.
박영삼 컴퓨터로 뭘 하고 있었다고 했죠?
이부진 제가요?
박영삼 (조용한에게 고갯짓을 하며) 아니.
최루나 예. 주위를 막 살피고 또 뭐 막 키보드 치고 그랬어. 우리 쳐다보면서.
조용한 내가 언제 그랬어? 학생, 생사람 잡지 마.
이부진 맞아. 나도 봤어.
최루나 혹시 해커 아냐? 바이러스 퍼뜨리고 그러는?
박영삼 해커?
이부진 맞아. 요즘 그런 프로그램 만들어서 돈 뜯어낼 목적으로 퍼뜨리고 그런다잖아요.
조용한 아녜요. 난 그저 일개 작가입니다. 이야기 만들어 내는.
박영삼 전에 무슨 도청하고 핸드폰 조종하는 프로그램 있었다고 그랬죠? 국정원에서 그거 사다가 사람들 막 도청하고 핸드폰 조종하려고 해서.
김정도 그것 때문에 국정원장 모가지 날아갔지 아마.
최루나 스파이 앱! 좀비 PC. 좀비 핸드폰. 그거 심으면 꺼놔도 다 듣고 다 본다고 했어.
조용한 아닙니다. 전 컴맹이나 다름없어요. 이메일도 제대로 못 보내는데.
박영삼 봅시다. 당신 컴퓨터.
이부진 맞아. 그걸로 조종하고 있었는지 모르잖아.
사람들, 조용한을 끌고 컴퓨터가 있는 자리로 몰고 간다. 인민재판 하듯 조용한을 몰아세운다. 조용한, 공포에 떨면서 컴퓨터를 켜고 그들에게 보여준다. 박영삼이 컴퓨터를 빼앗아 이것저것 다 열어보려 한다.
조용한 그건 제 개인 파일입니다.
박영삼 가만있어. 이 양반아. 여기에 뭐가 들어 있을 줄 어떻게 알아?
김정도 너 용코로 걸렸어.
조용한 제가 작업하던 시나리오만 보면 되잖아요. 이거 사생활 침해입니다.
김정도 사생활 침해 좋아하네. 도둑놈 주제에.
조용한 이봐요. 제가 뭘 훔쳤습니까? 내가 왜 도둑놈이에요?
김정도 나쁜 짓 하는 놈들은 다 도둑놈이야.
최루나 엄마야! 최루나,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
박영삼 왜 그래?
최루나 내 핸드폰!
이부진 핸드폰?
최루나 화면이 움직이지 않아요. 먹통이 됐어.
박영삼 뭐?
이부진과 박영삼, 자신의 핸드폰을 확인한다. 두 사람 핸드폰도 먹통.
박영삼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이부진 어머. 화면이 아예 움직이질 않아.
박영삼, 조용한의 멱살을 잡는다.
박영삼 너 이 새끼. 무슨 짓을 한 거야?
조용한 (캑캑대며) 무슨 짓을 하다니요?
이부진 아저씨가 이렇게 만든 거잖아요.
조용한 난 아무 짓도 안 했다니까요?
김정도 이 도둑놈아. 네가 한 짓을 우리가 몰라? 이런 씨xx놈의 새끼.
조용한 (필사적으로) 저 아무 짓도 안 했잖아요? 봤잖아요?
김정도 보긴 뭘 봐. 김정도, 달려들어 조용한의 목을 조르려 한다. 박영삼, 김정도와 함께 조용한을 땅에 패대기친다.
조용한 에구구구.
박영삼 이거 어떡할 거야?
조용한 (손을 비비며) 살려주세요.
박영삼 (소리를 빽 지르며) 내 핸드폰 어떡할 거냐고!
조용한 (심하게 공포에 떨며)….
박영삼 고객 정보랑 인터넷 뱅킹 모두 먹통이 되면 그게 어떤 건 줄이나 알아? 내가 운용하는 고객 자산이랑 계약 보험 총액이 얼마인 줄이나 아냐고?
김정도 내 서 사장이랑 이번 계약 건도 10억짜리야. 구전만 삼백이 넘는다고.
조용한 죄송합니다. 전 아무 짓도….
박영삼 이 새끼가 또 그 소리!
박영삼이 조용한의 따귀를 후려치려 한다.
이부진 잠깐만요.
박영삼, 뒤돌아다 본다.
이부진 좀 전엔 정말 아무것도 안 만졌어요. 저 아저씨.
김정도 뭐?
이부진 쟤가 핸드폰 먹통 된 걸 알았을 땐 저 아저씨 어떤 핸드폰도 안 만졌다고요.
최루나 뭐래?
이부진 맞잖아. 니가 소리쳤을 땐 니 핸드폰 니 손에 있었잖아.
