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명창, 능청맞은 심봉사로 돌아오다

    입력 : 2017.12.20 03:01

    마당놀이 '심청이 온다' 유태평양
    25세 역대 최연소 심봉사 맡아 "신동보다 예술가로 불리고 싶어"

    갈지자걸음, 초점 잃은 눈빛으로 딸에게 다가가는 순간, 들썩이던 객석이 조용해졌다. "내 딸 청아!"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 자기 나이의 배가 넘는 관객을 웃겼다 울렸다 하는 주인공은 소리꾼 유태평양(25)이다.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공연 중인 마당놀이 '심청이 온다'(연출 손진책)에서 역대 최연소 심봉사를 맡았다. 딸 심청 역의 장서윤(26)보다도 어리다. 객석을 향해 "가까이서 보니 나 잘생겼죠?" 눙치고, 19금 유머도 거침없이 내뱉는다. 무대 생활 20년 넘는 '관록'이 관객을 휘어잡았다.

    국악을 잘 몰라도 '유태평양'이란 이름은 귀에 익다. 세 살 때 무대에 데뷔, 여섯 살 때인 1998년 판소리 '흥보가'를 완창했다. 조통달 명창과 성창순 명창 등에게 배운 실력은 나이를 초월했다. 꼬마 유태평양은 '신동'이란 단어에 으쓱했다. '김병지 갈기 머리' 스타일에 한 가닥만 염색하고 다닐 만큼 멋 내기에도 관심 많았다. "지금 함께 공연하는 서윤이 누나를 예닐곱 살 때쯤 방송국 대기실에서 만났는데, 제가 뒷짐 지고 '나 몰라? 나 유태평양이야'라고 큰소리쳤다네요. 신동이란 소리가 그렇게 좋았는데 요즘엔 아니에요. 그 이미지를 대신할 새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말도 되니까요."

    이미지 크게보기
    국립극장 마당놀이 ‘심청이 온다’에서 심봉사 역을 맡은 유태평양이 공연장인 국립극장 하늘극장 앞 건물에 칠해진 심봉사 그림 앞에서 엎드리는 포즈를 따라 했다. /장련성 객원기자

    신동을 넘어서기 위해 그는 태평양처럼 넓고 깊은 음악 세계에 뛰어들었다. 타악기를 배우고 싶다는 아들의 말에 아버지는 유학을 권했다. "인도를 찾았다가 길거리 음악 하는 분들에게 빠져들었어요. 기왕이면 타악기의 천국인 아프리카 음악을 제대로 배우고 싶었죠. 열두 살에 엄마와 함께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떠났습니다." 4년간 아프리카 타악기를 익히고, 학교 밴드에선 드럼을 쳤다. 오케스트라와 재즈 밴드에 가입해 서양 악기를 배웠다. 그때 익힌 리듬감은 올봄 국립창극단 '흥보씨'(연출 고선웅)에 제비로 출연해 한껏 드러냈다. 날렵한 발놀림으로 사모님을 꼬드기는 강남 제비 역을 맡아 무대를 장악했다.

    천재라지만 그 못지않은 노력을 한다. 지는 걸 못 참는 성격. 남아공에선 럭비 선수 스카우트 제의를 받을 정도로 럭비에 빠졌다. 코뼈가 부러지는데도 이겨야 했다. 대학 시절(전북대 한국음악과)엔 교직도 이수했다. 이번 마당놀이를 위해 다큐멘터리를 보고 시각장애인을 관찰했다. 국립창극단의 김성녀 예술감독은 "악바리 기질에 매번 더 나아지는 무대를 보여줘 언제나 관객을 설레게 한다"고 말했다.

    풍부한 감정선은 2011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떠올리며 만들어낸다. 소리꾼이었던 아버지 유준열씨는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아들 유학으로 '기러기' 생활을 하며 뒷바라지했다. 그때 얻은 당뇨 합병증이 악화됐다. "신장 투석을 하셨어야 했는데 저희 한번 보겠다고 장비를 이고 지고 그 먼 길을 날아오신 거예요. 정작 쓰러지셨을 때는 제 공부에 방해된다며 비밀로 해달라고 하셨다는데…."

    유태평양은 "태평양을 넘나들 큰 사람이 돼라"는 뜻으로 이름 지어준 아버지를 다시 마음에 새긴다. '신동'을 넘어 우리 고유의 전통 음악과 외국 악기를 접목해 전 세계에 알리는 '예술가' 유태평양으로 불리는 게 꿈. "딸이 태어나면 인도양, 아들은 대서양이라고 이름 지을 거예요. 제가 이름 덕을 단단히 봤거든요. 아버지 과업이었는데 제가 이어야죠!" 내년 2월 18일까지, (02)2280-4114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