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간 변화한 '부산' 또한번 새롭게 달라진다

    입력 : 2017.12.19 03:04

    부산의 도전

    부산항의 중심이었던 북항을 다시 '바다'로…
    지난 100년을 발판으로 공간·시간 그리고 사람에 맞춰 도시 개조에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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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일부터 내년 2월18일까지 이어지는 ‘해운대라꼬 빛축제’를 찾은 관광객들이 대형 하트 트리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이 축제는 해운대해수욕장과 인근 구남로 등지에 빛의 문, 빛터널, LED빛커튼 등 11개 빛 조형물을 설치하고 ‘로맨틱 프로포즈’ 등 다양한 이벤트들을 진행한다/김종호 기자
    부산은 도시다. '부산'하면 우리에게 떠오르는 도시의 이미지는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100년 남짓이다. 물론 '부산'이란 장소, 지역은 선사시대부터 있었다. 하지만 한국 제 2의도시, 세계 6위의 컨테이너항 등의 이미지로 연상되는 '부산'의 등장은 근대 이후다. 이 100년간 부산은 아주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었다.

    1876년 개항 당시 부산의 인구는 4만명 가량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1910년 10만명, 1945년 30만명, 1951년 84만명으로 늘었다. 그 이후도 1955년 100만명을 넘었고, 1979년엔 300만명을 돌파했다. 1995년 389만여명을 정점으로 줄어 지금은 350만여명쯤 된다. 대략 100년간 40~100배쯤 인구가 급증했다. 이 정도 인구면 '세계급'이다. 변방의 관문 포구쯤에서 '글로벌 메트로시티'로 변신한 셈이다.

    그동안 일제침탈과 강점, 해방과 해외동포 귀환, 6·25 전쟁, 산업화, 민주화 등 파란만장한 격랑을 지났다. 청일, 러일전쟁을 친 일본군이 쳐들어오고 대한제국을 침탈한 일본제국주의의 전초기지로 고초를 겪었다. 해방 후 5~6년간 부산 시민(30만)보다 2배 가까이 많은 귀환동포와 6·25 피란민들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북새통을 이뤘다.

    그 시기에 시내 빈터나 유난히 많은 산 허리 위로 집들이 어지러이 들어서고 길들이 생겼다. 산복도로 판자촌, 꼬불꼬불 골목길 등이 그 때 생겨났다. 도시 공간을 반듯하게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가꾸는 일은 불가능했다. 그렇지만 부산은 그런 간난(艱難)과 신고(辛苦)를 묵묵히 받아냈다. 그러면서 '도시'로 발전했다. 도시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 하지 않던가.

    임시수도로 전쟁의 참화를 이겨내고 60~70년대 동명목재·성창기업 등 합판산업, 80~90년대 국제상사·삼화고무 등 신발산업 으로 대한민국 경제의 성장을 견인했다. 부산항은 한강의 기적을 일군 한국 경제가 세계로 뻗어가는 관문 역할을 했다. 김영삼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등 산업화 이후 한국의 민주화를 주도한 인물들도 배출했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부산은 근·현대 한국 사회를 혁신해온 엔진이었다"고 말했다.

    도시학자들은 "도시가 인류 문명의 변화를 주도했다"고들 한다. 와인·올리브유·향신료 등을 거래하면서 성장한 BC 5세기의 항구도시 그리스 아테네는 서양문명의 원류를 만들어냈다. 중세 이탈리아의 도시, 피렌체와 베네치아는 르네상스를 창조했다. 근대 영국의 도시, 버임엄과 맨체스터는 산업혁명을 촉발했다. 도시학자들은 "도시엔 사람, 물품들이 사방에서 몰려들고 그와 함께 온 똑똑한 아이디어들이 다른 아이디어들을 만들어 내면서 지적 폭발이 창조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들 도시는 대부분 항구도시다. 김형균 부산발전연구원 부산학연구센터장은 "부산이 피렌체, 버밍엄 정도는 아니지만 대한민국이 기적을 일구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부산이 지난 100년을 발판으로 새로운 미래를 향해 뛰고 있다. 6·25 전쟁 등 외부적 요인에 의해 운명처럼 강요된 지난 100년의 공간구조를 바꾸고 자신의 색깔, 정신에 맞는 도시로 만들어 가는 실험에 도전 중이다.

    부산시 김종경 건설본부장은 "부산의 도전은 개항 이후 처음으로 지역의 공간과 시간, 사람에 맞춰 도시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고 말했다. 부산의 공간은 삼포지향(三抱之鄕). '삼포'란 바다, 산, 강을 뜻한다. 부산은 '북항재개발'을 통해 바다 중 '항구'를 대개조 중이다. 북항재개발은 종전 100년간 부산항의 중심이었던 북항을 항구가 아닌 '바다'로 되돌려 놓는 게 핵심이다.

    최근 재개발 범위가 예전 1~4부두, 중앙부두, 자성대 등에서 신선대·감만·우암 부두와 남항과 영도까지로 확대됐다. 과거 부산항 기능은 대부분 부산 서쪽 끝의 첨단의 '부산항 신항'으로 옮겨 가고 있는 중이다. 철조망으로 울타리 쳐진 부두로 도심과 따로 놀던 부산 앞바다가 도시 속으로 들어와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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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로 붐비는 부산 중구 광복로 ‘부산크리스마스 트리축제’ 현장. 지난 2일 불을 밝힌 이 축제는 내년 1월7일까지 열린다. 아래 왼쪽 사진은 지난 10월 광안리에서 펼쳐진 ‘부산불꽃축제’ 모습.
    강은 낙동강 주변의 변화다. 에코델타시티, 김해신공항, 국제복합물류단지, 사상스마트시티 등이 조성 중이다. 김해평야 중 일부로 농업이 주를 이루던 낙동강 일대가 '첨단 신도시'를 향해 달리고 있는 중인 셈이다. 산은 육지. 육지의 변화 또한 만만찮다. 감천문화마을, 영도 깡깡이마을, 초량 이바구거리, 중구 또따또가 등 낙후되고 쇠락한 산복도로 등 원도심 지역들이 '예술의 옷'을 입고 환골탈태 중이다. 또 중구·서구·영도구·동구 등 원도심 지역의 4개구를 하나로 통합해 새로운 발전을 도모하려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부산의 '시간'은 근대다. 부산은 고대로부터 지금에 이르는 시간 중 근대 들어 대변신을 했기 때문이다. 이승욱 깡깡이마을 예술감독은 "물론 구석기 패총도 있고 부산의 시간은 유구하다"며 "그러나 다른 도시와 다른, 부산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규정하는 시간이 '근대'라는 말"이라고 말했다.

    부산은 이 '근대'를 자신의 대표 시간으로 삼기 위해 '대한민국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 중이다. 부산시는 '피란수도 부산유산 세계유산등재 및 보존관리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시청 안에 피란유산등재팀을 신설했다. 또 중구 용두산공원 인근에 옛 한국은행 부산본부와 근대역사관 등 2개의 건물을 합해 대규모 근현대역사박물관이 만들어질 계획이다.

    부산시 이병진 문화관광국장은 "부산과 부산사람을 인문학적 관점에서 성찰하는 책 발간과 공부 붐이 일어나고 부산어묵·산복도로를 소재로 한 연극이 만들어지고 있는 등 부산의 정신, 철학을 공유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며 "이런 움직임이 '도시, 부산'의 새로운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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