최루나 뭐야? 그게 나 때문이란 거야?
박영삼, 최루나를 바라본다.
최루나 (겁에 질려서) 뭐야? 왜 그래…요?
박영삼 핸드폰 줘 봐.
최루나 예?
박영삼 핸드폰 줘보라고.
최루나, 겁에 질려 핸드폰을 건넨다.
박영삼 다른 사람도.
모두 재빨리 자신의 핸드폰을 찾아서 박영삼에게 건넨다. 박영삼, 넋이 나가 앉아 있는 조용한에게 소리를 빽 지른다.
박영삼 당신도 가지고 와. 핸드폰!
조용한 예? 예.
박영삼, 모두의 핸드폰을 한데 모아 놓고 골똘히 쳐다본다.
김정도 이 핸드폰이….
박영삼 가만히 있어 봐요.
김정도 그래요.
박영삼, 골똘히 핸드폰을 노려본다. 모두들 마른 침을 꼴깍 넘기고 기다린다.
이부진 저기 핸드폰이….
박영삼 (소리를 빽 지르며) 가만히 좀 있으라니까?
이부진 예.
최루나, 몸을 움직이려 한다.
박영삼 쫌!
최루나 아무 말 안 했어요.
박영삼 아무 말, 아니 아무 짓도 하지마.
박영삼, 핸드폰을 한참 동안 노려본다.
박영삼 뭐야. 씨x. 핸드폰이 지 맘대로. 귀신이 붙었다는 거야, 뭐야?
조용한을 빼놓고 나머지 사람들 봇물 터지듯 일시에 마구 이야기를 한다. 너무 시끄러워 누가 누구에게 말을 하는지 모를 지경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삿대질을 하며 떠든다. 조용한, 넋이 나가 앉아 있다가 일어나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는다. 멍하니 사람들의 작태를 바라보다 천천히 자판을 두들긴다. 사람들, 서서히 다툼을 멈추고 조용한을 바라본다.
박영삼 뭐 하는 거야, 당신?
조용한 예?
박영삼 무슨 짓이냐고 지금?
조용한 전 단지 이 상황이 하도 극적이라.
박영삼 이 상황이 웃겨? 웃기냐고.
조용한 아닙니다.
박영삼 시나리오를 쓴다고?
조용한 ….
박영삼 무슨 내용의 시나리오?
조용한 아직 구상 중인데요.
박영삼 구상? 무슨 구상?
조용한 제목 정도만 떠올라서.
박영삼 제목?
김정도 무슨 제목?
사람들, 조용한 주변으로 몰려든다.
조용한 (겁에 질려서) 조용한 세상.
박영삼 뭐?
조용한 조용한 세상.
김정도 조용한 세상?
조용한 예.
박영삼 내용이 뭔데?
조용한 내용요?
김정도 그래. 내용.
조용한 그게 아직 구상 중이라서….
이부진 그러니까 그게 무슨 내용이냐고요?
조용한 그게….
김정도 이 자식 작가는 개뿔. 네까짓 놈이 무슨 놈의 작가야?
조용한 아닙니다. 저 작가 맞습니다.
이부진 그러니까 무슨 내용을 쓴 거냐고요?
조용한 예?
이부진 그러니까 무슨 내용을 쓸 거냐고요.
조용한 그게 아직….
김정도 (손을 들어 후려칠 기세로) 야 이 개자식아.
박영삼 잠깐.
모두 주목한다.
박영삼 카톡이 들어왔다고 했지.
조용한 예?
박영삼 당신이 전화하기 전에 카톡이 들어 왔다고 했지?
조용한 예.
박영삼 무슨 내용이었어?
조용한 뭐가요?
박영삼 카톡 내용이 뭐였냐고?
조용한 잘 모르겠는데요.
박영삼 그걸 왜 몰라?
조용한 그게 카톡인지 뭔지, 메시지가 울리고 나서 핸드폰이 먹통이 돼서.
박영삼 카톡 내용을 모른다?
최루나 내 핸드폰은 카톡 아닌데?
박영삼 뭐?
최루나 내 핸드폰은 문자메시지 알림창 뜬 채 화면이 멈춰 있어요.
이부진 어머. 난 이메일이네?
김정도 이건 뭐여?
이부진 그건 카톡.
박영삼 아저씨 핸드폰은요?
조용한 저요?
박영삼 그래. 좀 봅시다.
조용한이 자신의 핸드폰을 찾아 모두에게 들어 보인다.
최루나 카톡이네.
박영삼 나도 카톡.
이부진 카톡이 셋. 이메일 하나. 문자 하나.
박영삼 3대2라.
이부진 3대1대1.
박영삼 어쨌든.
