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연정의 첫단추, 핏줄 내세운 '게르만 민족주의'

    입력 : 2017.12.21 03:03

    [독어권 이탈리아 주민들에게 "시민권 주겠다" 파격 제안… 이탈리아는 발끈]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오스트리아 영토였던 南티롤
    극우파, 한 핏줄로 묶기 나서

    폴란드·독일·프랑스 등 유럽 전역 거센 극우 열풍
    난민 대거 유입에 거부감

    오스트리아의 우파 연립정부가 출범 후 첫 정책으로 독일어를 사용하는 이탈리아 북부 주민들에게 시민권을 주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는 19일(현지 시각) 취임 후 첫 국무회의를 주재한 뒤 기자회견에서 "이탈리아 북부 알토아디제 주민들에게 (오스트리아의) 시민권을 부여해 이중국적을 갖게 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8일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이틀 만에 '범(汎)게르만 민족주의'를 내세운 것이다.

    오스트리아가 시민권을 주겠다고 선포한 지역인 이탈리아 북부 알토아디제는 알프스산맥을 사이에 두고 오스트리아 티롤주(州)와 접해 있다. 그래서 '남(南)티롤'이라고도 불린다. 52만명의 주민 중 70%가 독일어를 사용한다. 이곳 주민들을 오스트리아 정부가 '한 핏줄'로 여기는 이유는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오스트리아 영토였기 때문이다. 1차 대전에서 패전국이었던 오스트리아는 알토아디제를 승전국 이탈리아에 넘겼다.

    유럽의 극우 민족주의 움직임
    오스트리아 정부가 알토아디제 주민에게 시민권을 주겠다는 방침을 정한 것은 쿠르츠 총리가 이끄는 국민당의 연정(聯政) 파트너인 극우정당 자유당이 이를 강력하게 원하기 때문이다. 1956년 나치 부역 세력이 창당한 극우 정당인 자유당은 지난 10월 총선에서 전체 183석 중 51석을 차지해 돌풍을 일으켰다. 자유당 의원 중 20명 정도는 나치를 지지하는 학생동맹 활동을 했던 사람들이다. 자유당은 "늦어도 2019년에는 알토아디제 주민들이 오스트리아 시민권을 얻을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이탈리아는 발끈했다. 베네데토 델라 베도바 이탈리아 외무차관은 "인종주의를 기반으로 이중국적을 인정한다는 오스트리아의 제안은 다문화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유럽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오스트리아 외에도 유럽에서는 최근 극우 민족주의가 활개 치고 있다. 무슬림과 난민을 적대시하는 법과정의당(PiS)이 집권하고 있는 폴란드에서는 지난 11월 11일 독립기념일을 맞아 극우주의자 6만명이 수도 바르샤바에 모여 행진했다. 이들은 '하얀 유럽'이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노골적으로 백인 우월주의를 표방했다. 헝가리에서도 난민을 향해 독설을 내뿜기로 유명한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2010년 이후 장기 집권하고 있다. 세르비아에서는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발칸의 도살자'로 불리며 수만명을 학살했다가 전범 재판에 넘겨졌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의 측근들이 속속 정계로 복귀하고 있다.

    EU의 중심인 서유럽에서도 민족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9월 치러진 독일 총선에서 유럽연합(EU) 탈퇴를 주창하는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이 94석을 차지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지난 5월 프랑스 대선에서는 극우 후보 마린 르펜의 득표율이 34%에 달해 아버지 장 마리 르펜의 2002년 대선 득표율(17.8%)의 두 배를 기록했다. 유럽에서 극우 민족주의가 득세하는 것은 아프리카, 시리아 등에서 난민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거부감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EU 청년 실업률이 20.8%(2016년)에 달하는 가운데 난민이나 다른 EU 회원국 이주민이 몰려와 일자리를 차지하는 데 대한 반감이 적지 않다. 프랑스지정학연구소의 아네스 보이-길리스 연구원은 르몽드 인터뷰에서 "기존 정당들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이 민족주의를 호소하는 새로운 정당에 표를 몰아주면서 극우주의가 점차 보편화되고 있다"고 했다.

    각국에서 민족주의가 힘을 얻을수록 EU 통합은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협상이 진행 중인 가운데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EU에서 이탈하려는 회원국이 하나둘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르몽드는 "극우 세력이 각국에서 선거라는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극우 민족주의 득세를 쉽게 제어하기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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