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 속에서는 철저하게 비현실만 즐긴다

    입력 : 2017.12.27 03:04

    [박종인의 여행 속으로] 스위스

    그 비현실의 끝에 물가가 있다… 비현실적이다

    현실을 벗어나본다. 열심히 살았으니까. 어차피 돌아올 현실세계, 기왕이면 아주 비현실적인 곳으로 가본다. 스위스다. 비현실적인 공간이다. 열서너 시간 서쪽으로 날아가면 나오는 곳인데, 이리도 다르다.

    풍경이 비현실적이다. 호수가 바닥이 보인다. 빙하가 녹은 물이 산중에 갇혀 있다. 물고기며 오리가 허공에 떠 다닌다. 이름은 블라우제(Blausee), '푸른 호수'다<사진1>. 그 풍경, 믿을 수 없다. 눈앞에 포토샵 작업을 여러차례 거친 듯한 맑은 호수가 떠 있는 것이다. 이런 크고 작은 호수가 7000군데가 넘는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한국 단위 평(坪)으로 9만평이 넘는 호수가 모두 103개다. 알프스 골짜기마다 이런 호수가 있으니, 그 옛날 한자문화권에서 그리워한 무릉도원이 알고 보니 스위스에 있는 게 아닌가. 그 하고많은 호수 가운데 레만 호숫가에서 프레디 머큐리가 죽었다. 에이즈 감염을 고백하고 다음날 죽었다. 레만 호숫가 몽트뢰에 있는 프레디 동상은 손을 치켜들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사진2>. 우리 또한, 그를 위하여 경배.

    블라우제는 체르마트로 가는 길목에 있다. 체르마트는 인터라켄과 함께 마테호른(4478m)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스위스사람들은 마테호른 아래 고르너그라트 역까지 기찻길을 뚫어놓았다. 역 높이는 해발 3100m다. 그 높은 곳까지 선로를 놓은 것도 비현실적인데, 그 개통 연도가 1898년이라는 사실을 알면 사람이 멍청해진다. 그때 우리는 광무2년, 대한제국시대였다. 융프라우를 빼놓을 수 없다. 해발 4158m다. '어린 귀부인'이라는 뜻이다. 융프라우 아래 마을 이름은 그린델발트다. 맑은 날 아침, 마을은 위 사진처럼 생겼다.

    장작불 땐 연기가 자욱하고, 미니어처 같은 집들이 역시 미니어처로 만든 잔디밭에 박혀 있다. 엄연히 사람이 살고, 소가 머리를 처박고 하루종일 풀을 뜯는 초원인데 왜 저리 비현실적인가. 감성이 완전히 말라버린 사람도 이 풍경 앞에서는 항복할 수밖에 없다. 모든 게 비현실적이어서, 관광객 마음까지 비현실적으로 변한다. 머릿속 천사가 속삭인다. 이것은, 동화다. 이것은 허구다…. 역사며 문화 따위는 잊기로 한다. 관광객의 뇌 용량은 한계가 있다. 역사, 문화 따위를 깊게 파고들면 비현실적인 풍경을 즐길 여유가 없다. 비현실 속에서는 철저하게 비현실만 즐긴다.

    그 비현실의 끝에 물가가 있다. 비현실적이다. 융프라우 산악열차 왕복 210프랑. 한국 돈 25만원. 느껴지는가. 푸른호수 입장료는 7프랑, 7700원이다. 둘이서 패스트푸드 햄버거 세트 시켜 먹으면 2만원이다. 비현실적 풍경과 물가 사이에서 관광객은 점점 현실감을 되찾는다. 하지만 늦었다. 지갑은 이미 저 설산(雪山)에, 저 푸른 초원에, 깊이 모를 푸른 호수와 와인 잔에 다 털렸다. 그러지 않으려면 품질 좋은 패키지여행이 최고다. 그 다음은 렌터카다. 데이터 빵빵하게 채워넣고 구글맵을 켜면 운전은 쉽고, 어디든 갈 수 있다. 그 다음은 기차다. 여행 수단이 무엇이 됐든, 뇌 한 구석에 현실감각은 반드시 켜둔다. 특히 물가에 관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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