이부진 뭔가 이상해요. 누군가 바이러스를 퍼뜨린 거라면 한 가지 소스로 퍼뜨리는 게 맞지 않나?
최루나 그건 모르지?
이부진 뭘 몰라?
최루나 여러 소스에 침투할 수 있는 바이러스를 개발했는지 모르잖아. 엄청 똑똑한 놈들일 텐데.
박영삼 그럴 수도 있지.
최루나 그런 엄청 똑똑한 놈들이 무작위로 바이러스를 퍼뜨려서 세상을 마비시키려는 목적으로.
이부진 그럼 저 아저씨는?
조용한 나도 피해잡니다. 보셨잖아요. 내 핸드폰.
박영삼 아직 몰라.
조용한 나 정말 결백합니다. 정말 아무 짓도 안 했다고요.
박영삼 발단은 어쨌거나 당신이잖아.
김정도 맞아.
이부진 만약 아니라면요?
김정도 무슨 소리야?
이부진 저 아저씨 때문이 아니라면요?
박영삼 아닐 수도 있지.
조용한 네. 저 아닙니다.
박영삼 하지만 적어도 저 사람하고 관계가 있는 건 확실해.
이부진 어째서요?
김정도 뭐가 어째서야? 저 인간이 내 전화 망가트렸잖아. 이것도.
조용한 제 전화도 먹통이 됐다고요. 전 단지 통화를 하려했을 뿐이에요.
박영삼 통화? 누구랑?
조용한 기획사.
김정도 기획사?
조용한 영화 기획 담당자.
이부진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만약에 여기 누군가 카톡이나 문자를 받으면 무조건 먹통이 되는 바이러스라면? 아니 통화를 하려 하면 핸드폰이 먹통이 되는 바이러스라면요?
최루나 그럼 저 아저씨 때문이 아닌 거네?
조용한 맞습니다. 저도 카톡이 오고 나서 그냥 전화가 멈춰버렸어요.
이부진 지금 누군가 우리 모두를 조종하고 있는 거 아냐?
박영삼 뭐요?
이부진 좀비 PC. 좀비 핸드폰.
최루나 맞다. 스파이 앱! 근데 그걸 누가? 왜? 왜 하필 우리야?
박영삼 이유가 있겠지.
김정도 이유?
박영삼 이 중에 사찰 대상이 있는지도.
김정도 사찰 대상?
최루나 사찰 대상? 그게 뭐야?
이부진 난 아닌데.
모두들 서로를 바라본다.
김정도 난 부동산 중개인이야. 복덕방. 사찰은 빨갱이들만 하는 거 아냐? 난 아냐. 난 줄곧 1번만 찍었다고.
박영삼 뭐야? 나 의심하는 거야? 이 사람들이. 이 육군 병장 박 병장을 뭘로 보고. 우리 부대 표훈이 '멸사봉공'이었어. 내 20년이 지나도 안 잊고 있는데.
이부진 아저씨는 어때요?
조용한 나요? 말씀드렸잖아요. 난 그저 흔하디흔한 작가라고. 이야기 만드는.
박영삼 작가가 왜 흔해?
조용한 예?
김정도 희귀하지.
조용한 그래요. 나 안 흔해요. 희귀한 작갑니다.
이부진 이 모든 게 누군가에 의해 조작되고 조종되는 거라면 그게 누굴까요? 그럴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김정도 난 복덕방.
박영삼 난 보험설계사.
조용한 난 작가. 희귀한.
최루나 난 학생.
김정도 아가씬 말 안 해?
이부진 난 주부.
최루나, 핸드폰을 손으로 두들기면서 뭐라 한다.
이부진 아무래도 그럴 만한 위치에 있기가 가장 가까운 사람은.
김정도 그럴 만한 사람이라.
박영삼 그렇다면 분명 보통 사람을 가장한….
이부진, 한 사람씩 들러본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스럽게 쳐다본다. 시선이 한 사람으로 모인다.
최루나 어? 뭐야? 되네.
이부진 뭐?
최루나 핸드폰 다시 돼요.
박영삼 뭐라고?
김정도 그래? 핸드폰 된다고?
모두 자기 핸드폰을 확인한다.
박영삼 안 되는데?
김정도 나도.
조용한 제 거도.
이부진 뭐야? 안 되잖아.
최루나 봐요. 되잖아요.
최루나 주변으로 모두 모인다.
박영삼 어떻게 한 거야?
최루나 어떻게 했냐고?
이부진 뭘 한 거야?
최루나 별로 한 거 없어요. 그냥 x라 때렸어. 짜증 나서.
박영삼 그냥 때렸다고? 핸드폰을?
최루나 예.
이부진 그냥 때리기만 했어?
