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성 푸로파간다 시대… 모던 껄들의 옷이 몹시 간략해지겟다"

    입력 : 2017.12.26 03:03

    [100년 전 경성으로 돌아간 국립현대미술관 '신여성' 展]
    나혜석·최승희 등 비운의 여성 조명, 김은호 '미인 승무도' 국내 첫 공개

    '육체미를 발휘하자! 이것이 현대인의 부르짖음이라면 '녀성 푸로파간다―시대' 모던 껄들의 옷이 몹시 간략해지겟다. 볼상에는 해괴망측하나 경제상 매우 리로울 것이니 실 한 꾸러미와 인조견 한 필이면 삼대를 물릴 수도 잇겟슴으로.' 조선일보 1930년 1월 14일 자에 실린 안석주의 만평. 카페 종업원부터 여학생까지 모던 걸들의 한껏 짧아진 옷을 풍자했다.

    나혜석이 1920년 4월 '신여자'에 그린 만평도 재미있다. 멋진 코트에 바이올린 든 여성을 보고 양반 둘이 혀를 찬다. "아따 그 계집애 건방지다." 반면 젊은 남자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맵시가 동동 뜨는구나." '신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조롱과 선망, 그 이중 잣대를 희화했다.

    이유태의 1944년 작‘인물일대(人物一對): 탐구’. 흰 가운 속에 입은 한복과 조선 여인상의 이목구비로 그려진 작품은 가부장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신여성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이유태의 1944년 작‘인물일대(人物一對): 탐구’. 흰 가운 속에 입은 한복과 조선 여인상의 이목구비로 그려진 작품은 가부장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신여성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국립현대미술관
    '여혐' 논란부터 '82년생 김지영'까지 페미니즘 열기 뜨거웠던 한 해를 '신여성'이 마무리한다.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개막한 '신여성 도착하다' 전시는 100년 전 경성으로 돌아간다. 1890년대 영국의 'New Woman' 열풍에서 시작된 '신여성' 아이콘이 일제강점기 조선에 들어와 가부장제와 어떻게 싸우고 타협하며 뿌리내렸는지 그 여정을 좇는 전시다. 19세기 말 이후 회화 100여 점을 비롯해 조각, 자수, 사진, 영화, 잡지, 소품 등 500여 점이 망라됐다.

    '신여성 언파레-드(on parade)'란 문패를 단 1부는, 남성 작가들에게 비친 신여성 이미지를 보여준다. '신여성' '신가정' '여성' 등 1920~30년대 출간된 여성지 표지화를 그린 안석주, 김규택, 김용준은 여우 목도리에 양산 쓴 여자, 책 읽고 기타 치는 여자, 종아리 보이는 치마를 입고 춤추는 여자들을 신여성의 대표 이미지로 구현했다. 이인성의 '해수욕장', 김기창의 '정청', 김인승의 '봄의 가락'에선 신여성의 일상이 엿보인다. 수영복 차림에 해변을 활보하거나,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감상하고, 공회당에서 열린 클래식 연주회를 찾아간다.

    안석주가 조선일보 1930년 1월 12일 자에 실은 ‘여성선전시대가 오면(2)’.
    안석주가 조선일보 1930년 1월 12일 자에 실은 ‘여성선전시대가 오면(2)’. /국립현대미술관
    이유태의 '인물일대: 탐구'는 전문직 여성의 출현이란 점에서 흥미롭다. 현미경과 온갖 실험 도구 가득한 대학 실험실에서 한 여인이 흰색 가운을 입은 채 정면을 응시한다. 강승완 학예실장은 "엘리트 여성이되, 가운 속에 입은 한복과 조선 여인상으로 그려진 이목구비는 가부장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신여성의 어정쩡한 위치를 보여준다"고 했다.

    신여성에 당대의 패션·영화·대중가요·춤의 트렌드를 주도한 기생을 포함한 것도 눈길. 전시엔 1927년 창간된 기생 잡지 '장한(長恨)'을 비롯해 기생 서화가 김능해의 '묵란', 수학여행 간 기생들을 촬영한 명월관 사진 엽서들이 나왔다. 소철, 대나무, 오동나무로 꾸며진 정원에서 기생 둘이 승무를 추는 '미인 승무도'는 미국 플로리다대학에 소장돼 있다 국내에 처음 공개되는 회화로, 조선 마지막 어진 화가였던 이당 김은호의 걸작이다.

    1920~1930년대 출간 붐을 이룬 여성지들의 표지화.
    1920~1930년대 출간 붐을 이룬 여성지들의 표지화. /연합

    나혜석, 천경자, 박래현 등 걸출한 여성 화가 작품도 대거 선보인다. 2부 '내가 그림이요 그림이 내가 되어'에 나온 나혜석의 우울한 보랏빛 '자화상', 박래현의 '예술해부괘도', 천경자의 '조부'는 놓쳐선 안 될 작품. 나상윤의 '누드'는 처진 가슴, 늘어진 뱃살을 지닌 현실 속 여인을 그대로 묘사해 여성을 바라보는 남녀 화가의 차이를 보여준다.

    3부 '그녀가 그들의 운명이다'는 나혜석, 김명순, 최승희, 이난영, 주세죽 등 신여성 5명을 집중 조명한다. 시대와 맞서 싸웠으나 비극으로 생을 마감한 여인들 삶에 경의를 표한 현대 작가들의 영상물이다. "근대의 꿈은 실현됐으나, 신여성의 꿈은 21세기인 지금도 여전히 풍등(風燈)처럼 표류하고 있다"는 김소영 한예종 교수의 마지막 영상이 인상 깊다. 내년 4월 1일까지. (02)2022-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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