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북미 사로잡은 열손가락… 따스한 사랑을 연주하다

    입력 : 2017.12.18 03:02

    선우예권 독주회

    지난 15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연주복을 단정히 갖춰 입고 피아노 앞에 앉은 선우예권(28)은 오른손으로 잠시 건반을 쓰다듬었다. 지난 6월 북미 최고(最高) 피아노 경연대회인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지 여섯 달 만에 국내에서 갖는 독주회였다.

    공연 직후, 사인을 받으려고 공연장 로비에 줄을 선 사람들 사이에서 선우예권이 밝게 웃고 있다.
    공연 직후, 사인을 받으려고 공연장 로비에 줄을 선 사람들 사이에서 선우예권이 밝게 웃고 있다. /목프로덕션
    선우예권은 차분한 얼굴로 호주 작곡가 퍼시 그레인저가 편곡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 중 '사랑의 듀엣'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뜨겁게 타오르는 사랑의 감정을 겉으로 터뜨리지 않고 5월의 훈풍처럼 따스함 깃든 어조로 표현했다. 이날 공연의 핵심은 2부였다. 자유롭고 열정적인 곡목에 어울리게 타이를 풀고 무대로 나온 선우예권은 콩쿠르 당시 경연장에서 보여줬던 기교와 열정으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 2번을 장악해갔다. 열 손가락이 건반에 착 달라붙어 마지막까지 치밀한 표현력을 발휘했는데, 특유의 진한 저음(低音)을 양손과 어깨에 실어 과장 없이 살려내는 부분이 특히 좋았다.

    라벨의 '라 발스'에서도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 안에서 또렷하게 반짝이는 타건으로 왈츠의 리듬을 그려냈다. 춤곡이지만 변화무쌍한 박자와 소용돌이처럼 뒤섞이는 리듬 탓에 막상 곡에 맞춰 춤추려면 상당히 어려운 이 곡은 그걸 표현해내야 하는 연주자에게도 까다로운 곡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선우예권은 마지막 순간까지 호흡 한번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준비한 프로그램을 모두 소화한 후에도 차이콥스키 '사계' 중 '10월'을 시작으로 슈베르트 가곡 '리타나이', 그륀펠트가 편곡한 요한 슈트라우스의 '박쥐' 서곡 주제에 의한 '빈의 저녁' 등 내리 다섯 곡을 앙코르로 선보이며 객석을 달궜다. 스물여덟 살이 될 때까지 생활비를 벌기 위해 각종 콩쿠르를 전전하면서도 연주의 정도(正道)를 밟으며 실력을 다진 뚝심이 묻어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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