최루나 x라 짜증 나서 막 때렸지. 아우 짜증나 x라 꼬져가지고, 하면서.
박영삼·이부진·김정도·조용한, 서로를 쳐다본다. 한 사람씩 핸드폰을 때리기 시작한다. 서로가 서로를 보면서 점점 더 '아우 짜증 나, x라 꼬져가지고'를 큰 소리로 외치며 과격하게 때린다.
박영삼 된다. 됐어.
이부진 내 것도요.
김정도 내 건 왜 안 돼?
최루나 (신이 나서) x라 세게.
김정도, 그 말을 뜨고 사정없이 때린다. 최루나, "x라 짜증 나…" 말하며 때리는 시늉을 하자 김정도, 보고 따라 한다. 다른 사람들 김정도를 응원한다. 조용한, 그런 사람들을 분노에 차서 바라본다.
김정도 된다. 됐어.
김정도, 박장대소한다. 조용한을 제외한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핸드폰을 쳐다보고 서로를 격려한다.
최루나 아저씨 건 어때요? 돼요?
조용한 (노려보며)….
박영삼 됩니까? 선생님 핸드폰?
조용한 ….
나머지 사람들, 조용한을 쳐다본다.
조용한 (들고 있던 핸드폰을 흔들며) 잘 됩니다. 이 씨xx놈의 핸드폰. 잘 된다고요. (목이 메어) 사람을 그렇게….
이부진 맞아요. 우리가 너무 심했어요.
김정도 (멋쩍게) 미안하게 됐시다. 뭐 피차 잘못한 거니까 악감정은 갖지 말고.
조용한 뭐라고요? 피차?
박영삼 아이고. 선생님 좋은 게 좋은 거 아닙니까? 일이야 어찌 됐든 잘 처리됐으니까. 저도 본의 아니게 실례 많았습니다.
김정도 그래요. 형씨. 내 통 크게 사과하리다. 미안하오.
김정도, 손을 내민다. 다른 사람들 반가워서 조용한에게 사과받기를 종용한다. 마지못해 악수를 하는 조용한. 사람들 박수를 치고 분위기 화기애애해진다. 모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앉는다. 조용한, 그들을 바라본다. 김정도, 전화를 한다.
김정도 어. 김 사장. 별일 없지? 아니. 아직 카페. 좀 이상한 놈 때문에. 잘 처리됐어. 내가 누구여. 그럼. 경우 빠지는 짓 하면 그냥 조져야지. 서 사장? 이제 전화해 봐야지. 좀 까칠한가? 그 인간. 돈 좀 있다고 말이야. 문어 숙회 이상 없지? 그래. 이따 봅시다.
전화를 끊고 흐뭇하게 주변을 둘러보는 김정도. 뭔가 생각이 난 듯 전화를 어디론가 건다.
김정도 여보세요. 아이고 서 사장님. 전화가 늦었습니다.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겨서. 예? 전화 잘못 걸었다고요? 서정택 사장님 핸드폰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김정도, 전화를 끊고 전화번호를 확인한다. 다시 전화를 건다.
김정도 여보세요? 어? 서정택 사장님 전화번호 아닙니까? 맞게 눌렀는데? 죄송합니다.
김정도, 다시 핸드폰을 확인한다.
김정도 이 전화번호 맞는데. 이상하다.
김정도, 전화번호를 외워서 다이얼을 누르려 한다.
김정도 가만있자. 공일공 삼사육칠에.
까먹었는지 다시 전화번호를 확인하는 김정도.
김정도 공일공 삼육칠, 아니 삼육사칠에…. 이런 니xx놈에.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다시 확인한다. 번호를 기억하려 입으로 마구 왼다.
김정도 (전화번호를 누르며) 공일공 삼사육칠에 사오일팔. 이런 니x. 잘못 눌렀네. 공일공 삼사육칠 사천오백십팔.
김정도, 안도하며 수신을 기다린다.
김정도 여보세요? 서 사장 전화 아닙니까? 공일공 삼사육칠에 사천오백십팔번. 아니라고요? 사천오백십팔 아니에요? 내 분명 맞게 눌렀는데. 죄송하게 됐시다.
김정도, 전화번호를 조심스럽게 다시 누른다. 귀에 대고 수신을 기다린다. 상대방이 화를 내며 소릴 지르는지 귀에서 핸드폰을 갑자기 뗀다.
김정도 이런 니x. 잘못 걸 수도 있지.
김정도, 핸드폰을 신경질적으로 두드린다. 신경질적으로 그러나 조심해서 전화번호를 다시 꾹꾹 누른다. 신호음이 한참 있다 걸린다.
김정도 (반색하며) 여보세요? 서 사장님 전화지요? 아니라고요? 거기 어딥니까? 고물상이라고요? (전화 끊으며) 아니. 이게 왜 이래?
