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북한이 안 오면 망할 것처럼… 정부가 평창올림픽 이상하게 만들어"

    입력 : 2017.12.18 03:02

    [80세에 再選… 장주호 세계생활체육연맹 총재]

    "대회 진행이 성공적이어도 '올림픽 遺産' 구현 안 되면 진짜 성공이라 할 수 없다
    이게 평창의 최우선 과제"

    "노태강 차관을 면담하니 '내 힘으로는 안 된다, 청와대와 의논하겠다'고 답해
    그 뒤 연락이 없었다…"

    영하 십몇 도로 떨어진 혹한(酷寒)에 중앙난방이 시원찮은지 사무실 안은 꽤 추웠다. 하지만 장주호(80) 세계생활체육연맹 총재는 느린 어투로 할 말은 다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 같았다.

    "우리 정부가 꼭 이래야 합니까. 남북 관계나 한반도 정세를 지나치게 표면에 내세우니 평창올림픽이 이상하게 흘러갑니다. 마치 북한이 안 오면 망할 것처럼 됐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부터 총리, 문체부 장관에 이어 어제는 북핵(北核) 주제로 열린 유엔안보리 자리에서 외교부 차관까지 북한 참가 얘기를 꺼냈습니다."

    장주호 총재는“북한 참가에 드러내놓고 매달리는 우리 정부를 보면 너무 답답하다”고 말했다
    장주호 총재는“북한 참가에 드러내놓고 매달리는 우리 정부를 보면 너무 답답하다”고 말했다. /최보식 기자
    ―북한이 참가하면 이를 계기로 대화와 협상을 해보려는 것이지요. 평창 동계올림픽이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면 무엇보다 큰 성과이겠지요.

    "올림픽이 마치 남북 관계 해결을 위한 정치적 도구가 된 것 같습니다. 정치와 정부의 불간섭 원칙이 올림픽 정신입니다. 북한 참가를 원한다 해도 물밑 작업을 했어야지, 드러내놓고 매달리는 인상을 주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를 체육 행정의 '살아 있는 증인(證人)'이라고 한다. 대한올림픽위원회 사무총장과 부위원장, 대한유도회 회장,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생활체육위원 등을 거쳤다. 88 서울올림픽 때는 사무차장을 맡아 올림픽 성공에 실질적 역할을 했다.

    "북한 참가에 목맬수록 북한의 콧대만 높여줍니다. 정부가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너무 답답합니다. 우리 정부에는 올림픽이나 스포츠 외교에 전문적 식견을 가진 인사가 없고, 곁에서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도 없는 것 같아요."

    ―북한 참가를 이끌어낼 다른 방안이 있는 겁니까?

    "순수 스포츠 차원에서 초연하게 해야지요. 실제 북한을 평창에 끌어들일 수 있는 것은 IOC입니다. 우리 정부가 북한을 초청하겠다고 해서 성사되는 게 아니라 IOC와 국제경기연맹의 승인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거의 모든 북한 선수들의 기록은 참가 자격 미달입니다. 평창올림픽조직위나 대한체육회가 나서서 '북한 선수의 기록이 미달이지만 끼워넣어 달라. 그래야 평창올림픽의 성가가 더 빛날 수 있다'며 이 기구들을 상대로 먼저 물밑 작업을 해야 합니다."

    ―북한이 참가하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은 아니지 않습니까?

    "국제 스포츠계가 '기회를 주는데 안 받으면 너희 손해다. 정치적으로 이미 고립된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참석을 안 하면 스포츠 무대에서도 고립된다'며 압력을 넣는 겁니다. 88 서울올림픽을 유치하고 난 뒤 소련과 동구권의 참가가 불투명했습니다. 지금처럼 대놓고 매달린 게 아니라 그때는 물밑 작업을 많이 했습니다. 88 올림픽은 동서(東西) 이념의 벽을 허문 역사적 유산을 남겼습니다."

    ―솔직히 평창올림픽이 흥행이 되겠느냐가 우선 과제입니다. 도핑 문제로 자국기를 들고 입장할 수 없다는 징계를 받은 러시아가 보이콧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선수 개인 자격으로 참석하는 걸 허용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만.

