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은 밑그림? 날것이라 강렬한 완성작

    입력 : 2017.12.18 03:02

    화단 유망주 10인의 'B컷 드로잉' 금호미술관에서 내달 28일까지

    '드로잉' 하면 밑그림이란 말부터 떠오른다면 혁오밴드의 '톰보이' 뮤직비디오를 보자. 불꽃으로 만들어진 '불사람'의 사랑 노래인 톰보이 뮤비는 드로잉 원화 4000여 장을 이어붙여 제작한 애니메이션이다. 흑백 선들의 응집과 분열만으로 얼마나 풍부한 묘사와 상상,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작품. '드로잉=미완성'이란 고정관념을 한 방에 날려준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금호미술관에서 1월 28일까지 열리는 'B컷 드로잉'은 날것이라 더 싱싱하고 강렬한 드로잉 작품들을 만끽할 수 있는 전시다. 박광수가 그린 '톰보이' 뮤직비디오 원화를 비롯해 노상호 문성식 장종완 허윤희 이정민 등 우리 화단 유망주들의 재기 발랄한 작품 80여 점을 만난다.

    드로잉의 풋풋한 매력을 보여주는 문성식의 '작별'(사진 위)과 혁오밴드 뮤직비디오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박광수의 '불사람'(오른쪽).
    드로잉의 풋풋한 매력을 보여주는 문성식의 '작별'(사진 위)과 혁오밴드 뮤직비디오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박광수의 '불사람'(오른쪽). /금호미술관
    지니 서의 장판지 드로잉은 유별나다. 종이 장판지를 자르고 구부리고 이어 붙여 어린 시절 한옥에 살던 추억을 표현했다. 평면이 아닌 입체 드로잉이란 점이 이채. 조명을 받아 벽에 비친 장판지의 그림자조차 드로잉에 속한다.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에 최연소 작가로 참여했던 문성식은 어린 시절 풍경들을 연필로 살려냈다. 연애, 가족, 임종 등 인생사의 한 장면 한 장면을 일기 쓰듯 포착한 그림들이 따뜻한 온기를 뿜어낸다.

    드로잉과 애니메이션을 주로 하는 심래정은 인간의 생존본능, 삶과 죽음에 관심이 많다. 이번 전시에 내놓은 드로잉은 사람을 잡아먹는 연쇄살인마가 주제다. 그로테스크하지만 만화처럼 분할된 화면 구성과 강한 먹선 덕에 블랙코미디 같은 느낌을 준다.

    어어부 밴드 멤버이자 배우, 작가로 활동하는 백현진은 특유의 치기 어린 작품을 선보였다. "일상에서 가장 익숙한 드로잉은 낙서"라고 믿는 그는 촌스러운 궁서체로 '웃기시시네'를 왼손으로 큼지막하게 써서 미술관에 붙였다.

    가로수 몸통에 종이를 대고 연필로 문지른 다음 이를 바탕 삼아 인간의 형상을 표현한 이해민선의 작업도 눈길을 끈다. 버려진 화분, 노끈, 스티로폼 같은 폐품을 예술로 소생시켜온 그가 늙은 나무의 거친 표면을 사람의 피부로 삼아 드로잉한 발상이 재미있다.

    김윤옥 큐레이터는 "완성작을 뜻하는 A컷과 달리 정제되거나 포장되지 않아 오히려 원본에 가까운 B컷이 더 진정성 있다는 발상에서 전시 제목이 B컷 드로잉이 됐다"며 "누구나 도전해볼 수 있는 드로잉을 완결된 예술품으로 간주하기 시작한 현대미술 트렌드를 목격할 수 있는 전시"라고 했다. '청년 작가 양성소'로 이름난 금호미술관의 올해 최대 흥행 전시다. (02)720-5114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