김정도, 약이 올라 핸드폰을 만져 전화번호부를 보려 한다.
김정도 이거 뭐야? 김정도, 핸드폰을 들고 어쩔 줄 몰라 한다.
김정도 이거 왜 이래? (다급하게) 이봐요. 이거 왜 이래? 이거 좀 봐요.
박영삼 왜 그러세요?
김정도 이거 왜 이래? 글씨가 엉망이 됐어.
박영삼, 김정도의 핸드폰을 확인한다.
박영삼 어. 핸드폰 자판이 이상해지네? 여기들 봐요. 이거 이거 좀.
이부진 뭐예요?
최루나 왜요? 핸드폰이 또 이상해요?
박영삼 핸드폰 글자랑 숫자가 이상하게 돼버렸어!
이부진 뭐라고요?
김정도 나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최루나 뭐야? 이거 랜섬웨어 걸린 거 아냐?
이부진 랜섬웨어?
김정도 랜섬웨어? 무슨 골프 의류야?
박영삼 핸드폰은 괜찮다며?
최루나 암호로 변했잖아? 랜섬웨어 감염되면 그렇잖아요?
김정도 뭐여? 또 망가진 거여?
이부진 그건 컴퓨터만 그렇다고 하지 않았나? 서로 연결된 공유 프로그램 컴퓨터들만 감염된다고 했잖아.
박영삼 핸드폰으로도 감염이 되는 거야 뭐야?
이부진 핸드폰은 공유프로그램이 없어서 감염되지 않는다 했다고요.
최루나 공유 프로그램 없이도 감염되는 바이러스가 생겼나?
이부진 뭐라고?
김정도 근데 왜 나만 그런 거여?
최루나 뭐라고요?
김정도 걸리려면 다 걸려야지. 왜 나야?
최루나 그걸 어떻게 알아요? 아저씨 핸드폰이 그냥 재수 없게 제일 먼저 걸린 거겠지.
김정도 뭐?
박영삼 잠깐. 그럼 다른 핸드폰도 감염될 수 있다는 거잖아?
이부진 근데 이상하네?
박영삼 뭐가요?
이부진 검색에 안 나와. 핸드폰 랜섬웨어라는 검색어가 아예 없어.
최루나 포털사이트 다 검색해 봤어요?
이부진 네이버·다음 어디에도 없어.
박영삼 이상하네. 이런 건 동시 다발적으로 벌어지는 거 보통인데. 인터넷에 난리 나고.
최루나 아저씨가 최초 감염자 아냐?
모두 김정도를 쳐다본다.
김정도 뭐? 왜들 그래?
박영삼 아저씨 핸드폰이 최초 감염이니까 이게 어떤 경로로 감염될지 모르니까.
김정도 그래서.
박영삼 뭔가 조치를 취해야죠.
김정도 조치? 어떻게? 뭘?
박영삼 나도 모르죠. 하지만 뭐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다 그게 쫙 퍼지게 되면 큰일이잖아요?
김정도 아니 이미 핸드폰이 망가졌는데 무슨 놈의 조치야?
이부진 최소한 전원이라도 끄세요. 그래야 다른 사람 핸드폰으로 전염이 안 될 거 아녜요?
최루나 전원 끄는 거 가지고 되나?
박영삼 그럼 뭘?
최루나 거 왜 핸드폰 복구 못 하게 하려면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리라잖아요.
이부진 맞다. 우측 상단을 망치로 박살을 내버리든가.
김정도 뭐여?
박영삼 그건 핸드폰 내용 못 보게 하려는 거고. 이건 바이러스 못 퍼지게 하려는 건데.
이부진 뭐라도 해야 한다면서요?
최루나 저거 언제 퍼질지도 모르잖아요? 막아야지. 지금 당장.
모두 김정도의 핸드폰을 주목한다.
김정도 뭐여?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거여. 이걸 부수라고?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르잖어?
박영삼 지금 당장 그것보다 더 확실한 조치는 없어요.
김정도 부수라고?
최루나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리든가.
이부진 여긴 전자레인지 없지 않나?
김정도 그래. 없잖아.
박영삼 전원 끄고. 부숴야죠.
김정도 전원만 끄면 안 될까?
이부진 그거론 부족해요.
김정도 아니 새 건데. 고쳐질지도 모르고.
박영삼 아저씨만 생각합니까? 그러다 여기 있는 사람한테 감염되면 어쩔 거예요?
이부진 맞아요.
김정도 그래도 이거 나한테 소중한 건데.
박영삼 누군 안 소중합니까? 나한테 핸드폰이 얼마나 중요한데.