    "저는 걱정 안 했습니다. IOC의 조치는 적절했다고 봅니다. 그게 올림픽 정신입니다. 러시아가 평창올림픽을 보이콧하면 앞으로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설 자리가 없어집니다. 무엇보다 안 오면 러시아가 손해입니다. 최대한 많은 선수를 보낼 명분을 만들 것으로 봅니다. 우리가 정말 걱정해야 하는 것은 평창올림픽 시설의 사후 활용 방안입니다."

    ―빙상 경기장과 스키장을 어떻게 활용하겠다는 계획이 나름대로 있는 걸로 압니다.

    "경기장 몇 곳은 그렇지만 전체 청사진이 없습니다. 올림픽을 준비하는 동안 경기장과 시설에 대한 사후 활용 방안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지난 3월 IOC 조정위원회가 마지막 점검 회의를 가진 뒤 평창올림픽조직위에 공문을 보냈습니다. 그 속에는 '대회 진행이 아무리 성공적으로 이뤄진다 해도 올림픽 레거시(legacy·유산)가 구현되지 않으면 성공이라고 할 수 없다. 평창올림픽에서는 레거시 프로그램이 최우선 과제다'라고 나옵니다."

    ―'올림픽 레거시'라면 올림픽이 끝난 뒤 어떤 유산(遺産)을 남겨놓느냐를 말합니까?

    "그게 올림픽 시설의 사후 활용 방안입니다. 88 서울올림픽 때는 '레거시' 개념이 없었습니다만, 올림픽이 끝난 뒤 경기장 시설은 올림픽공원으로 남았습니다. 그곳에 평화의 문(門)과 세계적 아티스트들로부터 기증받은 조각 작품과 설치 조형물, 88 올림픽 메달리스트 이름이 새겨진 기념석이 있습니다. 국민체육진흥공단도 설립됐습니다. 올림픽 직후 노벨상 수상자 등 세계 석학을 초청해 88 올림픽의 의미에 관한 심포지엄을 열었습니다."

    ―대회 준비조차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레거시'를 언급하는 것은 이르지 않습니까?

    "레거시 프로그램은 대회를 준비하면서 동시에 진행하는 겁니다. 지금은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아요. 주최 측이 정치 문제 등 엉뚱한 데만 너무 많이 신경을 쓸 뿐, 성공 조건의 충족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르는 겁니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은 막대한 돈을 들이부어 성공적으로 대회를 치렀습니다만 올림픽 실패의 대명사처럼 됐습니다. 나중에 '소치가 유령도시 됐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후 활용 방안을 마련해야 할 주체가 누구입니까?

    "평창올림픽조직위가 청사진을 마련해 정부와 협의한 뒤 IOC에 전달해야 합니다. 그리해야 올림픽 애호가들에게 어필할 기회가 됩니다. 올림픽 관련 매체들도 지금부터 올림픽 뒤의 평창에 대해 보도할 겁니다. 돈 한 푼 안 들이고 세계에 알릴 수 있습니다. 북한에만 매달리고, 여태껏 사후 활용 방안을 내놓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어요."

    ―나름대로 이유는 있겠지요?

    "지난 정부 시절 김종 문체부 차관이 '정부가 다 알아서 한다. 평창올림픽조직위는 신경 안 써도 된다'고 했습니다. 국정 농단 사건으로 그가 구속됐으니, 무슨 계획이나 꿍꿍이가 있었는지 알 수가 없지요."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과 함께.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과 함께.
    ―지나간 것은 그렇다 치고, 현 정부에서는?

    "지난 7월 제가 노태강 문체부 차관을 만나 '어떻게 할 것인지 활용 방안 청사진을 IOC에 보내주라'고 했습니다. 노 차관이 '내 힘으로는 안 된다. 청와대와 의논하겠다'고 답했습니다. 그 뒤 연락이 없었어요."

    ―그걸로 끝입니까?

    "너무 답답해 청와대 임종석 비서실장 앞으로 '이런 문제가 있다'며 면담 신청 공문을 보냈더니, 비서실에서 '주관 부서인 문체부로 공문을 넘겨줬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며칠쯤 지나 문체부의 한 사무관이 전화를 걸어 '태스크포스팀을 꾸려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뒤 문 대통령이 평창을 방문하기에 이제 뭔가 되는가 싶었는데, '북한 참가' 등 정치적 발언밖에 없었습니다."

