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그 참상, 그 목소리, 계속 맴돌아… 자살하는 소방관, 순직의 2배

    입력 : 2017.12.30 03:02 | 수정 : 2017.12.30 03:46

    생사 넘나들며 트라우마에 고통받는 소방관, 정신 건강 위험수위

    소방관 평균 수명 69세
    수시로 처참한 시신 수습 고생하고 욕 먹기 일쑤
    우울증 일반인의 4.5배 사이렌 울리면 식은땀

    가족에게도 고통 전염
    교대 근무 마치고 오면 대화는 줄고 종일 잠만
    나도 모르게 버럭하고 부부가 우울증 앓기도

    아파도 말 못하는 사연
    업무상 재해 인정 힘들고 인사 평가 불이익 우려
    문제 있어도 없는 척 "안식년제도 등 도입을"

    "한 여자 분이 사고 당일 '빨리 와주세요. 나 죽기 싫어요'라고 울부짖던 신고 전화가 귀에 맴돌아요. 사고가 수습된다 한들 그 목소리를 평생 잊을 수 있겠습니까? 처참한 상황도 충격이었지만 사후 처리 과정에서 더 큰 상처를 받아요. 요즘엔 소방관 옷 입고 돌아다니기도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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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이철원 기자

    지난 27일 충북 제천소방서 김영래 소방경이 울먹였다. 그는 23년 된 베테랑이다. 제천 스포츠센터가 불탄 지난 22일 현장에서 지휘했다. 2층 여자 목욕탕에 진입해 랜턴을 비추었을 때 참혹한 광경이 떠올라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했다.

    화재 참사는 불을 끈 사람에게도 트라우마(정신적 후유증)를 남긴다. 참사 다음 날 제천 역전한마음시장에서 신고가 들어왔다. 규모가 작은 화재였다. 하지만 그와 동료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동료들이 장비 조작을 못 할 정도로 긴장했어요. 스포츠센터 화재 이후로 출동 사이렌이 울릴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납니다. 이제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어요."

    사후 조사 과정에서 소방관들의 초기 대응에 대한 비난이 들끓자 그는 후배 소방관들에게 "절대 뉴스나 댓글을 보지 말라"고 했다. "현장에 투입된 후배 중 하나는 이달에 막 발령을 받았어요. 특수부대 출신이라 늘 씩씩하던 친구가 며칠째 말 한마디 안 합니다. 동료들 모두가 멍한 상태로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습니다. 저희가 힘들어도 유족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까 표현을 못 하죠. 우리끼린 '차라리 우리 중 누군가가 희생됐다면 괜찮았을까' 얘기하곤 합니다. 다시 화재 상황으로 돌아가도 사람을 더 살리기는 어려웠을 거예요. 하지만 '우리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순직보다 자살이 많다

    매일같이 생사를 넘나드는 현장에 투입되는 소방관들의 정신 건강 상태는 어떨까? 일반인보다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짐작되는 이들의 정신 상태는 위태로웠다. 소방청에서 2014년 전국 소방관 심리 조사를 했다. 우울증을 앓는 비율이 일반인보다 4.5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는 비율은 10배 이상 높았다. 특히 알코올성 장애나 수면 장애는 소방관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겪고 있었다. 지난 5년간 자살한 소방공무원 수(44명)가 순직한 소방공무원 수(21명)의 두 배를 웃돈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실에서 2012년부터 5년간 숨진 퇴직 공무원들 평균 연령을 조사했더니 소방관은 69세로 공무원 직군 중 가장 낮았다. 평균 82세까지 사는 장차관 등 정무직 공무원보다 13년 일찍 세상을 떴다. 한국인 평균 수명은 83세다.

    현직 소방관들은 "참혹한 사고 현장은 아무리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소방관들은 1년에 평균 7.8회 극심한 외상 사건(두 명 이상 집단 사망, 유아 사망, 사지 절단, 압착 사고)에 노출된다.

    "2년차 때 건물 전체가 불타는 현장에 투입됐어요. 연기가 꽉 차 있었는데 혼자 진입했습니다. 엉금엉금 기어 문을 겨우 열었는데 서늘한 기운이 몰려왔어요. 뒤를 돌아보니 나가는 길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대로 죽는구나, 겁에 질렸어요. 2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을 자주 꿔요. 여섯 시간 이상 깊이 자본 날은 손에 꼽아요. 정신과 진단을 받고 약도 먹어봤지만 다음날 끔찍한 현장에 투입되면 치료 효과도 제자리로 돌아가죠."(소방관 A)

    "임신했을 때 구급대에 있었어요. 고층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현장에 출동했더니 차 위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훼손된 시신이 있었습니다. 주민들은 빨리 치워 달라고 성화라 속으로 울면서 처리했습니다. 지금 아이가 조금이라도 아프거나 성장이 더디다고 느껴질 때면 당시 충격으로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자책하게 돼요."(소방관 B)

    "고속도로 인근 소방서에서 6개월 근무했어요. 매일 처참한 상태의 시신을 수습해야 했어요. 절단된 신체를 찾으러 다니기도 했고요. 잠들기 전이면 항상 참혹한 장면이 떠올라서 눈물이 쏟아졌어요. 소화가 안 되고 숨을 쉴 수가 없어서 건강이 나빠진 줄로만 알았는데 우울증인지는 몰랐습니다. 현장에 나가면 '이러다 내가 먼저 죽겠다' 생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녜요."(소방관 C)