최루나 어쩔 수 없잖아요? 빨리 부숴요. 그거. 롸잇 나우.
이부진 전원부터 빨리 끄세요.
김정도 그래도 나한테 중요한 건데….
박영삼 얼른요.
김정도, 마지못해 전원을 끈다.
김정도 자, 이 정도로 안 될까? 전원도 껐는데.
박영삼 이리 내요.
김정도 아냐. 내가 내 손으로 차라리.
김정도, 손으로 몇 번 내리친다.
이부진 그래서 부서져요?
김정도 뭐 부술 도구가 없잖아? 망치라도 있어야지.
박영삼 발로 밟아요. 발로.
김정도, 바닥에 내려놓고 발로 밟는다. 핸드폰, 아무렇지도 않다.
박영삼 저리 비켜 봐. 아 아저씨 정말.
김정도 아니.
박영삼, 힘껏 발로 밟는다. 김정도, 안쓰럽게 탄식하며 외면한다. 올라타고 쿵쿵거려 보지만 아무렇지도 않다.
최루나 방탄 필름 씌운 거 아냐?
박영삼 뭐?
최루나 액정 보호 필름. 방탄필름.
이부진 잠깐만요. 이걸로 해 봐요.
이부진, 구두를 벗어 박영삼에게 건넨다. 박영삼, 뾰족한 구두 뒤축으로 내리친다.
최루나 깨진다.
사람들, 탄성을 지른다. 박영삼, 신나서 더 사정없이 내리친다.
박영삼 됐어. 완전히 박살 내버렸어.
최루나 완전히 박살 났겠죠?
박영삼 그럼.
이부진 한 번 더 짓이겨 놔요. 완전히 제 구실 못 하게.
김정도 그 정도면 됐잖아. 아주 걸레가 됐구먼.
김정도, 망가진 핸드폰을 못 마땅히 받아든다.
박영삼 저 정도면 재기불능이야.
김정도 재수 옴 붙어 가지고.
김정도, 조용한을 바라본다. 조용한, 맞받아 노려본다. 한참 쳐다보다 김정도 눈을 거둔다.
김정도 재수 옴 붙어가지고. 니××.
박영삼의 핸드폰에서 알림음이 울린다.
박영삼 뭐야?
알림음이 점점 더 울린다.
박영삼 (소리 지르며) 뭐야? 계좌이체? 내가 안 했는데?
알림음 계속 들린다.
박영삼 뭐야? 안 돼! 계좌이체 안 했다고! 이거 왜 이래!
박영삼, 핸드폰을 손으로 마구 두드리고 어쩔 줄 몰라 한다.
이부진 왜 그래요?
박영삼 (거의 이성을 잃어서) 지 맘대로 돈이 빠져나가고 있어. 씨×. 안 돼! 내 돈. 내 돈.
이부진 뭐라고요?
박영삼,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지르면서 핸드폰을 마구 두들긴다. 이부진과 최루나의 핸드폰에서도 알림음이 울린다.
이부진 뭐야? 홈케어 안 켰는데?
최루나 왜 이래? 무슨 구매 완료야? 내가 언제 게임을 구매해?
이부진 현관문을 왜 열어? 어 가스레인지를 왜 켜? 그러다 불나면 어떡해? 뭐야? 이거 왜 이래?
최루나 쇼핑 안 했다고? 내가 돈이 어디 있어서 쇼핑이야? 뭐야? 이거 갑자기 무슨 짓이야?
이부진·최루나·박영삼, 이성을 잃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
이부진 미쳤어? 난방을 왜 해? 뭐야? 누구 맘대로 집에 맘대로 불을 켜? 문은 왜 열어놔? 미쳤냐고.
최루나 안 돼. 그만 구매해. 필요 없어. 그만. 그만 해.
김정도 뭐야? 그럼 내 핸드폰 때문이 아니잖아. 이거 어떡해? 이거 어떡하냐고!
조용한, 조용히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바라본다. 최루나, 이어폰을 홱 잡아 뽑으면서 소리를 지른다. 최루나의 핸드폰에서 뽕짝·힙합·헤비메탈·클래식 등이 차례대로 나오다가 한꺼번에 섞여 듣기 거북한 소음이 점점 크게 들린다.
이부진 (울면서) 우리 집. 어떡해. 아이 올 때 됐는데. 어떡해.
박영삼 (울부짖으며) 내 돈. 내 돈.
최루나 (울면서) 게임 필요 없다고. 나 수능 봐야 한단 말야.
김정도 (넋이 나가서) 내 핸드폰. 내 핸드폰.