    ―그 무렵 스위스 로잔에서 토마스 바흐 위원장을 만났다고 들었습니다.

    "바흐 위원장이 저를 포함해 세계생활체육연맹 고위급을 초청했습니다. 올림픽 대회는 엘리트 스포츠 영역이지만, 올림픽 유산(遺産)은 지역사회나 생활체육 영역입니다. 이 자리에서 평창올림픽의 사후 활용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가 있었습니다."

    ―사후 활용 방안은 우리의 숙제이지, IOC에서 왜 그렇게 관심을 보입니까?

    "이는 IOC의 평판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올림픽 개최 도시가 적자나 파산이 났다는 오명을 듣고 싶지 않은 겁니다. '소치가 유령도시가 됐다'는 말이 나온 뒤로 개최 도시를 유치하는 데도 애를 먹고 있습니다. 그래서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올림픽 어젠다 2020'이라는 개혁안을 발표했습니다. 그 나라의 장기 발전 계획에 부합하는 경제적 올림픽을 치르자는 것입니다. IOC 개혁안을 따라 2020년 올림픽 개최 도시인 도쿄는 1964년 올림픽 때 경기장을 다시 사용하기로 했고 예산을 대폭 줄였습니다."

    ―동계올림픽이 처음인 데다 평창에는 경기장 시설도 전무해, 이미 들어갈 돈이 다 들어갔는데요.

    "바흐 위원장은 '올림픽은 개최 도시가 아닌 도시에도 할 수 있다'며 개혁안을 내놓았습니다. 개최 도시에서만 올림픽 경기를 해야 한다는 벽(壁)을 100년 만에 허문 겁니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 그가 방한해 '평창이 아닌 도시에서 경기를 해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이나 무주에 분산하거나, 일본과도 함께해도 좋다는 취지였습니다. 충분히 고려해볼 만한 제안이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반대한다. 평창에서만 하겠다'고 했습니다."

    ―힘들게 유치한 동계올림픽을 일본과 나누라고 하니까 민족 감정이 생긴 겁니다. 평창 주민들의 반발이 거셌고요. 지금 문제는 50일 남짓 남았는데 올림픽 열기가 없다는 겁니다.

    "요즘과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 올림픽은 우리나라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줄 절호의 기회입니다. 정부가 이런 점에 착안을 못 하고 있습니다. 저는 평창에 여러 번 다녀왔습니다. 지금쯤은 길목마다 평창올림픽 깃발이 휘날려야 하는데도 볼 수가 없습니다. 평창올림픽 부대 시설에도 로고가 없습니다. 조직위 직원들은 'IOC 규정에 안 된다고 한다'는 말만 합니다. 규정이 그렇다 해도 융통성은 있는 법인데, 너무 답답합니다. 올림픽 붐을 일으켜야 할 대한체육회는 메달 따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는 대한유도학교(용인대 전신)를 졸업한 뒤 1961년 유도 사범(8단)으로 호주에 초청돼 체육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1963년 미국 뉴욕의 스프링필드 체육대학에 유학했다. 귀국해 YMCA 수영장에 처음으로 '유아(乳兒) 수영 교실'을 만들었다. 당시 두세 살 아기였던 최윤정·최윤희 자매가 등록했다고 한다. 1967년 국내 처음으로 피트니스와 에어로빅을 도입한 이도 그였다. 1981년 생활체육 보급을 위해 '한국사회체육센터'를 설립했고, 그의 주도로 서울 둔촌동 아파트단지에 생활체육센터가 처음 만들어졌다.

    ―연세가 팔십인데, 4년 임기의 세계생활체육연맹 총재에 재선(再選)된 걸로 들었습니다.

    "102세 되는 체육인 선배는 지금도 테니스를 칩니다. 지난달 서울에서 세계생활체육연맹 총회가 처음 열렸습니다. IOC 위원 4명을 포함해 각국 생활체육단체 대표 800여 명이 참석했어요. 우리 정부 체육 담당자들은 아무도 안 나와봤습니다. 올림픽을 치르는 나라에서 이렇게 국제 감각이 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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