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조선일보 신춘문예는 한파를 무색게 하는 문청(文靑)의 발걸음으로 초만원이었다. 지난 8일 마감한 8개 부문 응모작은 모두 1만843편. 2000년대 들어 최다 기록이다. 시 7426편, 단편소설 851편, 시조 541편, 동시 1469편, 동화 288편, 희곡 223편, 문학평론 30편, 미술평론 15편으로, 말레이시아·미국·일본·프랑스·캐나다 등 국경을 넘어 중학생부터 91세 노인까지 다채로운 응모자가 각축을 벌였다. 시·소설 예심은 14일 진행됐다.

2018 조선일보 신춘문예 예심 심사위원이 14일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강동호 문학평론가, 윤성희 소설가, 함기석 시인(앉은 이), 서준환·김선재 소설가, 박준·하재연 시인.

시 열풍은 올해도 이어졌다. 지난해(6888편)보다도 500편 넘게 늘었다. 예심을 맡은 박준 시인은 "이렇게 많은 응모작은 처음 본다"면서 "문학의 1차 목표가 스스로의 생각을 꺼내놓는 것이기에 당선 여부를 떠나 열의에 박수쳐 주고 싶다"고 말했다. 짧은 시가 소셜미디어와 어울리는 텍스트로 각광받고, TV드라마에 소개된 시집이 미디어셀러가 되는 등 시의 대중적 인기가 투고 증가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재치에 기댄 소셜미디어 글처럼 문장이 전반적으로 짧아졌다"는 심사평 역시 같은 맥락이다.

시가 일상을 파고들면서, 응모작도 일상의 고백을 향했다. 하재연 시인은 "체험에 바탕한 가족 서사, 취업이나 고시(考試) 같은 생활이 시의 자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면서 "실험성이나 파괴적 소재로 돌출하려는 대신 충실히 자기 삶을 얘기하겠다는 의지가 커보였다"고 말했다. 사회 분노의 목소리보다 정통 서정으로의 발화가 확연했다. 함기석 시인은 "세월호·탄핵 등 시사적인 소재도 보이긴 했으나 시선의 방향이 사건 자체에서 사람 쪽으로 옮아간 느낌"이라고 했다. 저성장 시대의 그늘을 보여주듯 한동안 구식으로 치부됐던 '가난'의 주제가 다시 부상한 건 특기할 지점. 심사위원진은 "견고한 세계 앞의 좌절감 대신 자학이나 언어유희를 통한 냉소가 많았다"고 짚었다.

지난해보다 100편 넘게 늘어난 소설의 경우, 최근 페미니즘 열기와 이를 충실히 반영한 문단 분위기를 대변하듯 성(性) 이슈를 택한 응모작이 쇄도했다. 강동호 문학평론가는 "성소수자 문제나 위계에 의한 성폭력뿐 아니라, 성폭력 무고(誣告)로 인한 고통 등의 소재가 잦았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특히 자주 몰리는 SF 성향의 응모작 역시 주요 비평 대상. 김선재 소설가는 "냉동인간 등을 다룬 장르소설적 응모작이 눈에 띄긴 했으나 직설적인 '말하기'에 치중한 나머지 '말하지 않고 말하기'의 미학적 고려를 간과한 경우가 많았다"고 꼬집었다.

전반적 수준은 '중간평준화'로 의견이 모였다. 서준환 소설가는 "최근 글쓰기 서적 및 강좌의 인기 덕분인지 응모작의 문장력은 예상보다 탄탄했다"면서도 "인간에 대한 상상이 아닌 아이디어만으로 승부하려는 경향이 강해 이야기 자체는 빈곤했다"고 말했다. 일상과 공상을 가로지르는 실로 다양한 소재가 등장했으나 깊이를 얻지 못하면서 소재주의로 흘렀다는 평. 윤성희 소설가는 "'단편'이라는 장르의 이해"를 주문했다. "가장 평범한 진술을 생략할 줄 알아야 한다. 어떻게 압축하고 근사하게 감출지 연마를 게을리해선 안 된다."

예심 결과 시 25명, 소설 13명이 본심에 진출했다. 다른 부문은 예심 없이 곧장 본심이 치러진다. 당선자는 이달 말 개별 통보하고, 2018년 1월 1일 자 조선일보에 당선작을 발표한다.


[예심 심사위원]

시― 시인 함기석·하재연·박준

소설― 소설가 윤성희·서준환·김선재, 문학평론가 강동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