조용한, 핸드폰을 노려보고 있다. 최루나의 핸드폰에서 나는 괴상한 음악들이 이젠 모두의 핸드폰에서 난다. 점점 더 격렬하게 소리가 나고 바깥에서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가 들리고 자동차 추돌 소리. 비명소리. 사이렌 소리. 갑자기 핸드폰이 모두 꺼져 버린다.
암전.
카페 안 사람들, 넋을 잃고 망연히 자리에 앉아있다. 조용한, 사람들에게 다가가 한 사람씩 흔들어본다. 사람들, 반응 안하고 멍하니 앞을 보고 있다.
조용한 (김정도에게) 이봐요.
김정도, 흔들면 흔드는대로 망연히 있다
.
조용한 이봐요. 정신 차려요.
김정도 (넋이 빠져서) 원룸 오백에 삼십 없어. 천에 사십. 김 사장 명도 변경. 세입자만 죽지. 문어 숙회. 돈은 당신이 벌어. 서 사장. 10억 계약. 물건교환. 구전 삼백.
조용한 이봐. 정신 좀 차려. 이봐.
조용한, 김정도를 마구 흔든다. 반응없이 중얼대는 김정도. 조용한, 하는 수 없이 박영삼에 다가간다. 김정도는 슬그머니 일어나 빈 손으로 귀에 전화를 대는 시늉하며 계속 중얼댄다.
조용한 이봐요. 이봐요.
조용한, 주머니에서 박영삼의 명함을 꺼내 든다.
조용한 이봐요. 박영삼씨. 이봐. 정신 좀 차려 봐요.
박영삼 (중얼대며) 보험 맡겨주세요. 김영삼, 아니 아니 박영삼. 화장실 말고 어디든 달려가. 성실히 모십니다.
박영삼도 자리에서 일어나 김정도처럼 빈손으로 전화 거는 시늉을 하며 중얼대며 연신 머리를 조아린다. 조용한, 이부진과 최루나를 바라본다. 이부진과 최루나, 빈손으로 전화 거는 시늉을 하며 중얼댄다.
조용한 이봐요. 아가씨. 학생. 정신 좀 차리라니까.
모두들 일어서서 좀비처럼 중얼대며 돌아다닌다. 서로 부딪치기도 한다. 조용한, 사람들을 흔들어 보고 뺨을 쳐보기도 한다.
조용한 이것들 봐요. 핸드폰이 뭐라고. 이게 무슨 꼴이야? 왜들 이래?
조용한의 전화에 불이 들어온다. 조용한, 노려본다. 카톡음이 들린다. 조용한, 천천히 자리로 돌아간다. 전화기에 카톡음이 계속 울린다. 조용한, 노려보다가 핸드폰 전원을 꺼버린다. 조용한, 자신의 컴퓨터를 주시한다. 사람들은 중얼거리며 계속 어슬렁거린다. 컴퓨터 화면을 주시하며 자판을 두드린다. 갑자기 핸드폰 전원이 들어온다. 사람들 움직임이 점점 빨라진다.
김정도 원룸 오백에 삼십 없어. 천에 사십. 김 사장 명도 변경. 세입자만 죽지. 문어숙회. 돈은 당신이 벌어. 서 사장. 10억 계약. 물건교환. 구전 삼백.
박영삼 보험 맡겨 주세요. 김영삼, 아니 아니 박영삼. 화장실 말고 어디든 달려가. 성실히 모십니다.
이부진 집 앞 카페. 세월 좋아. 외벌이 어림없어. 모니터링. 그것도 자리 없어.
최루나 몰라. 엄마 싫어. 연습실 안 가. 수능 몰라.
조용한, 핸드폰과 사람들 번갈아 쳐다본다. 카톡 계속해서 울리고 사람들은 큰 소리로 같은 말을 반복하며 마구 뛰어다닌다. 조용한, 핸드폰 전원을 끄려 하나 꺼지지 않는다. 카톡은 계속 울리고 사람들 목소리는 거의 비명에 가깝다. 사람들, 기괴하게 움직이며 같은 소리를 지른다. 조용한, 책상을 후려치며 소리지른다.
조용한 좀 조용하란 말이야!
일순 조용해진다. 한 사람씩 중얼대며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조용한 좀 조용하라고.
조용한, 다시 컴퓨터 바라보며 자판을 집중해서 두드린다. 갑자기 조용한의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린다. 다른 핸드폰도 카톡음·알림음·노랫소리·게임 음향·전화벨 어지럽게 울린다. 조용한, 조용히 일어나 핸드폰을 한데 수거한다. 조용한, 밖에서 망치를 들고와 핸드폰을 사정없이 때려 부순다.
암전.
