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스페인에서 쫓겨난 인재들이 만든 최강국

  • 변양호 前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입력 : 2017.12.20 03:17

    돈·기술 가진 유대·이슬람 추방… 스페인, 산업 붕괴 쇠락의 길로
    네덜란드는 여러 인재 받아들여 무역·해운·금융 강국으로 도약
    능력 있는 사람 힘으로 누르면 인재 떠나고 경제 기반 무너져

    변양호 前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변양호 前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 당시 스페인은 유럽의 부유한 나라였다. 거기에 더해 역사상 가장 큰 자원의 저장고를 발견한 것이다. 금을 비롯한 엄청난 양의 재화가 스페인으로 유입됐다. 번영의 절정으로 치달았다. 하지만 번영은 오래가지 못했다. 종교재판소의 권유에 따라 능력 있는 사람들을 추방해버렸기 때문이다. 신대륙을 발견한 그해에 유대교도에게, 1502년에는 이슬람교도에게 추방령을 내렸고 개신교도들도 박해했다. 가톨릭의 종주국이 되고자 한 것이다. 이로 인해 돈과 기술을 가진 유대교도와 이슬람교도가 떠났다. 개신교도들도 떠나야 했다. 의사, 과학자, 상인, 금융업자들이 스페인을 떠났고 스페인의 산업은 붕괴됐다. 스페인의 무적함대는 1588년 영국에 패했고, 17세기 들어 스페인은 강국의 자리에서 무너져내렸다. 수많은 전쟁으로 돈을 많이 쓰기도 했지만 종교적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능력 있는 사람들을 추방한 것이 쇠락의 가장 큰 이유였다.

    스페인이 몰락할 즈음 네덜란드는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했다. 17세기가 시작될 무렵 프랑스의 인구는 1600만명,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합쳐서 1000만명, 독일의 여러 공국(公國)을 모두 합친 인구는 2000만명이었는데 네덜란드는 200만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50년이 채 못 되어 최강국에 올랐다. 네덜란드의 무역선은 1597년에는 120척에 불과했으나 1634년에는 2만4000여척이 됐고 유럽 전체 상선의 4분의 3을 보유하게 됐다. 인도에서 가져온 거친 원석을 가공해 최고급 다이아몬드로 만들어 팔았고, 직물업·담배제조업 등 고(高)이윤 산업의 중심지가 됐다. 회사 지분을 팔아 자금을 모집하는 주식회사 제도를 운용하는 등 금융에서도 가장 앞서 있었다. 전성기의 네덜란드는 무역·산업·해운·금융 부문에서 최고를 자랑했고 큰 사업을 하려면 네덜란드로 가야 했다. 면적은 경상도보다 약간 클 뿐이고 국토 대부분이 해수면보다 낮은 나라로 강국이 되기 어려운 환경이었음에도 정상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종교가 상대적으로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17세기 유럽 전역에는 종교로 인한 분쟁과 박해가 만연했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1579년 주연합 창립 헌장에 '누구나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어느 누구도 종교의 이유로 심문을 받거나 박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스페인 등지에서 쫓겨난 유대교도와 개신교도들이 네덜란드로 몰려들었다. 돈과 기술·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종교의 자유를 위해 네덜란드로 찾아온 수많은 능력 있는 사람들이 경제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삼성전자는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건희 회장의 역할이 컸다. 그가 추진한 혁신 중에 인사 정책이 눈에 띈다. 그는 훌륭한 인재일수록 더 많은 사람에게 일감을 줄 수 있다면서 계열사 사장들의 평가는 전 세계에서 얼마나 훌륭한 인재를 확보해 오느냐에 달렸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전 세계에서 훌륭한 인재들이 삼성에 모일 수 있었고 삼성의 순혈주의도 완화될 수 있었다. 삼성전자가 앞으로도 최고의 인재를 확보하고 그 인재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지속된다면 초일류 기업으로서의 지위가 유지될 것이다.

    /조선일보 DB
    돌이켜보면 대중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 왔다. 전제군주나 독재자에 항거했다. 촛불 시위도 그런 역할을 했다. 하지만 경제의 진보는 대중이 아니라 능력 있는 사람들이 일구어 왔다. 스티브 잡스 단 한 사람이 이루어낸 성과가 어마어마하다.

    능력 있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그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면 번영으로 간다. 힘 있는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을 핍박하면 나락으로 떨어진다. 어려운 사람을 지원하기 위해 능력 있는 사람에게 불리하도록 게임의 룰을 바꾸면 안 된다. 어려운 사람들은 사회 안전망으로 보호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걱정스럽다. 정부는 캠프 출신 위주로, 기업은 충성심 위주로 사람을 발탁한다. 인재가 외면받는다. 소득세율이 연소득 3억원과 5억원 기준으로 계속 올랐다. 이는 저항이 작은 증세 방법일 수 있지만 인재를 내치고 경제의 기반을 허물 것이다. 써서는 안 될 정책인데 쉽게 채택되는 것이 안타깝다. 혁신 성장을 위해서도 정부는 그냥 손을 놓아야 한다. 정부 주도로 혁신을 이룰 수는 없다. 능력 있는 사람들에게 그냥 맡겨야 한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떨어지고 있어 일자리도 늘어나기 어렵다. 새롭거나 혁신적인 사업을 하려면 정부의 눈치를 보거나 승인을 받아야 하는 현실을 타파할 법 개정도 필요하다. 능력 있는 사람이 모이지 않고 능력도 발휘하기 어려운 시스템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힘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힘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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