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가스는 3분도 안봐준다

    입력 : 2017.12.27 03:10 | 수정 : 2017.12.27 15:17

    [건물 화재, 이렇게 대처하라]

    화재 유독가스 3분 마시면 심정지… 젖은 수건으로 입·코 가리면 20분 버틸 수 있어

    흡입시 코피 흘리고 복통… 대부분 통증 느끼기 전 의식 잃어
    손등으로 문 온도 확인 후 뜨거우면 열지 말고 틈새 막아야
    탈출땐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불길·연기 막으려면 문 닫고 이동

    지난 21일 제천 화재 사고 사망자 29명은 대부분 유독가스에 질식해 숨졌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화재 발생 때 유독가스로 인한 피해(68%)가 화염에 의한 피해(25%)보다 2배 이상 많다. 유해 성분이 있는 가스를 3분 이상 마시면 심정지가 온다. 젖은 천으로 코와 입을 가려도 최대 20분까지만 버틸 수 있다. 3~20분이 화재 대피를 위한 골든타임이다. 이 시간 내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생사가 갈릴 수 있다.

    가장 먼저 코와 입부터 막아라

    어느 날 내 주변에서 갑자기 타는 냄새나 연기를 맡거나 열기가 느껴질 때 침착하게 대피하려면 미리 대응 요령을 숙지해둬야 한다. 건물에 불이 나면 대개 화재경보기나 대피 방송이 울린다. 행정안전부의 '화재 국민행동요령'에 따르면 불이 났다는 사실이 확인된 경우 가장 먼저 코와 입을 막아야 한다. 젖은 수건이 없다면 옷가지로 막아 연기가 기도와 폐에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유독가스
    염화수소 등 산(酸) 계열 유독가스는 한 모금만 마셔도 의식을 잃을 수 있다. 유독가스를 마시면 코피가 나거나 배가 아플 수 있으나 대부분 자각 증상을 느끼기도 전에 기절한다. 좁은 공간에서 다량의 유독가스를 흡입하면 1~3분 내에 의식이 흐려진다. 3분이 지나면 심정지가 진행된다. 의식을 잃고 5분 내 구조가 이뤄지지 않으면 뇌에 산소 공급이 안 돼 뇌사에 빠질 수 있다. 강보승 한양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젖은 천으로 입을 가리고 이동하면 최대 20분까지 버틸 수 있다"면서 "당황한 상태에선 산소나 에너지를 더 많이 소모하기 때문에 침착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대피할 때는 최대한 몸을 낮춰야

    코와 입을 막았다면 계단을 이용해 신속하게 건물 밖으로 나간다. 엘리베이터는 절대 타면 안 된다. 불이 붙은 층에서 갑자기 문이 열리거나 정전으로 멈춰버린 엘리베이터에 갇힐 위험이 있다. 계단 아래쪽에서 연기가 올라오고 있다면 옥상으로 대피한다. 만약 불이 붙은 층이 아래에 있더라도 불길이 약하고 연기가 자욱하지 않다면 옥상이 아닌 1층으로 내려가는 것이 낫다.

    화재 유독가스 대응 어떻게 하나
    소방청이 최근 만든 '화재 시 국민행동요령'은 대피할 때 최대한 몸을 낮추라고 안내한다. 연기는 위로 가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 손으로는 코와 입을 막고 한 손으로는 벽을 짚은 자세로 신속하게 대피한다. 탈출할 때에는 불길과 연기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문을 닫고 나오는 것이 좋다.

    밖에 불꽃이나 연기가 가득 차 있다면 그대로 나가지 말고 구조를 기다려야 한다. 손등으로 문의 온도를 확인해보면 문밖 상황을 가늠할 수 있다. 구조대가 올 때까지 최대한 버틸 수 있도록 젖은 수건이나 커튼으로 문틈을 꼼꼼히 막아야 한다. 연기가 들어오지 않는 방향의 창문을 열고 원색(原色)의 천 등 눈에 띄는 물건을 흔들어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근처에 물이 있으면 불타기 쉬운 물건부터 물을 뿌려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는다.

    입고 있는 옷이나 장신구는 열기를 품을 수 있다. 빨리 벗어 버려야 한다. 반지 등 장신구는 열을 받으면 뜨거워져 화상을 입기 쉽다. 조용석 한림대한강성심병원 화상외과 교수는 "화상을 입으면 몸이 붓기 시작하는데, 꽉 조이는 반지를 끼고 있으면 혈류를 방해해 심장에 무리가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평상시에 방독면과 손도끼 준비를

    전문가들은 평소 주변 환경을 알아두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특히 비상구나 소화전 위치는 미리 파악해놔야 한다. 불이 나고 연기가 들어차면 당황해서 비상구를 찾기 어려울 수 있다. 비상구 쪽에 물건이 쌓여 있거나 불에 쉽게 탈 만한 물건이 있다면 미리 치워둬야 한다. 제천 화재는 비상구에 물건을 쌓아놔 안타까운 희생자가 더 많이 나왔다.

    집 밖으로 대피가 어려운 경우 피할 수 있는 실내 대피 공간도 알아두는 게 좋다. 1992년 이후 지어진 아파트는 3층 이상의 발코니 또는 보일러실에 경량 칸막이를 설치하거나 실내 대피 공간을 두도록 의무화돼 있다. 아파트 경량 칸막이는 얇은 석고 보드로 만들어져 있어 몸이나 발로 쉽게 부술 수 있다. 경량 칸막이 위치를 미리 알아두면 유사시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

    유독가스 흡입을 막기 위해 방독면을 구비해두는 것도 좋다. 황태연 소방청 화재조사계장은 "화재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이 마스크가 벗겨지자마자 유독가스를 들이마셔 정신을 잃고 쓰러진 적도 있었다"면서 "방독면이나 입을 막을 수건은 주변에 두는 것이 좋다"고 했다.

    유리창을 깨 연기를 밖으로 내보내거나 탈출할 수 있도록 손도끼나 망치도 미리 준비해두라고 권한다. 제천 화재를 조사 중인 소방 관계자는 "소방관들이 사다리에 탄 채로 밖에서 유리창을 깨는 데는 한계가 있다"면서 "아파트나 건물에 손도끼나 비상용 망치를 구비해놓을 수 있는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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