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고로 사망한 이들은 대부분 화재 초기에 비상구를 통해 탈출하지 못했다. 초기 대피에 실패했다면 신속한 구조가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소방 당국의 구조 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할머니부터 손녀까지 3대(代)를 잃은 한 유족은 "화재 발생 약 1시간 후에 장모님이 집으로 전화를 했다"고 말했다. 이 증언은 아직 통신기록 등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이라면 "소방대의 소극적인 구조작업으로 희생이 커졌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특히 "3층 남성 사우나 이용객이 탈출했던 비상계단을 이용해 소방대가 2층으로 진입할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왜 비상구로 진입 못했나
화재 발생 직후 3층 남성 사우나에 있던 10여 명은 비상계단을 통해 건물 밖으로 나왔다. 탈출에 성공한 3층 이발사는 "빠져나오니, 소방차가 막 도착했다"고 말했다. 소방대는 신고 접수 7분 후인 오후 4시 화재 현장에 왔다. 그러나 소방대원들은 이 비상계단을 통해 2층 진입을 시도하지 않았다. 이 비상계단은 큰 불길이 치솟은 주차장의 반대편 쪽으로 나 있다. 한 목격자는 "1층 전체에 화재가 번졌지만, 비상구와 통하는 계단 쪽은 상대적으로 화염이나 연기가 덜했다"고 말했다.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소방대원들은 비상계단으로 내려온 남성들을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용재 경민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현장에 도착하면 건물에 있던 사람들을 찾아 현장 내부 구조와 사람이 얼마나,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했다. 소방청 관계자는 "화재 진압 대원이 먼저 도착하고, 구조대는 뒤늦게 왔다"며 "불길을 잡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해 비상계단 진입은 고려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왜 2층 유리를 깨지 못했나
소방대가 2층 여성 사우나의 통유리 창문을 깨고 진입했다면 더 많은 인원을 구조할 수 있었을 거라는 지적이 나온다. 화재 발생 후 수십 분 후에 2층 희생자와 통화했다는 유족들의 증언이 많다. 하지만 소방대는 도착 직후 통유리 창문을 통한 진입을 시도하지 않았다. 소방청 관계자는 "1층 불길을 잡지 않으면 2층 통유리 창문으로 접근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했다. 또 발화 지점 인근에 있는 대형 LP가스용기로 화재가 번지는 것을 막는 데 주력했다고 한다. 실제 화재 발생 당시를 촬영한 주변 방범카메라 영상을 보면, 1층 주차장에서 시작된 불은 3~4분 후 2층으로 번졌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는 "화재 진압으로 불길을 잡으면서, 구조대원들이 통유리창을 깨고 들어갔으면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화재 진압 대원들이 도착한 것은 화재 발생 7분 후인 오후 4시, 구조대원은 그로부터 9분 후에 왔다. 구조대원이 창문을 깨고 진입을 시도한 것은 오후 4시 30분쯤이었다. '구조의 골든 타임'을 놓쳤다는 것이다. 이용재 교수는 "내부에 있던 사람이 탈출을 위해 강화유리를 직접 깨려면 소화기 등으로 모서리 부분을 쳐야 한다"며 "그때도 화염이 근처에 있으면 불길이 내부로 들어올 수 있으니, 주변을 잘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사다리차도 늦게 펴
사다리차를 타고 위층으로 진입해 건물 안 사람을 구하는 방법도 있었다. 소방관들은 화재가 난 건물의 1층 입구가 막히면 굴절 사다리차를 이용해 사람이 있는 층의 바로 위로 진입해 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당시 출동한 굴절 사다리차와 고가 사다리차는 현장 도착 후 30~40분 동안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고가의 대형 장비가 정작 인명 구조에 쓰이지 못했다는 지적에 소방 당국은 "차의 평형을 맞추는 '아웃트리거'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느라 늦었다"고 했다. 당시 건물 앞 폭 6m 도로엔 불법 주차된 차량이 여러 대 있었다. 소방대원과 일반 시민들이 차량의 창문을 깨고 밀어내는 데 시간이 걸렸다. 소방대가 사다리차를 설치하는 사이에 인근에서 달려온 민간 청소업체의 사다리차가 나타나 8층 난간에 있던 세 명을 구조했다. 소방청 관계자는 "일단 대원들이 큰불을 잡고 진입하려는 순간에 민간 사다리차가 먼저 와서 사다리를 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