    "소방서 근처에서 자주 보던 야쿠르트 배달 아주머니가 있었어요. 교통사고 출동을 했더니 그분이 숨진 채 발견됐어요. 야쿠르트 배달하는 사람만 봐도 계속 그날이 떠오릅니다."(소방관 D)

    소방관 삶 뒤흔드는 트라우마

    소방관 트라우마는 그들의 삶을 뒤흔들고 있었다. 119소방안전복지사업단 최인창 단장은 "소방관 한 명이 후유증으로 고통받게 되면 가족에게도 그 감정이 전염된다. 집안 기물을 던지는 등 가정 폭력을 저지른 소방관들이 알고 보면 병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올해 대전·충청 지역 소방관 3000명을 상담한 허미라 심리상담사는 "정확한 원인 없이 두통, 호흡 곤란, 불면증, 이명, 두근거림 등 고통을 호소하는 소방관들이 많았다"며 "본인도 모르게 트라우마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가 상담한 한 구급대원은 자녀와 비슷한 나이대 아이가 교통사고로 처참하게 죽은 현장을 보고 몇 개월을 시달렸다. 아이가 길에서 뛰거나 조금이라도 위험한 행동을 하면 사고 현장이 떠오르면서 분노 조절이 안 됐다고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는 아버지가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는 걸 고스란히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한 20년차 소방관은 아내까지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 "교대 근무를 마치고 귀가하면 긴장이 풀리면서 주체할 수 없는 피로가 몰려 옵니다. 대화는 줄고 하루 종일 잠만 자게 되죠. 저도 모르게 고함지르거나 화내고 후회하는 때가 잦습니다. 재작년부터 아내도 우울 증세를 호소해 함께 병원에 다니고 있어요."

    심각한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충남 한 소방서에 근무하는 김모씨는 2년 전 겨울밤을 잊을 수 없다. 소방차 운전을 맡은 그는 현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과속하는 택시와 부딪히는 사고를 냈다. 택시기사와 승객이 숨졌다. 김씨는 "사고가 있기 전부터 트라우마에 시달려 왔다"며 "기억력이 떨어지고 눈도 침침해져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동료들 눈치도 보이고 인력도 없어 어쩔 수 없이 운전대를 잡았다"고 주장했다. 그 후 김씨는 소송 비용과 형사 합의금 수천만원을 마련하느라 경제적·심리적 압박을 받았다.

    아파도 말 못하는 소방관들

    그러나 이들이 겪는 정신 질환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기는 쉽지 않다. 10년차 소방교 황모씨는 2년차 때부터 구급대에 투입되면서부터 불면증과 우울에 시달렸다. 원인을 몰라 폭음을 했고 가족에게도 폭력을 썼다고 한다. 약 먹고 자살을 시도해 응급실에 다녀온 뒤 병가 휴직을 냈다. 복직 후 공상(公傷) 처리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4년간 소송 끝에 겨우 업무와의 관련성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소방청 소방정책과 박경열 소방장은 "매년 수백명씩 공상자가 발생하지만 대부분의 PTSD는 국민연금공단에서 반려된다"며 "소방관 스스로 업무 관련성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소방청에서는 2014년부터 매년 한 차례 PTSD 설문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하는 소방관들이 많았다. 서울의 10년차 소방관은 "정상으로 보이게끔 적당히 답을 고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정신 질환을 앓는다고 하면 인사상 불이익이 있을까 지레 겁을 먹는다. 소방관이 그 정도도 못 이겨내면 무능하다고 생각할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소방관은 "다 같이 둘러앉아 설문에 응답하는데 동료 눈치가 안 보이겠나? 증상이 있다고 답할 문항도 '없다'에 체크하게 된다"고 했다.

    박찬석 우송정보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소방관들이 사명감 때문에 상처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다. 대부분 동료들과 함께 음주로 풀려고 하는데 알코올 의존증으로 악순환이 일어난다"며 "아프다고 하는 게 결국 인사 평가로 이어지기 때문에 쉽게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소방청에서는 일선 서를 거치지 않고 정신과 진료비를 청구하도록 하고 있다. 정신 질환 관련 진료비를 청구한 소방관은 2012년 363명에서 올해 6600명으로 급증했다. '찾아가는 심리상담실'을 운영해 고위험군을 만나고 있지만 아직 전체 소방관의 절반도 상담을 받지 못했다.

    부산 소방안전본부 배정이 심리지원센터장(인제대 간호학과 교수)은 "소방관들이 스트레스받는 현장을 피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전문가 도움을 받아 극복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며 "조직에서 낙인 찍히는 것을 두려워하는 소방관들이 많으니 상담 치료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인창 단장은 "PTSD 치료를 받는 와중에 다시 참혹한 현장에 노출되기 때문에 치료가 더디다. 소방관 안식년제도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며 "현장에 있는 소방관이 치료를 위해 행정직으로 자리를 옮기려 해도 인력난에 선뜻 말하기가 어렵다. 부족한 인력을 채우는 게 시급하다"고 했다. 동료들을 상대로 심리 상담을 하는 박승균 소방관은 "그들이 가장 위안받는 한마디가 있다. 식상하지만 '힘들었지?'라는 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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