조용한, 구석에 앉아 노트북 자판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다. 생각에 잠긴다. 조용한, 노트북을 덮는다. 만년필과 원고지를 꺼낸다. 뭔가 쓰기 시작한다. 김정도, 자리에 들어와 앉는다. 신문을 펴 본다. 박영삼, 들어온다. 노트에 적힌 것을 바라보고 자신의 설계노트를 확인한다. 이부진, 커피를 받아 들고 자리에 앉아 책을 꺼내 읽는다. 최루나, 워크맨에 헤드폰을 끼고 들어와 앉는다. 음악에 맞춰 발을 까딱댄다. 목을 조금 가다듬는다. 작은 소리로 발성을 해본다.
최루나 연습실이나 가야겠다.
최루나 퇴장.
조용한, 조용히 원고지에 뭔가를 계속 적는다.
막.
[희곡 당선소감]
1만 시간의 道程…아직 할 말이 많다
일파만파라더니. 당선 소식을 받고 얼결에 지음(知音) 몇에게 연락을 보냈다. 드디어 네가 일을 내는구나, 세상에. 우째 이런 일이. 이들은 나보다 더 날 예감하고 있었나? 아마도 빈말이겠지. 그래도 기분 좋다. 어느 창작자인들 자신의 천재성을 바라마지 않겠는가? 그러나 인고의 세월에 예봉(銳鋒)은 무뎌지고 자기 확신마저 바닥에 닿는 비참을 느끼며 산 지 몇 해 됐다. 난 왜 이 모양이지?
내가 어느 지점에 와 있나 회의하고 있을 때 1만 시간의 법칙이란 것을 알았다. 일가를 이루는 데 걸리는 필수불가결의 시간. 나는 1만 시간의 도정에 있다. 아니, 어쩌면 2만, 3만의 시간을 향해 무작정 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나는 할 말이 많은 인간인 모양이다. 앞으로 더 많은 말을 할 것 같다.
자발적으로 자본의 타자의 길로 접어든 철없는 남편을 묵묵히 감내하고 있는 아내에게 못내 미안하다. 이번 당선이 조금이라도 아내에게 위로가 됐으면 한다. 이재명 교수님, 양수근 작가, 정지아, 김민경, 그 밖의 글 도반들. 또한 극단 ‘삼각산’ 식구들. 감사할 분이 너무 많다. 빚진 분이 너무 많다. 일일이 호명하지 못한 점 심심히 사과드린다. 모자란 작품 뽑아주신 조선일보사와 심사위원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1965년 서울 출생
―한국방송통신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추계예대 문예창작과 석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박사 수료
―2011년 계간 ‘미네르바’ 신인상 시 부문 당선
[희곡 부문 심사평]
뛰어난 통찰력, 현시대 꼬집는 촌철살인
응모작의 경향은 다양했다. 가정 폭력과 후일담부터 인공지능 같은 초현실적 설정과 알레고리까지 형식도 다양했다. 그러나 대부분 소재가 음모와 폭력 속에서 전개됐고, 표면 이외의 다른 것은 읽히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한 걸음 거리를 두고 세상을 바라보는 여유와 통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정재춘씨의 ‘조용한 세상’은 그런 점에서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핸드폰을 소재로 사소한 일상에서 출발한 작품이지만, 어느 순간 능청스럽게 세태를 꼬집고 현대인의 허약함을 성찰한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호주머니에 들어가는 그 작은 물건을 분실하는 순간 일상이 마비되는 공포를 한두 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이 작은 물건은 어느새 우리 삶을 지배하는 강력한 지배자가 돼 버렸다. ‘시끄러운 세상’을 사느라 누구도 크게 주목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공감할 ‘조용한 세상’을 통찰하는 작가의 안목, 또 일상의 사건을 소용돌이처럼 몰아가며 현시대를 꼬집는 촌철살인의 대사나 구조가 돋보였다. 아직 세태 풍자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물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현대인의 근원적 공포와 직면해도 좋을 것이다.
또 한 편의 문제작으로 마지막까지 고심한 작품은 언어 구사력이 빼어났던 조지민씨의 ‘선인장 키우기’였다. 인간의 힘으로 통제하기 힘든 재난이 현실에 매복해 있으나 그럼에도 작은 꽃 한 송이를 지켜내려는 마음을 묘사했는데, 읽고 난 뒤 여운이 오래 남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연극은 시가 아니다. 성속(聖俗)을 모두 갖춘 저잣거리의 예술이다. 아직 성(聖)의 단계에 머물고 있는 이 작품이 한 걸음 더 나아가 제대로 된 선인장 꽃으로 사막에서 피어날 것을 기대한다. 그 외에도 최원석씨의 ‘Ast, Ast, Ast…’, 정희정씨의 ‘옷장에 구더기’ 등이 가능성 있는 후보작으로 함께 거론됐음을 밝혀둔다.
이병훈(연출가) 김명화(극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